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한(Ram Han)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다. 주로 태블릿이나 PC를 이용한 디지털 드로잉 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그려내며 클라이언트의 러브콜에 응해 전시, 포스터, 앨범 아트웍 등 여러 분야를 헤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가 그리는 그림들, 적어도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들은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대부분이다. 어딘가 괴기한 요소들을 잔뜩 머금고 있지만, 공통으로 비밀스럽고 치명적인 매력을 흘리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앨리스의 원더랜드’에 불시착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도 그리 낯선 감상은 아니다.

그림 속 여성들은 주로 파랗거나 노랗고, 빨간색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붉은 입술과 풍성한 속눈썹,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그윽한 눈동자를 지녔다. 부옇게 번진 수채화같이 두루뭉술한 색감 표현 대신, 보다 쨍하고 화려한 색채로 덧입혀진 각각의 여성들은 자신의 에로틱함을 숨기기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전시한다. 익살스럽고 생동감 가득한 움직임으로 무장한 그림 속 여성들은 각자의 의도를 갖고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작가는 아끼는 티팟, 아름답게 굴곡진 찻잔, 빨간 매니큐어와 립스틱, 체리,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고양이를 즐겨 그린다. 그는 자신과 꼭 닮은 여성들을 한껏 과장된 이미지로 그려 놓고 아끼는 애장품들을 그 위에 끼얹어 비로소 완벽한 기억 한 폭을 완성한다. 부드러운 양감과 영롱한 색,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림들은 현실보다는 일순간의 감정이나 추억의 장면들을 포착해 그린 것이다. 그렇게 채워진 이미지는 작가 자신의 영혼과도 깊숙이 닿아 있다.

 

람한은 자주 한 장의 그림을 여러 부분으로 확대하거나 크롭하여 인스타그램 피드에 보여준다. 어느 한구석도 비우지 않고 이야기를 촘촘히 채워 넣는 디테일은 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동시에 어느 부분을 확대해도 똑같이 아름다운 미감과 한 장의 그림에 적지 않은 이야기가 담긴 듯한 기분은 그저 우연이 아님을 보여주는 작가의 성실한 단서들이다.

람한은 레드벨벳 첫 단독 콘서트 ‘레드룸’ 티저 이미지 및 포스터 아트웍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힙합 크루 오버클래스의 10주년 기념 음반 <Collage 4>의 엽서작업을 진행하고 종합 컬쳐 매거진 <돈패닉> 26호에 커버아트와 플라이어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작가는 개인전 <Nightcap>(2017)을 열고 <과자전> 엽서 프로젝트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서포트하는 등 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 매체와 협업을 이어왔다. 무엇보다, 작가가 수많은 클라이언트와 바쁘게 작업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요구에 맞는 무한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낼 수 있는 까닭이다.

추상적인 감정이나 아른거리는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한 폭의 이미지로 캡처해 두는 것, 잊혀가는 옛 추억이나 향수를 현재로 끄집어와 머릿속에 박제해 두는 것. 람한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쪽에 가까울지 모른다. 어딘가 비밀스럽고 현실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 듯한 인물과 형태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들을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마음껏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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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m Han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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