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My Little Airport의 멤버. 아P(阿P)와 니콜(Nicole) (이미지- My Little Airport 페이스북)

마이 리틀 에어포트(My Little Airport, 이하 ‘MLA’)는 홍콩의 인디 팝 밴드다.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던 동갑내기 친구 아P(阿P)와 니콜(Nicole)이 만나 2003년 밴드 MLA를 결성했다. 아P가 작사와 작곡, 연주를 하면 니콜이 그 위에 목소리를 얹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체제를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2004년 소소하게 음악을 하는 친구들 12명을 불러모아 음반사 ‘harbour records(維港唱片)’를 설립하고 데뷔 앨범 <在動物園散步才是正經事(동물원을 산책하는 올바른 일)>을 발매했다. 단출한 악기와 기교 섞이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로 사랑과 질투를 노래한 이 앨범은 트위 팝(Twee pop)이라는 명확한 장르를 입으며 밴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정립했다. 싸구려 디지털 피아노(Casio PT-30) 악기만을 사용해 녹음한 밴드의 첫 앨범이었다.

데뷔앨범에 수록한 '在動物園散步才是正經事(동물원을 산책하는 올바른 일)’. 뿅뿅거리고 짤랑대는 멜로디가 돋보이는 밴드 초기의 대표곡이다

2005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只因當時太緊張(그땐 너무 긴장해서)>에서는 기존의 멜로디에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를 삽입했고, 2년 뒤인 2007년에는 <我們在炎熱與抑鬱的夏天, 無法停止抽煙(덥고 우울한 여름날에도 우리는 흡연을 멈출 수 없다)>라는, MLA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제목의 앨범을 발표했다. 당시 졸업과 취업, 음악인의 기로에서 으레 숱한 고민을 이어온 MLA의 복잡하고 우울한 심경을 되레 밝고 상큼한 멜로디에 기록한 음반이다.

오늘날까지 발표한 총 8장의 정규앨범. 앨범 커버에는 매번 서로 다른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았지만 정작 멤버 자신들의 얼굴을 커버에 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MLA의 팬이자 마카오 과학기술대 학생이 만든 ‘浪漫九龍塘(낭만 구룡탕)’ 뮤직비디오

아마도 2009년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介乎旺角與法國的詩意(몽콕과 프랑스 사이에 낀)>이 시작이었다. MLA가 자신들의 정치적 소신을 가사에 담으며 말랑말랑한 트위 팝이나 부르는 ‘귀여운’ 밴드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기 시작한 것이. MLA는 ‘Donald Tsang, Please Die’, ‘北歐是我們的死亡終站(북유럽은 우리의 죽음 종착역)’, ‘社會主義青年(사회주의 청년)’ 등 제목만 들어도 투쟁의 기세가 등등하게 느껴지는 곡들을 만들며 홍콩 민주화를 위해 거침없는 목소리를 냈다. MLA가 2014년 일어난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중국 광저우 개인 콘서트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九龍公園游泳池(주룽 공원 수영장)’ MV

뒤이어 발매한 앨범 <香港是個大商場(홍콩은 거대한 백화점)>(2011)부터는 직접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가사에 담지는 않았으나, ‘삶의 현장’에 발붙이고 살아가기 어려운 젊은 세대들의 씁쓸한 자화상을 정직하게 읊으며 불합리한 사회 현실을 은유적으로 고발했다. 늘 그렇듯, 멜로디는 간결하고 담담했으며 가사는 솔직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대체로 무겁고 거창한 언어 대신,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토대로 가사를 꾸렸다.

‘我是為了兩千蚊才到這裡表演(난 2천 달러를 위해 이곳 공연장에 왔네)’ MV

솔직히 말하면 난 2천 달러를 위해
이곳 공연장에 왔네
6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많은 변화를 겪었네
음악 시장에 더 큰 발전이 없을 거란 걸 깨달았고
나의 멜로디가 점점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을 깨달았고
어느 날엔가는 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네

누군가는 5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5년이란 시간을 지나 고개도 들 수 없을 만큼 가난해졌네
그리고 난 2천 달러를 위해 이곳 공연장에 왔네

14년을 함께 한 이들에게 매번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첫 번째는 “연인 사이가 아니냐”는 질문이고 두 번째는 “정말 연인 사이가 아니냐”는 의심 섞인 확인이다. 이들은 매번 “아니다”라는 똑같은 대답으로 일관하지만,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에는 연신 고개만 저을 뿐이다. 두 사람의 성격에 대해 덧붙이면, 아P는 정직하고 보수적이어서 지나친 도전과 모험을 피하는 편이고 니콜은 용감하고 거침이 없어서, 2008년 홍콩 사회에 실망해 베이징으로 떠나 일 년 동안 가난한 밴드 생활을 한 이력도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어떤 면에서는 뚜렷이 다르지만, 때론 비슷한 구석이 있는 두 사람의 성격과 팀 워크는 14년 동안 함께 해온 세월이 증명한다.

‘年輕的茶餐廳老闆娘(젊은 찻집의 주인아줌마)’

최근 발표한 두 앨범 <適婚的年齡(결혼 적령기)>(2014)와 <火炭麗琪(Fo Tan Lai Ki)>(2016)에서는 실컷 흔들려서 이제는 잔잔해진, MLA의 고적한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다. MLA는 더는 “일자리를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리지도, “권리를 국민에게 돌려달라”고 투쟁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랑이 불가능하다(‘愛情disabled’)”며 담담하게 속삭이고 “더 이상 낭만은 없다(‘土瓜灣情歌’)”며 나지막이 씁쓸함을 전한다. 누군가는 MLA의 내면이 유연하고 깊어진 까닭이라 하지만, 어쩌면 용기 대신 해탈만 얻어가는 우리들의 씁쓸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給親戚看見我一個人食吉野家(혼자 요시노야를 먹는 걸 친척에게 들켰네)’

혼자 요시노야를 먹는 걸 친척에게 들켰네
하마터면 사람을 잘 못 봤다고 말할 뻔했지만
이제 나는 뻔한 인사말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네
사실 소고기덮밥을 내팽개치고 도망칠까 생각도 했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배달시켜 먹을 걸 후회도 했지만

혼자 요시노야를 먹는 걸 친척에게 들켰네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놀던 사이였는데
그는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네
사실 요즘 친척들을 마주치는 게 조금 두려워
어떻게 하면 횡설수설하지 않을까 연습도 했지만
혼자 요시노야를 먹는 걸 친척에게 들켰네
이제는 더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

14년이라는 밴드의 오랜 활동 기간만큼이나, MLA는 많은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시작은 상큼하고 귀여운 트위 팝 밴드, 그 뒤론 정치적 소신을 가사에 담으며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가담한 용감한 청년, 오늘날 여전히 담담한 멜로디와 정직한 가사로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이 스밀, 이들의 음악을 오래오래 새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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