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 되면 R.E.M.의 'Summer Turns to High'를 듣습니다. 수은주도 올라가고 수증기도 올라가서 그런가요. 여름에서는 어쩐지 상승의 이미지를 느끼게 되는데요. 불꽃놀이처럼 올라가는 계절이 밤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서 화려하게 터질 때 여름은 갑자기 끝나곤 합니다만, 그것은 조금 더 나중의 이야기가 되겠죠. 그때가 되면 후지패브릭(フジファブリック)의 '젊은이의 모든 것(若者のすべて)'을 들으며 만나기로 해요.

The Kooks 'Be Who You Are' MV 

쿡스(The Kooks)의 베스트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벌써 베스트냐고 생각했는데, 따져보니 첫 앨범 <Inside In/Inside Out>(2006)이 나온 게 벌써 11년 전이네요. 굳이 내겠다면 말릴 수 없는 커리어가 엄연히 쌓여 있습니다만, 어쩐지 이들은 여전히 젊고 생생한 이미지라서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La Blogothèque에서 제작하는 이동 라이브 ‘A Take Away Show’ 중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Ooh La'의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는 "2017년에 봐도 여전히 대단하다"거나 "10년이나 지났다니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5월에 발표한 <The Best of... So Far>에는 이들의 대표곡 'Naïve', 'Junk of the Heart(Happy)', 'Bad Habit' 외에도 신곡 "Be Who You Are'와 'Broken Vow'를 수록하였습니다. 밴드는 5월 영국에서 투어를 시작하여 전 세계를 돌며 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네요.

The Kooks 'Ooh La' LIVE

먹먹한 리버브로 갈 곳 없는 감정을 잡아낸 'Pumped Up Kicks'를 수록한 앨범 <Torches>(2011)로 화려하게 데뷔하였던 포스터 더 피플(Foster the People)이 새 앨범 <Sacred Hearts Club>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Pumped Up Kicks'가 당시부터 지금까지 커다란 인기를 모으기는 했습니다만, 다소 차분하고 우울한 이 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신나게 달리는 'Call It What You Want'와 뮤직비디오가 재미있었던 'Houdini'도 좋았는데요. 전자음의 비중을 줄이고 다소 거친 기타 사운드에 집중하였던 두 번째 앨범 <Supermodel>(2014)에 이어 나온 이번 신보에서는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살려 좀 더 댄서블한 노래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7월 21일 앨범을 발표한 후에도 아직은 'Sit Next to Me'와 'SHC' 등 몇몇 곡의 오디오 온리 비디오와 앨범 제작 다큐멘터리만 공개되어 있습니다만, 항상 좋은 영상을 만들어냈던 이들이기에 앞으로 나올 뮤직비디오가 꽤 기대됩니다.

Foster the People 'Sit Next to Me' Live

‘황소 그리고 나’로 번역할 수 있는 이름 토로 이 모아(Toro y Moi)는 싱어송라이터 Chazwick Bradley Bundick의 스테이지 네임입니다. ‘토로’와 ‘이’는 스페인어, 그리고 ‘모아’는 프랑스어로 된 조합이죠. 또한 그는 필리핀 어머니와 아프리칸 아메리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온갖 음악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뮤지션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본인은 음악 활동을 취미로 생각하고 싶다고 하죠. 왜냐면 그래야 만드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일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앨범 커버는 직접 만듭니다. 워시트 아웃(Washed Out)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Ernest Greene와는 절친한 친구이며 함께 칠웨이브(Chillwave)의 대표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있지만 장르로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는 데는 회의적입니다. 이렇듯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어딘가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토로 이 모아의 새 앨범 <Boo Boo>는 전작들과 다르면서도 여전히 ‘쿨’합니다.

Toro y Moi 'Girl Like You' MV

‘뉴질랜드의 차세대 인디 달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페이저데이즈(Fazerdaze)는 아멜리아 머레이(Amelia Murray)의 솔로 프로젝트입니다. 2015년에 셀프 타이틀 EP를 낸 후 올해 발표한 데뷔 앨범 <Morningside>에는 열 곡의 베드룸 팝(Bedroom Pop) 넘버들이 들어있는데요, 베드룸 팝이 무엇인가 하는 얘기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죠. 어쨌든 아멜리아는 대체로 자기 침실에서 곡을 쓴다고 하며, 아닌 게 아니라 누워서 들으면 참 좋은 노래들입니다. 그렇다고 잠을 부르는 종류는 아닙니다만, 뭐랄까 빈둥거리는 시간에 어울리는 느낌이랄까요. 부드럽고 따뜻한 톤의 기타는 자연스럽게 귀를 간질이고, 로우 파이의 질감이 살아 있는 목소리로 부르는 멜로디에서는 꽤 좋은 기분이 느껴집니다. 귀엽고 재치있고 저예산의 분위기가 매력적인 뮤직비디오 'Lucky Girl'을 보다가 생각한 건데, 뉴질랜드에도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Fazerdaze 'Lucky Girl' MV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여름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죠. 방학에 맞추어 극장에서 개봉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이웃집 토토로>(1988), <마녀 배달부 키키>(1989), <모노노케 히메>(1997), 그리고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까지. 이제 지브리 제작팀은 해산하였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2010)와 <추억의 마니>(2014)를 감독하였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米林宏昌) 감독은 지브리 출신의 제작진과 함께 새로운 애니메이션 <메아리와 마녀의 꽃>을 만들어 이번 여름에 개봉하였습니다. 감독은 21세기의 <마녀 배달부 키키>를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그런 판타지 풍의 작품 성격에 맞는 주제가를 만들어 불러줄 수 있는 아티스트로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팀은 역시 세카이 노 오와리(SEKAI NO OWARI)였던 것이죠.

SEKAI NO OWARI 'RAIN' 커버아트

‘세계의 끝’이라는 이름으로 역설적이게도, 젊은이에게 희망과 환상을 선사하는 이 밴드는 주제가를 만들기 위해 애니메이션 제작팀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고 하는데요. 조금은 우울하고 날카로운 이면이 있는 본인들의 스타일은 이 곡에서는 많이 자제되어 있지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애니메이션에 잘 맞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래서 'RAIN'은 세카이 노 오와리의 작품 세계에서 조금 벗어나 보아도 좋겠다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밴드의 홈페이지에서는 요네바야시 감독의 이런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주제가를 처음으로 엔딩 장면에 삽입하여 보고 들었을 때 은유를 담은 구절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슬픔의 비는 갑자기 찾아와서 우리를 젖게 만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힘차게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노래입니다. 이것은 제가 <메아리와 마녀의 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과 완전히 같은 것으로, 그야말로 주제가입니다."

SEKAI NO OWARI 'RAIN'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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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리트리버 + 스탠다드 푸들 = 골든두들. 우민은 '에레나'로 활동하며 2006년 'Say Hello To Every Summer'를 발표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2012년 IRMA JAPAN 레이블에서 'tender tender trigger' 앨범을 발표하였다. 태성은 '페일 슈', '플라스틱 피플', '전자양'에서 베이스 플레이어로, 연극 무대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최근에 여름과 바다와 알파카를 담은 노래와 소설, ‘해변의 알파카’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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