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Via junkee

소피아 코폴라(이하 ‘소피아’)만큼 화려한 가문과 경력을 소유한 이는 할리우드에서도 드물 것이다.  영화 <대부>(1977~1991)를 연출한 거장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아버지)와 얼마 전 <파리로 가는 길>을 연출한 엘레노어 코폴라(어머니)를 부모로 둔 소피아는,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영화에 출연하고,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며 차근히 커리어를 쌓아 갔다. 특히 패션은 그의 출생과 작품만큼이나 그를 널리 알리게 했는데,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그의 이름을 딴 ‘코폴라 백’을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그 자신은 배우,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눈부신 재능을 발휘했지만, 그를 설명할 때 일 순위에 아로새겨져야 할 수식이 있다면, 역시나 영화감독이 맞다.

1999년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편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을 통해 MTV 무비 어워드 감독상을 안은 소피아는, 이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마리 앙투아네트>(2006), <썸웨어>(2010) 같은 굵직한 작품을 내리 연출하며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인 감독으로 우뚝 섰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끊임없이 구축해가는 소피아의 또렷한 작품 세계를 몇몇 필모그래피와 함께 훑어보았다.

 

<처녀 자살 소동>

The Virgin Suicidesㅣ1999ㅣ감독 소피아 코폴라ㅣ출연 제임스 우즈, 캐슬린 터너, 커스틴 던스트, 조쉬 하트넷

1970년대 미국의 보수적인 마을에 사는 리스본 가족의 다섯 자매에 관한 영화다. 좀처럼 이웃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다섯 자매 중, 막내 ‘세실리아’(한나 R. 홀)가 자살을 기도하면서 이 ‘소동’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그렸다. 소피아 코폴라의 감독 커리어에 성공적인 스타트를 안긴 작품이자 커스틴 던스트와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영화로, 제프리 유제니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가 늘 그렇듯, 스토리의 기승전결이나 이야기 짜임새보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이미지 위주로 덤덤히 흘러간다. 십 대 소녀들의 우울함과 침전의 정서를 온갖 비밀스럽고 금빛 환상으로 가득 찬 몽환적인 미장센으로 승화시킨 수작. 소피아에게 MTV 무비 어워드 ‘최우수 감독상’의 영예를 안겼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ㅣ2003ㅣ감독 소피아 코폴라ㅣ출연 빌 머레이, 스칼렛 요한슨, 지오바니 리비시

‘밥 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도쿄로 여행 온 미국인이다.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낯선 문화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밥 해리스,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역시 일본에 왔지만 외로움과 불확실한 앞날에 대해 번민하던 샬롯, 이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 7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특별한 감정을 나눈다. 영화 속 도쿄라는 배경은, ‘삶의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모든 이들의 씁쓸한 위치를 대변하는 장치일지 모른다.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비롯해 유수의 영화제에 입상하며 영화계의 주목과 극찬을 끌어낸 작품. 지금은 소피아의 남편이 된, 토마스 마스가 보컬로 있는 밴드 피닉스(Phoenix)의 ‘Too Young’이 사운드트랙에 삽입되기도 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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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ㅣ2006ㅣ감독 소피아 코폴라ㅣ출연 커스틴 던스트, 제이슨 슈워츠맨, 립 톤

소피아는 사치와 허영이라는 타이틀, 무수한 스캔들, 굶주려가는 국민들에게 케이크를 먹으라고 외쳤다는 루머들을 끊이지 않고 생성했던 역사적인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금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개입하지 않고 철저하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한 개인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한 점이 그렇다. 곧 눈앞에 닥칠 비극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예쁘고 맛있고 재미있는 것을 보고, 누리는 데에만 골몰한 ‘철부지’ 왕비의 일상을 마치 십 대 할리우드 스타처럼 묘사해 놓은 소피아식 터치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 시대극이 지닌 특유의 우아한 미장센과 고풍스러운 영상미, 의상은 물론 소품 하나하나 허투루 배치하는 법이 없는 화려하고 꼼꼼한 연출미가 보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매혹당한 사람들>

The Beguiledㅣ2017ㅣ감독 소피아 코폴라ㅣ출연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파렐

영화의 배경은 17세기 남북전쟁, 주요공간은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일곱 명의 여자들이 사는 기숙학교다. 이 폐쇄된 공간에 전쟁 중 부상당한 군인이 머물게 되면서 온갖 관계가 얽히고설킨다. 돈 시겔 감독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남성 군인의 시선으로 전개됐던 1971년작과 달리, 오롯이 여성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펼쳐가며 그들 속에 내재된 욕망을 한층 우아하고 절제된 톤으로 묘사한 점이 관전포인트다. 소피아는 이 작품으로 지난 5월 열린 제70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칸 영화제 사상 두 번째로 이 상을 거머쥔 여성이 됐다. 친절함과 광기를 넘나드는 네 주연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이 빚어내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9월 6일 영화관에서 확인하자.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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