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프리미엄 채널 HBO의 50부작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는 1920년대 미국 애틀랜틱 시티를 배경으로 밀주, 도박, 매춘, 갈취를 통해 30여 년간 도시를 장악한 실존 인물 에녹 존슨(Enoch Lewis "Nucky" Johnson, 1883~1941)을 모델로 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정치인이었지만 뒤에서는 불법 사업에 개입하며 적들을 소리소문없이 제거하는 조직범죄자였다. 자선사업이나 주위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뿌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마약단속국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다니다가 결국 탈세 혐의로 실형을 살고 몰락한 인물이다.

<보드워크 엠파이어> 예고편

<비열한 거리>(1973), <좋은 친구들>(1990), <카지노>(1995), <갱스 오브 뉴욕>(2002)과 같은 걸출한 갱스터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 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드라마 형식을 빌어 갱스터 이야기를 풀었다. HBO 화제작 <소프라노스>의 극작가 테렌스 윈터와 손을 잡고 제작한 드라마는 2010년부터 다섯 시즌 50부작으로 방송되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고 20개의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최우수 TV 시리즈상을 수상했다. 스티브 부세미의 연기나 스토리 구성도 뛰어났지만, 1920년대 금주법 시기의 시대상을 놀랍도록 제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다. 세 가지 키워드로 <보드워크 엠파이어>가 제공하는 시청 포인트를 알아 보자.

 

애틀랜틱 시티의 보드워크

애틀랜틱 시티는 1850년대부터 호텔과 카지노 시설이 밀집한 휴양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서양의 거센 바람으로 해변의 고급호텔 로비에 모래가 밀려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1870년부터 나무로 된 보도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10여 킬로미터 정도로 넓고 길어져 애틀랜틱 시티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주변에는 놀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하여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한 장면

드라마에서 에녹 톰슨 역을 맡은 스티브 부세미가 느긋하게 보드워크를 산책하며 주변 상인들과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흔하게 나온다. 그는 1921년에 건축된 리츠칼튼 호텔 9층을 통째로 전세 내어 거주하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여 ‘리츠의 황제(The Czar of the Ritz)’라 불렸다.

1921년 건축된 애틀랜틱 시티 리츠칼튼 호텔의 현재 경관

 

스티브 부세미가 연기한 에녹 존슨

드라마에서 스티브 부세미가 연기하는 실존 인물 에녹 ‘너키’ 존슨은 아버지에 이어 보안관에 당선되어 공화당 지부의 고위직을 역임하며 애틀랜틱 시티 정계의 실력자로 부상한다. 이후 친동생을 보안관에 당선시키고, 자신은 시 재무장관이 되어 도시를 장악한다. 1919년 금주법이 발효되면서 그는 밀주에 가담하거나 이를 묵인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밀주를 통한 관광객의 증가나 대규모 컨벤션 센터를 건설하여 도시의 급성장에도 기여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배우 스티브 부세미(좌)가 연기한 에녹 존슨(우). 에녹 존슨은 실제로 양복에 카네이션을 꽂고 다녔다

그는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주변의 곤궁한 사람들이나 자선기금에 돈을 선뜻 나눠 주어 항상 인기가 있었다. “내가 돈이 많아야 주변 사람들도 돈이 많다”라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애틀랜틱 시티를 지배한지 30년만인 1941년 연방정부의 끈질긴 추적 끝에 세금포탈로 기소되어 10년 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는 출소 후 정치적 재기를 노리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68년 사망했다.

에녹 존슨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

 

1920년대의 조직범죄 스토리

1920년대는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유럽의 이민자들이 몰려들며 미국의 조직범죄가 형성되던 시기다. 당시 에녹 존슨은 1927년 ‘Big Seven Group’라는 동부지역 밀주업자의 연합체를 결성하는데, 이들은 밀주업으로 큰 돈을 벌며 조직범죄의 보스로 성장한다. 2년 후에는 애틀랜틱 시티에 새로 지은 컨벤션 센터에서 컨퍼런스까지 열게 된다. 연합체의 일원이었던 시카고의 유명 갱스터 알 카포네(Alphonse Gabriel Capone)도 컨퍼런스에 참가했는데, 그 당시 함께 보드워크를 걸어가며 찍은 사진은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알 카포네(왼쪽에서 네 번째)와 에녹 존슨(왼쪽에서 다섯 번째)

드라마에는 에녹 존슨 외에도 많은 갱스터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실존 인물이다. 뉴욕의 파이브 패밀리(Five Family)를 창설했던 찰스 루치아노(Charles ‘Lucky’ Luciano), 러시아 출신의 갱스터 메이어 랭스키(Meyer Lansky), 유태인 갱스터이며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친구로 묘사되는 아놀드 로스틴(Arnold Rothstein), 알 카포네의 보스 자니 토리오(Johnny Torrio), 폴란드 출신의 필라델피아 갱 미키 더피(Mickey Duffy, 드라마에서는 Mickey Doyle로 나온다) 같은 실존 갱스터를 모티프로 한 인물들이 펼치는 범죄 드라마는 한층 현실감 있는 흥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