한국 영화의 부흥기라 불리는 1990년대 후반. 특히 1998년은 멜로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촌스러운 순수함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1998년의 로맨스 영화 5편을 수집했다. 더없이 상큼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ㅣ1998. 1. 24 개봉ㅣ감독 허진호ㅣ출연 한석규, 심은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초원 사진관’의 사진사 ‘정원’(한석규)과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의 만남과 사랑을 그린 영화. 유쾌하면서도 잔잔한 흐름으로 로맨스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장르를 뛰어넘어 한국 영화계의 명작으로 꼭 꼽힌다. 이 영화로 한석규와 심은하는 명실상부한 멜로의 아이콘이 됐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비롯해 초원 사진관을 둘러싼 군산 지역의 풍경까지 멜로의 아이콘으로 만든 건, 영화가 남긴 여운이 그만큼 진한 덕이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감정과 아름다운 그 시절의 영상을 진하게 누리고 싶다면 <8월의 크리스마스>를 틀어보자.

<8월의 크리스마스> 예고편

 | 영화보기 | N스토어 | 유튜브

 

<키스할까요?>

First Kiss, Shall We Kiss?ㅣ1998. 10. 3 개봉ㅣ감독 김태균ㅣ출연 안재욱, 최지우

이론만 빠삭하고, 실상은 키스의 ‘키’자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마주하며 벌어지는 로맨스. 연애 잡지 기자인 ‘연화’(최지우)와 신입 사진기자 ‘경현’(안재욱)은 서로 다른 성격으로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점점 묘한 감정을 느끼며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키스 공포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라면, 풋풋함이 흘러넘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집장 역으로 나오는 배우 이경영부터 오프닝 신에 등장한 고소영과 장동건, 이영애 등 특별출연한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누군가의 서툰 연애 시절을 엿보는 것 같은 영화는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다.

<키스할까요?> 오프닝 신

 | 영화보기 | N스토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If Sun Rise Up From Westㅣ1998. 12.19 개봉ㅣ감독 이은ㅣ출연 임창정, 고소영, 차승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모를까, 톱스타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걸까? 야구 심판을 꿈꾸는 교통경찰 ‘범수’(임창정)와 배우를 꿈꾸는 대학생 ‘현주’(고소영)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가까워진다. 그러나 현주가 유학길에 오르며 두 사람은 멀어지게 되고, 몇 년 후 현주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 ‘유하린’이 되어 나타난다. 야구 심판이 된 범수는 여전히 현주를 잊지 못했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톱스타 현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한국시리즈 개막식에서 시구하러 온 톱스타와 심판으로 마주치게 되는데. 한국판 <노팅 힐>(1999)이라 불리는 이 영화는 알고 보면 <노팅 힐>보다 먼저 공개된 러브 스토리로, 국내 관객들에게 입소문 난 작품이다. 당시 가창력을 보유한 가수 겸 배우로 스타덤에 오른 임창정의 연기력이 더욱 빛나는 작품. 당시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코치였던 김성한 야구 감독의 등장을 비롯해 실제 프로야구 선수들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덕에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화의 묘미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OST 'Early in the Morning' 영상

 | 영화보기 | N스토어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If It Snows On Christmas, 1998. 12.19 개봉ㅣ감독 장동홍ㅣ출연 김현주, 박용하

어렸을 적 꿈꿨던 운명의 약속을 기억하는지. 10년 후 크리스마스가 오면 초등학교 교정에서 다시 만나자는 그때 그 약속은 낭만의 약속과도 같았다. 초등학생 때 엄마와 아빠를 하늘로 떠나 보낸 ‘송희’(김현주)는 당시 곁에서 힘이 되어준 ‘수안’(박용하)과 12년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리고 12년 후, 유치원 교사가 된 송희와 성공한 변호사가 된 수안은 우연히 다시 마주치지만, 세월은 두 사람 사이에 너무 큰 간격으로 다가온다. 냉철한 어른이 된 수안과 달리 여전히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송희를 통해 모두를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이브로 데려가는 영화. 극적인 재미보다는 순수한 시절의 감성을 담뿍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예고편 [바로가기] – 한국영상자료원 출처

 

<미술관 옆 동물원>

Art Museum By The Zooㅣ1998. 12. 19 개봉ㅣ감독 이정향ㅣ출연 심은하, 안성기, 이성재

1998년의 끝자락, 12월 19일에 나란히 개봉한 세 편의 멜로 영화 중 지금까지 가장 많이 회자한 작품은 <미술관 옆 동물원>일 것이다. <집으로>(2002)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의 데뷔작으로,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여성 감독으로서 흥행과 비평을 모두 거머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몹시 사랑스러운 90년대 로맨스 그 자체로 기억된다. 스물여섯의 수수한 여자 ‘춘희’(심은하)의 집에 애인 ‘다혜’(송선미)를 찾아 무작정 들이닥친 ‘철수’(이성재)가 예기치 못한 동거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결혼 비디오 촬영기사로 일하는 춘희는 일터에서 종종 마주치는 ‘인공’(안성기)을 짝사랑하며 글을 쓰고, 그것을 도와주던 철수는 함께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만나면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 함께 쓰게 된 시나리오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일까. 미술관, 아니 동물원? 영화가 안내하는 종착지를 따라가 보면 아날로그 향수를 가득 머금은 상큼함을 맛볼 수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 한 장면

 | 영화보기 | N스토어 | 유튜브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