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휴가철 막바지에 상영한 영화 <47미터>(2017)는 여름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인 상어와 47미터 해저에 고립된다는 고유한 설정을 통해 제작비의 10배 이상을 거두어들이는 박스오피스 성적을 남겼다. 현실적인 조난 상황을 가정했음에도 주인공들이 굳이 위험을 무릅써 발생하는 사건의 동기나 사건을 헤쳐나가는 과정의 과학적 고증 등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저예산으로 전통적인 소재와 신선한 설정을 나름 긴박하고 설득력 있게 어울렸다는 점에서 이유 있는 성공이라 할 만했다.

영화 <47미터> 예고편

 

상어

영화 <언더 워터> 스틸컷

<47미터>(2017)나 <언더 워터>(The Shallows, 2016)처럼 상어를 피해 고립되었다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단순한 플롯의 상어영화가 아직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는 까닭은, 상어가 단지 무서운 외관과 그럴듯한 살상력을 갖추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상어의 생태가 아직도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공격적인 상어 중 가장 큰 종에 속하는 백상아리의 경우 전시용 사육이 실상 실패해 시각화된 영화 이미지로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라는 개념과 여름철 상어영화 유행을 낳은 <죠스>(1975)의 대성공이, 불확실한 정보와 위험성을 바탕으로 (마치 좀비처럼) 상어에 대한 ‘공공의 적’ 이미지를 덧씌워온 까닭도 있다. 토네이도에 휩쓸린 상어가 도시에 출몰하는 아이디어가 주를 이루는 TV용 B급 영화 ‘샤크네이도 시리즈’가 2013년 이래 미국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언더워터>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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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대왕오징어 등 기타생물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스틸컷

사실 바닷속 존재에 대한 공포는 상어 이전에도 존재했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해저 2만리>(1954)의 경우 잠수함 노틸러스호 여정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대왕오징어와의 사투가 긴박하게 그려진다. (앞서 영화화된 1916년 무성영화의 경우 최초로 바닷속에서 촬영되었다.) 19세기에 쓰여져 역시 여러 차례 영화화된 소설 <모비 딕>이나 ‘모비 딕 이야기’의 모티프가 된 실화 중심의 영화 <하트 오브 더 씨>(2015)의 경우도 인간과 거대한 고래와의 대립이 주된 갈등 구도이다. 이와 같은 바다 괴물 설정을 강으로 가져온 <피라냐>(1978)나 <아나콘다>(1997) 같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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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괴물, 외계인 등 가상생물

영화 <딥 라이징> 스틸컷

바다생물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 실제 바다생물에 대한 기대가 줄고 영화기술이 발전하면서부터는 아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바다 괴수를 묘사하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정체불명의 생물체에게 침몰당한 핵잠수함의 이야기나(<심연>(1989)), 여객선을 습격한 현대 해적들이 고대 바다 괴물과 맞닥뜨리는 설정(<딥 라이징>(1998)), 해저에 살고 있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이 고대의 수신 다곤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이야기(<데이곤>(2001)) 등 과거 그저 인형 탈을 쓴 괴수 형태에서 발전된 형태의 바다 괴물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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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선

영화 <트라이앵글> 포스터

굳이 그 존재를 눈앞에 명시하거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유치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미스터리와 추리를 가미한 ‘유령선 이야기’가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선원이 모두 죽은 배가 가라앉지 않은 채 바다를 표류하고 죽은 원혼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아무리 현대인이라도 망망대해의 바다 구석구석을 다 알지 못하고 배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여전히 귀가 솔깃할 법한 흥미거리가 된다. 유령선의 비밀을 담은 호화여객선의 이야기 <고스트쉽>(2002)이나 유령선 소재를 ‘버뮤다 삼각지대’의 괴담과 버무린 <트라이앵글>(2009)과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영화 <트라이앵글> 예고편

지난 바다영화 속 공포의 존재들을 되짚어 보면, 거꾸로 바다생물과 유령선을 단지 진지하고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닌 재미있고 환상적인 존재로 해석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나 표류의 재난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라이프 오브 파이>(2012)가 괜히 더 특별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바다의 ‘감추임’이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의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바다의 존재가 현실에 있든 가상에 있든 혹은 공포스러운 것이든 환상적인 것이든, 저 먼 우주와 반대로 우리 지척에 있음에도 완전히 개척되지 못한 바다에 대한 미지(未知)의 무엇으로서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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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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