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엔딩 장면의 음악이나 엔딩 크레딧의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영화는 시청각을 동시에 활용하는 매체이지만, 보다 추상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의 변화가 가능한 것이 청각이며 시각적 잔상보다 청각적 잔향이 기억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2010년대 영화 속 엔딩음악을 추억해본다. 2020년까지는 아직 4개월가량 시간이 남았지만 미리 지난 시기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거대한 세계

<인셉션> 스틸컷

실제로 존재하는 우주부터 가상 세계에 이르기까지, 당연하게도 '지금' '바로' '현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최첨단 감각적 묘사가 2010년대 들어 잦아진다. 거대한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이전에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발달한 영화기술을 통해 더욱 다양한 상상의 실현과 그에 걸맞은 생생하고 장엄한 표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셉션>(2010)의 메인 테마이자 엔딩 타이틀인 ‘Time’은 그 결말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현실 그 이상의 위대한 대서사시를 매조지기에 적절한 음악이다. <그래비티>(2013)의 메인 테마 및 엔딩 타이틀인 ‘Gravity’도, <컨택트>(2016)의 오프닝과 엔딩을 동시에 장식하는 ‘On the Nature of Daylight’도 서서히 결을 더해가는 서정과 대편성된 관현악의 웅장한 사운드를 통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귓속을 떠돈다.

<인셉션> 예고편
<인셉션> OST MV - Hans Zimmer 'Time'

 

사랑의 인연

<캐롤> 스틸컷

한 편에서 한없이 거대한 세계를 다뤘다면, 2010년대의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감동으로써 사랑의 인연을 그리고 있었다. 다만 지난 시대와 달리 훨씬 다양한 사랑의 양태를 더욱 아름답게 그려낼 줄 알게 되었다. <캐롤>(2015)에서 두 주인공의 숨 막히는 시선이 가까워짐에 따라 감정의 깊이를 더해가는 엔딩 곡 ‘The End’나 이 시대 마지막 전설적인 록밴드라는 아케이드 파이어가 <그녀>(Her, 2013)의 소박하고 잔잔한 마무리를 책임지는 ‘Dimensions’가 그랬다. <플립>(2010)에서는 13살 소년, 소녀의 사랑이 영화 속 시대에 맞는 1989년 노래 ‘Let It Be Me’로 장식되면서도 절대 촌스럽지 않고 더할 나위 없이 예쁜 순간으로 완성된다.

<그녀> 예고편

가장 의외의 로맨틱함이 번져 나오는 때는 영화 <드라이브>(2011)의 엔딩 신이다. 아이콘이 됐던 주인공의 철 지난 블루종 재킷만큼이나 진한 레트로 무드의 신스팝 ‘A Real Hero’가 다른 영화에서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멋과 감성으로 주인공 두 사람의 마지막을 장식해준다. 가장 최근의 <라라 랜드>(2016)는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전 엔딩 곡 ‘Epilogue’부터 ‘The End’까지 이어지는 시퀀스를 통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드라이브> 예고편

 

정신병과 우울

<스토커> 스틸컷

때로는 조금 난해하거나 불편하게 현대인의 정신병과 우울을 예술적으로 매만진 작품들도 기억에 남는다. <멜랑꼴리아>(2011)의 엔딩 신과 이를 장식하는 강렬한 엔딩 타이틀 ‘Escape Window’는 파격의 미학을 사랑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명성에 가장 잘 들어맞는 도구이다. <아노말리사>(2015)의 엔딩 크레딧 ‘None Of Them Are You’는 다소 독특한 심리적 질병을 앓는 주인공과 주변인의 아픔을 담담하게 표현해 저릿한 뒷맛을 주고, 차이코프스키의 클래식 <백조의 호수> ‘정경’을 편곡한 <블랙 스완>(2010)의 엔딩 곡 ‘Perfection’은 정신 강박과 분열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처절한 욕망을 장렬하고도 드라마틱하게 폭발시킨다. 에밀리 웰스의 ‘Becomes the Color’는 <스토커>(2013) 결말의 혼란을 더욱 가중한다.

Emily Wells ‘Becomes the Color’ 공연실황 (출처: KINK 라디오)

 

삶의 지속

<보이후드> 스틸컷

앞선 영화의 수없이 자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 깊게 남는 엔딩은 화면 속 세계와 한정된 관계의 완전한 끝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의 여운과 그에 대한 사랑을 붙잡게 하는 영화들이었다. 노래의 주제와 맞물려 씁쓸한 우회적 교훈과 정취를 남겨내는 <소셜 네트워크>(2010) 엔딩 신의 ‘Baby You're Rich’가 그러했고, 너무나 정직하게 오래도록 남는 작별인사를 건네는 <토이 스토리 3>(2010)의 ‘So Long’이 그랬다. 영화는 끝이 나고 주인공의 삶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우리 삶의 지금 이 순간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보이후드>(2014)의 마지막이 그랬다. 그리고 영화는 엔딩 크레딧 속 아케이드 파이어의 ‘Deep Blue’로 넘어간다. “Let the century pass me by, standing under night sky. Tomorrow means nothing...”

<보이후드> 예고편
Arcade Fire ‘Deep Blue’ MV

 

 

Editor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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