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록 페스티벌은 록 밴드의 축제였고, 어느 정도 배타성이 있어 다른 장르의 뮤지션이 끼어들기가 쉽지 않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는 록 이외의 장르, 그리고 음악 이외의 형식을 다양하게 포함하여 종합 예술 잔치를 지향하는 페스티벌이 주류로 떠오르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음악과 공연을 듣고 즐기는 관객의 성향이 폭에 있어서 더욱 넓어졌기 때문이겠죠.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나 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 비욘세(Beyoncé)가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등장하는 것은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지만, 당시만 해도 꽤 화제가 되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다변화의 움직임에서 한발 더 나아가, 편견 없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들 앞에 보통이라면 페스티벌에 나오시지 않는 거장들을 모셔오는 몇몇 기획들도 있었지요. 영상을 보기 전이라면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지만, 보고 난 다음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역시!

 

돌리 파튼(Dolly Parton)

컨트리의 여왕 돌리 파튼(Dolly Parton)은 지금까지 3000곡이 넘는 노래를 만들었으며 그중에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부른 'I Will Always Love You'(1992)의 원곡도 있습니다. 1946년생으로 올해 연세 일흔한 살이지만 최근에도 새 앨범 <Pure & Simple>(2016)을 내고 대규모의 투어를 돌며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지요. 이런 경이로운 에너지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본인이 종종 이야기하듯 시골의 농장에서 건강하게 자랐기 때문일까요. 누군가가 "돌리, 당신은 항상 매우 행복해 보이는군요."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는군요. "아, 그거 보톡스예요."

Dolly Parton 'I Will Always Love You' Glastonbury 2014 (Fan Film)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은 오늘날 영국에서 으뜸가는 음악 축제가 되었습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에 이르는 130만여 평의 공간에서 17만 명이 넘는 관객과 함께 5일 동안 음악과 춤, 코미디, 연극, 서커스, 카바레 쇼 등 다양한 예술의 향연이 펼쳐지는데요. 비록 그때는 이름이 달랐지만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 열린 첫해, 그러니까 1970년부터 스탭들은 돌리 파튼을 섭외하려고 했었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투어 스케줄이 맞지 않았고, 그다음에는 뭐 이래서 안 되고 그다음에도 뭐 저래서 안 되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 몇십 년이 흘러서 드디어, 2014년에 오른 무대에는 사상 최대인 자그마치 18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고 같은 시간에 잡혀 있었던 다른 스테이지의 공연에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여 정작 공연을 해야 하는 아티스트들도 그냥 관두고 돌리 파튼을 보러 갔다고 하네요. 반짝이는 보석들을 수놓고 매달고 걸고 끼우고 나오신 여왕께서는 기타도 치고 밴조도 치고 덜시머도 치고 박수도 치면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흔들었다 뒤집었다가 굽고 볶고 튀기고 끓이고 뭐 하여간 대단했다는데요. 'Jolene'의 공연 영상을 보시면 안전 요원들까지도 관객들을 바라보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Dolly Parton 'Jolene' LIVE

 

서 톰 존스(Sir Tom Jones)

2006년에 영국 왕실에서 작위를 받아 기사가 되신 서 톰 존스(Sir Tom Jones)는 40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는 동안 'It's Not Unusual', 'What's New Pussycat', 'Delilah', 'Green, Green Grass of Home', 'She's a Lady', 'Kiss', 'Sex Bomb' 등 화끈한 명곡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또한, 왕성한 활동은 왕년에 머물지 않고 꾸준하여 2000년, 그러니까 환갑을 넘긴 이후로도 앨범을 여섯 장이나 냈으며 2015년에도 커버 앨범 삼부작 중 마지막 <Long Lost Suitcase>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가수 오디션 텔레비전 쇼 <The Voice UK>에서 코치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Tom Jones <Long Lost Suitcase>(2015) 앨범 커버

티 인 더 파크(T in the Park) 페스티벌은 1994년부터 매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렸던 큰 규모의 음악 축제입니다만, 2016년에 불행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신 2017년에는 같은 주최자가 TRNSMT라는 이름으로 페스티벌을 열어 다행히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직 건재했던 2011년.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와 콜드플레이(Coldplay),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비욘세(Beyoncé)가 헤드라이너로 공연하였던 티 인 더 파크 페스티벌에는 특별한 웨일즈 손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톰 존스는 페스티벌의 무대에 올라 연륜과 품격이 돋보이는 모습으로 뜨거운 목소리와 탁월한 무대매너를 뿜어내며 젊은이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고 하네요.

