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사랑한 파리지앵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의 삶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엄청난 유명 인사, 동시에 평가 절하된 예술가, 무려 45만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남긴 복잡하고도 다양한 작품 세계의 소유자, 로베르 두아노의 생생한 삶의 순간들을 몇 장의 사진으로 먼저 만나보자.

 

로베르 두아노는 누구인가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 1912~1994.4.1)

로베르 두아노(이하 ‘두아노’)는 프랑스의 휴머니스트 사진가다. 1930년대부터 사진작가로 활약하기 시작해 꾸준히 파리 시민의 삶을 사실적이고 낭만적인 흑백사진에 담았다. 프랑스의 신문, 잡지와 미국의 <라이프>, <포춘> 등 유수의 잡지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 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예술 사진들을 발표했으며, 1950년 파리시청 앞 거리에서 젊은 남녀 한 쌍이 키스하는 순간을 포착한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걸작으로 꼽힌다. 여기까지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아래 두아노의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사진과 삶을 통해, 그와 그의 사진에 대해 갖고 있는 클리셰를 뒤집어본다.

 

로베르 두아노의 프레임이 향한 곳

젊은 시절의 두아노와 그의 아내 피에레트르

7살에 고아가 된 두아노에겐 어린 시절의 상처가 그의 운명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파리 교외를 배경으로 성장하면서, 늘 배척당하고 있다는 자각 속에 살았다. 열세 살 때 예술직업학교에 입학해 사라져가던 특이한 분야인 석판 인쇄술을 배웠다. 학교에 갇혀 쓸데없는 기술을 배우다 우연한 계기로 사진을 접했고, 몇 년 뒤 르노 자동차 공장에서 사진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만나는 공장 노동자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두아노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5년간의 월급쟁이 생활이었다.

두아노는 무대를 만들고, 손주들을 올려놓았다
두아노와 그의 손주들

억압적인 가정에서 사춘기를 보낸 두아노의 꿈은 따뜻한 저녁을 먹으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수다를 떠는 평범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22세에 그의 뮤즈이자 평생을 함께한 아내 피에레트르와 결혼해 파리 남쪽 몽루주에 예쁜 작업실 겸 보금자리를 얻었다. 드디어 사진작가로서 두아노의 삶과 그가 그토록 바라던 대가족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두아노는 가정집을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했고 그곳은 딸들과 손주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욕실은 두아노의 현상실이 되었고 식탁은 회의실이 되는 등 가족의 일상은 두아노의 작품 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두아노는 언제나 만날 수 있는 가족을 비롯해 친구, 이웃, 파리 시민들을 마음껏 찍었다. 주변 곳곳에 늘 사회적 어둠과 불행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다정했던 사람들과 행복의 순간을 렌즈 속에 붙잡아 두려 애썼다.

이쯤 되면 두아노가 올드 파리지앵의 정체성을 구현한 작가로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이 편의로 정해 놓은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미래를 받아들였으며, 노스탤지어를 기피했다. 그는 유쾌하고, 불손했으며, 언제나 분주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인 세계를 좋아했고, 그들과 금방 친해졌다. 어디를 가든 사람을 만났고, 만남은 곧 사진이 되었다. 세상을 비판하고자 할 때는 세상이 변할 수 있는 방향, 변해야 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그래서 두아노는 보여지는 그대로가 아닌, 그가 원하는 삶의 풍경을 계산하고, 연출하고,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찰나의 순간 망설임 없이 셔터를 눌렀다. 사랑하는 대가족과 우정을 나눈 이웃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등 동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려 지내며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카메라에 선명하게 담았다.

두아노가 찍은 줄리엣 비노쉬
두아노가 찍은 이자벨 위페르

 

시청 앞에서의 키스

1980년대 시청 앞에서의 키스 사진은 어디에나 있었다. 십 대라면 모두 방에 걸었고 우디 앨런의 영화 속에도, 심지어 문신으로도 새겨질 만큼 한 세대의 정신적 상징으로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50년대에 찍었으나, 1980년대 포스터로 만들어지면서 크게 유명해진 이 사진은 미국 <라이프> 지의 의뢰를 받아 촬영됐다. ‘파리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제안받았으나, 당시에는 요즘처럼 쉽게 거리에서 키스를 하지 않았고 두아노는 영화감독처럼 배우가 필요했다. 그는 연기학교에서 연인을 연기할 배우 지망생을 섭외했고, 둘은 파리 곳곳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들렌 사원, 콩코르드 광장, 그리고 시청 바로 옆 백화점. 두아노가 시청 앞에서 구도를 잡고, 포즈를 취한 연인의 뒤로 모자 쓴 남자가 지나가던 순간 바로 그 사진이 찍혔다.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그리고 마침내 두아노의 삶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과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식, 그리고 자유로운 파리 젊은이들의 입맞춤까지.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파리의 여러 색을 필름에 담아낸 두아노의 삶을 그의 손녀, 예술가 친구들, 그리고 뮤즈들의 목소리로 솔직하고 경쾌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저널리스트, 작가, 출판인이자 가장 가까이에서 두아노를 지켜봐 온 손녀 클레망틴 드루디유(Clementine Deroudille)가 연출과 내레이션을 맡아 생동감을 높인다. 아직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편지, 노트, 밀착 인화지, 이미지, 홈 비디오, 그의 개인사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다큐멘터리에 모두 담겼다. 두아노의 경쾌했던 삶의 숨결을 천천히 느껴볼 차례다.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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