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에서 보여준 일본의 국민배우 쿠니무라 준의 악마 연기는 오랫동안 화제였다. 영화 내내 평범한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간교한 웃음과 함께 붉은 눈, 긴 손톱, 거친 피부로 상징되는 악마의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 영상은 그 무시무시했던 마지막 장면이다.
성서에서 루시퍼(Lucifer)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악마는 원래 하늘의 천사였으나, 신에 대항하다가 벌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진다. 때로 인간의 세계에 나타나 신과 인간을 이간질하며 신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존재다. 악마는 단테의 <신곡>이나 밀턴의 <실낙원> 같은 문학작품에 종종 등장했지만, 현대 영화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악마를 연기하는 배우는 언제나 당대 최고의 성격파 명배우 몫이었다.
<이스트윅의 마녀들>의 잭 니콜슨

영화 <샤이닝>에서 광적인 연기의 대명사가 된 잭 니콜슨은 <이스트윅의 마녀들>(1987)에서 수전 서랜든, 쉐어, 미셸 파이퍼가 분한 세 명의 마녀에게 소환되어 이들을 유혹하는 악마로 등장한다. 그는 악마를 제거하는 마법을 알게 된 마녀들의 반격에 대책없이 당하는 덜 떨어진 악마 연기를 보여준다. 교회에서의 모놀로그 연기는 호평을 이끌었다.
<엔젤 하트>의 로버트 드 니로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엔젤 하트>(1987)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사설 탐정인 주인공 해리 엔젤(미키 루크)에게 사람 찾는 일을 맡기는 루이 싸이퍼라는 신비한 인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의 이름에서부터 이들이 천사와 악마의 현신 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긴 손톱의 손으로 계란을 깨서 먹는 모습, 지팡이를 흔들면서 보여주는 악마 문양의 반지에서 로버트 드 니로만의 섬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데블스 에드버킷>의 알 파치노

<데블스 에드버킷>(1997)에서 알 파치노는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로 등장하여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부유한 로펌 대표 존 밀튼으로 등장하여 키아누 리브스의 출세욕과 허영심을 자극해 스스로 타락하게 만들며, 자신은 무대만을 조성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온 인간에게 신에 대한 악마적인 분노를 드러내는 장면은 두고두고 볼 만한 명연기로 화제가 되었다.
<콘스탄틴>의 피터 스토메어

스웨덴 왕립 연극학원 출신의 성격파 배우 피터 스토메어는 <콘스탄틴>(2005)에서 퇴마사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을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지상에 나타난 루시퍼 역할을 맡았다. 영화 <아마겟돈>, <파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워낙 잘 소화한 성격파 배우답게 백색 양복의 으스스한 악마 캐릭터가 자연스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