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스틸컷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탓에 불의의 여행을 떠나게 된 한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은 늘 진지하지만 거꾸로 타인에게는 희화의 대상이 되었던 벤 스틸러 특유의 코미디 캐릭터는 어느새 변화해, 이제는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내보이며 인생을 되돌아보는 모습이 더욱 익숙하게 되었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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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웃음을 꿈꾸다

“I think you got to laugh. Because you know after a while you know life is life you know? We all have to deal with what life throws at us, so you got to have a sense of humor about it. If you can share that, at the end, it makes a huge difference.”

“웃어야 한다. 알다시피 삶은 그저 삶이지 않은가? 인생이 우리에게 던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머 감각을 갖춰야 한다. 만일 그 과정에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종국에 엄청난 차이를 불러올 것이다.”

벤 스틸러와 그의 아버지 제리 스틸러. 영화 <쥬랜더>(2001) 스틸컷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코미디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벤 스틸러는 여전히 그의 얼굴만 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이 새어 나오게 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이는 벤 스틸러 이전에 이미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던 그의 부모 제리 스틸러와 앤 미라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도 있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배우 이외의 촬영이나 연출에도 관심을 두고 코미디 각본가를 꿈꿀 만큼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강한 열망과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청년, 웃음을 버무리다

성인이 된 후 코미디 각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코미디 배우이자 연출, 제작자로 벤 스틸러는 승승장구한다. 청춘의 풋풋한 사랑 내음이 가득한 정극 로맨스물 <청춘 스케치>(1994)에서 연출,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배우로서 그의 이름을 알린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1998)나 <미트 페어런츠>(2000) 같은 작품들은 모두 벤 스틸러의 유쾌한 캐릭터를 정착시킨 코미디 영화다.

<청춘스케치> 포스터와 영화 속 벤 스틸러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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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눈썹에 부릅뜬 눈, 굳게 다문 입술 등이 인상을 결정해서일까. 청년 벤 스틸러의 코미디 작품들 속에서 그는 언제나 순수하고 정직하며 진지하기도 한 모범적 인물이지만 동시에 소심하거나 고집스럽기도 한 인물이다. 거만하거나 참다못해 화를 내 곤경에 빠지고 창피를 당한다. 그럴 때마다 튀어나오는 벤 스틸러의 억울한 표정은 영화 <쥬랜더>(2001), <쥬랜더 리턴즈>(2016)에서 아예 고유한 코믹 설정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쥬랜더 리턴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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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웃음으로 위로하다

소년과 청년 시절 벤 스틸러에게 웃음이 삶의 목적이자 일상이었다면 어느덧 중년에 이른 그에게 웃음은 무거운 삶의 무게를 한층 가볍게 성찰하게 해주는 힐링 도구가 된다. 노아 바움벡의 작품 <그린버그>(2010)와 <위아영>(2014)에서 벤 스틸러는 각기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번뜩이는 기지와 비범한 능력을 갖췄음에도 젊은 시절 뭐 하나 이뤄놓은 것 없다는 자신의 자격지심에 우스꽝스럽게 시달리는 어른을 연기해 평범한 우리 모두를 대변한다.

<위아영> 스틸컷

이에 대한 벤 스틸러의 결론은 한결같다. 고집과 집착을 버리고 순간에 집중하는 것, 때로 그러한 나를 가만히 관조하는 것. 근래에 역시 그의 정극 연기가 빛을 발했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또한 중년의 벤 스틸러가 생각하는 삶의 정수가 원작 속에 잘 녹아 든 작품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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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벤 스틸러식 순진무구한 코믹 연기는 갈수록 줄어들지만, 늘어가는 흰머리만큼 지혜도 늘어만 간다. 물론 그는 자신이 체득한 것을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살며시 건넨다. 정통 코미디 작품인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최근작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2014)에서조차, 장년의 주인공은 아들과 세대 갈등 속에서 스승이 되기보다 배우고 깨닫는 여전한 소년일 따름이다. 만년 소년일 것만 같았던 그가 뜻밖에 어른이 되어 건네는 작위적인 힐링이 결코 불편하지 않은 까닭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스틸컷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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