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과 상관없이 두고두고 다시 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2000년대 미국 부동산 대공황에 처참히 밀려난 사람들을 긴박감 넘치게 그려낸 영화 <라스트 홈>(99 Homes, 2014)이 그렇다. 앤드류 가필드가 스파이더맨 옷을 벗자마자 선택했고, 묵직한 카리스마로 강한 여운을 남기는 마이클 섀넌이 열연했다. 무엇보다, 그 어떤 폭력보다도 잔인했던 실화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믿고 보는 영화 <라스트 홈>에 관한 몇 가지 장면을 살펴보자.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실화

영화 <라스트 홈>은 2000년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2008년 이후 미국 경제시장에 큰 타격을 입힌 이 대규모 금융 위기는 가히 전 세계적인 경제 혼란이었던 만큼, 앞서 여러 번 다양한 영화의 배경과 주제로 다뤄진 바 있다. 그중 영화 <마진 콜>(2011)은 2008년 발발한 세계 금융 위기 직전, 그 중심에 있던 대형 투자사 이야기를 다뤘다.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다 대중적으로 그리는 데 성공한 영화 <빅쇼트>(2015)는 금융 위기 발생 전 미국의 부패한 금융 시스템을 뒤집으려는 천재 엘리트들의 이야기다.

두 영화가 금융 위기 사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승자’에 주목했다면, <라스트 홈>은 그 이면에 가려진 ‘패자’를 들여다본다. 금융 위기 이후, 하루아침에 집과 직장을 잃은 서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극 중 데니스(앤드류 가필드)는 아들과 엄마를 부양하며 평생 성실한 건축공으로 일했지만, 주택 대출금을 갚지 못해 순식간에 집을 잃고 홈리스 신세가 된다. 구제받을 방법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은행과 법원은 이미 ‘가진 자’의 소유로 전락해버렸다. 그런 절박한 상황은 보는 이에게 고스란히 공감을 부여한다. 그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라스트 홈>은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어느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설득력을 부여한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흔들어 놓은 것은 결국 돈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자, 영웅인가 악당인가

갈등이 오가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단연 배우들이 한몫한다. <라스트 홈>에서는 특히 배우 앤드류 가필드와 마이클 섀넌을 제쳐 놓고 얘기하기 힘들다. 히어로 액션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세상과 사랑을 구하던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맨 오브 스틸>(2013)에서 슈퍼맨에 대적하는 악당 조드 장군으로 활약했던 마이클 섀넌의 만남은 언뜻 영웅과 악당, 선과 악의 만남일 것이라는 생뚱맞은 기시감도 불러일으킨다. 아닌 게 아니라, 성실한 청년 데니스(앤드류 가필드)에게 부동산 중개업자 릭 카버(마이클 섀넌)는 그 어떤 악당보다도 나쁜 악인이다.

은행에 압류된 주택 퇴거 명령을 집행하고 그 주택을 거래하는 릭 카버는 그저 법에 의한 행위라며 당당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는 부조리한 방법으로 이웃들의 집을 무자비하게 빼앗고 있다. 그런 릭 카버에게 일말의 양심과 감정은 그저 낭비일 뿐이다. 그 냉혈한 얼굴로 압도하는 마이클 섀넌은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와 완벽히 동화되어 데니스 못지않은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한편, 데니스 역의 앤드류 가필드는 지키려는 자의 절실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점점 돈의 놀음에 현혹되어 가면서도 양심에 흔들리는 선한 눈동자로 관객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발한다. 실제 홈리스 가족들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감정을 느꼈고, 또 영화의 주연 겸 제작자로 나서며 작품에 대한 남다른 각오를 새겨온 앤드류 가필드의 노력이 그대로 전해진다. 

 

너무나도 잔인한, 99명의 현실

가족과 오랫동안 살던 집을 빼앗긴 데니스는 집을 되찾기 위해 막일이든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다. 그 점을 눈여겨본 릭 카버는 데니스에게 소일거리를 주기 시작하고, 점차 부동산 관련 일을 맡기며 큰돈을 준다. 데니스는 릭 카버에게 뺏긴 집을 다시 사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직원이 되어 일한다. 그것이 부조리한 방법으로 부동산을 거래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데니스에게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고, 집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속 깊어진 경기 침체에서 실업자인 데니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의 원제는 <99 Homes>다. 극 중 릭 카버는 이렇게 말한다. 100명 중 한 명만 방주에 탈 수 있고, 나머지 99명은 가라앉는다고.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가지만 더없이 불편하게 와 닿는 이 한마디가 영화를 관통한다. 나아가 지금 이 시대의 관객에게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정당한 답을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을 꾸짖으면서.

영화 <라스트 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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