Tom Jones 'It's Not Unusual' LIVE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

올해 연세 여든아홉 살이신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은 아무래도 디너쇼에 어울리는 분이죠. 진심으로 좋은 뜻에서 말씀드린 건데, 잘 차려진 실내 무대에서의 공연 영상을 보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만약 버트 배커랙의 실내 공연을 그대로 가져와 페스티벌의 야외에서 빛나는 태양, 푸른 하늘, 그리고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들어 보면 어떨까요? 이미 2000년에 글래스톤베리의 스탭들은 그런 생각으로 공연을 추진하였습니다만 당시에 버트 바카락이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아쉽게도 취소됩니다. 그다음 기회는 15년이 지난 2015년 6월 27일. 4시 반이 조금 넘은 오후의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는 첫 곡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지요. 금색 단추가 달린 블레이저와 흰 줄무늬가 그려진 하늘색 셔츠를 입고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몰입하여 연주하고 때로는 읊조리듯 노래하는 이 거장은 낯선 장소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음악을 펼쳐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햇빛을 쪼이듯, 공기를 들이마시듯 노래를 듣고 따라불렀죠. 'That's What Friends Are For'의 공연 영상에 보이는 버트 바카락과 연주자들의 퍼포먼스,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는 사람들의 맞잡은 손과 어깨동무, 그리고 입 모양과 표정, 닌자 거북이 삼인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면은 그대로 하나의 감동적인 뮤직비디오입니다.

Burt Bacharach 'That's What Friends Are For' LIVE

 

한스 짐머(Hans Zimmer)

올해 쉰 아홉 살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Hans Zimmer)는 젊은 시절 'Video Killed the Radio Star'(1979)로 유명한 뉴웨이브 밴드 버글스(Buggles)에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이후 영화 음악 작곡가로 데뷔하여 착실하게 필모그래피와 디스코그래피와 명성을 쌓아 올리는 동안 주로 지낸 곳은 레드 벨벳이 깔린 자신의 스튜디오였고, 사람들 앞에 나선 적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니 마(Johnny Marr)와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가 한스 짐머에게 그랬다죠. "형님, 형님은 여기서 좀 나가서 밖에서 관객들을 직접 눈으로 좀 봐야 해요." 아, 여기서 자니 마는 스미스(The Smiths)의 그 자니 마가 맞고, 영화 <인셉션>(2010) 사운드 트랙의 여러 곡에서 기타를 연주하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퍼렐 윌리엄스는 그 퍼렐이 맞습니다.

한스 짐머의 스튜디오

그래서 시작되었습니다. 한스 짐머는 원래 버글스(Buggles)에서는 키보디스트였지만 사실 기타도 잘 칩니다. 뿐만 아니라 밴조도 칩니다. 노래는 다른 사람 시키면 됩니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나가서 공연을 해보는 거죠. 2016년 런던에서 시작된 유럽 투어는 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내었고 이미 영화를 통해 한스 짐머의 음악에 경도되어 있었던 영화광들과 음악광들과 영화음악 애호가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7년 7월부터는 미국 투어도 시작했죠. 그 전에 오른 무대가 4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였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로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곡으로 공연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여러 사람 앞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휘자로서가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프론트맨으로서 표현한다면 해볼 만 했던 것이었죠. 그리고 그런 기획은 대단히 멋지게 성공하였습니다.

Hans Zimmer 'The Pirates of the Caribbean' (Coachella 2017)

 

Writer

골든 리트리버 + 스탠다드 푸들 = 골든두들. 우민은 '에레나'로 활동하며 2006년 'Say Hello To Every Summer'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2012년 IRMA JAPAN 레이블에서 'tender tender trigger' 앨범을 발표하였다. 태성은 '페일 슈', '플라스틱 피플', '전자양'에서 베이스 플레이어로, 연극 무대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최근에 여름과 바다와 알파카를 담은 노래와 소설, ‘해변의 알파카’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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