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는 집요한 리얼리즘을 그린다. 2002년 장편 <내겐 너무 멋진 서쪽 나라>로 감독에 데뷔해 오늘날까지 총 4편의 장편을 연출했으며, 그중 3편이 칸영화제에 입상했다. ‘다르덴 형제를 잇는 칸의 위너’라는 수식이 늘 따라붙는 크리스티안 문쥬의 최근 작품 <엘리자의 내일>과 함께, 그의 스릴러적 리얼리즘이 도드라진 필모그래피를 두루 훑어보았다. 줄곧 루마니아의 암울한 사회 현실을 사실적이고 팽팽하게 다루며, 불안감과 답답함 속에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감독의 작품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s, 3 Weeks & 2 Daysㅣ2008ㅣ감독 크리스티안 문쥬ㅣ출연 아나마리아 마린차, 로라 바실리우, 블라드 이바노브

대학생 ‘가비타’(로라 바실리우)는 기숙사에서 짐을 꾸리느라 분주하다. 커다란 여행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넣은 뒤 제모도 하고 매니큐어도 바른다. 기숙사 룸메이트 ‘오틸리아’(아나마리아 마린차)와 함께 시내의 허름한 호텔을 예약하는데, 실은 여행이 목적이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가비타의 불법 임신중절을 위해서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에게 가장 큰 명예를 안겨준 작품으로, 1980년대 루마니아에서 피임과 낙태가 금지되고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뒤따랐던 시기, 한 여대생이 불법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나서는 과정을 담았다. 끝내 가비타의 몸속을 빠져나온 형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핏덩이와 고작 비닐봉지 하나 깔고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이뤄진 낙태 현장을 시종 직선적인 앵글과 롱테이크 기법으로 담아낸 장면 연출은 건조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1987년 루마니아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불법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여대생의 딜레마를 어둡게 가라앉은 화면과 음악을 철저히 배제한 사실적인 연출을 통해 그려낸 수작.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및 두 개 부문을 수상했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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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소녀들>

Beyond the Hillsㅣ2012ㅣ감독 크리스티안 문쥬ㅣ출연 크리스티나 플루터, 코스미나 스트라탄

전작이 1987년 당시 루마니아의 억압적인 시대 공기를 그렸다면, <신의 소녀들>은 한발 더 나아가 2005년 루마니아의 한 수녀원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다룬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와 그를 찾아 수녀원에 온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 편협한 교리에 매몰된 광신적 신앙과 보이치타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알리나 사이의 갈등이 빚어내는 비극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결국, 엄격한 규율에 반발하며 번번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알리나의 돌발행동에 불안을 느낀 신부와 수녀들은 그의 몸 안에 깃든 악마를 쫓아낸다는 명목으로 퇴마의식을 준비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해도 믿을 만큼, 수녀원이라는 폐쇄적 공간과 그 속에 놓인 인물들의 사사로운 행동들을 느리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감독 특유의 건조한 연출기법이 도드라진다. 루마니아에서 엑소시즘 의식에 의해 희생된 소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타티아나 니큘레스큐 브랜(Tatiana Niculescu Bran)의 논픽션 소설 <죽음의 고백>을 원작으로 했다. 칸영화제 감독상 및 여우주연상 수상.

<신의 소녀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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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의 내일>

Bacalaureat, Graduation ㅣ2016ㅣ감독 크리스티안 문쥬ㅣ출연 애드리언 티티에니, 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

이 영화도 전작과 비슷한 스릴러적 사실주의 기조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다른 점이라면, 젊은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 전작들과는 달리, 동분서주하는 중년남성의 발걸음을 통해 병폐적인 현대 사회를 꼬집는다는 데 있다. 영화는 자신이 못다 이룬 영국 유학의 꿈을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뒷바라지하는 ‘로메오’(애드리언 티티에니)의 어긋난 부정(父情)을 그린다. 동시에 한 번도 로메오의 기대를 저버린 적 없는 딸 엘리자가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납치를 당하고, 상황은 점점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리얼리즘의 거장 다르덴을 잇는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영화적 색채가 깊이 스민 영화로, 루마니아 연기파 배우 애드리언 티티에니와 마리아 빅토리아 드래거스의 밀도 있는 연기가 뒷받침하며 아슬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제69회 칸영화제 감독상, 시카고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및 각본상을 안았다.

<엘리자의 내일>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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