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 특히 100년 전까지 홍등가였던 스토리빌 (Storyville)은 재즈의 발상지이자 전 세계 재즈 팬들이 찾는 성지다. 시내의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재즈 클럽이 성업 중이다. 또한 길거리 뮤지션들의 실력을 보면 왜 뉴올리언스가 재즈의 본고장인지 알 수 있다. 프렌치 쿼터에서 길거리 연주자로 꽤 유명한 도린(Doreen)의 클라리넷 연주를 감상해 보자. 인터넷에서는 전공자들조차 놀랍다는 반응이 나온다.

길거리 연주자 Doreen의 'Just a Close Walk with Thee'(2010)

뉴올리언스는 1700년대 아프리카 노예 수입뿐 아니라 유럽과 아메리카를 잇는 주요 항구 역할을 하며 유흥가가 발달하였고, 독특한 크레올(Creole, 프랑스인과 흑인 혼혈) 문화의 중심지였다. 1863년 노예 해방 이후, 유럽의 클래식 음악에 익숙한 크레올과 아프리카 토속 리듬에 익숙한 흑인이 혼성 밴드를 결성하면서 재즈라는 독특한 음악 장르가 탄생한다.

유흥가의 클럽 연주자와 댄서들이 신나게 스윙을 부르는 모습

스토리빌이 형성되던 1880년대 뉴올리언스는 다양한 혼혈 문화가 공존하였고, 시민들의 일상은 음악으로 충만했다고 전해진다. 브라스 밴드의 시가행진이 일상처럼 행해졌고, 시민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악기들을 수준급으로 다뤄 가정이나 일터, 거리에서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했다.

길거리 밴드의 'The Sheik of Arabi'(Royal Street, 2012)

시민들은 본업 외에 연주회, 장례식 같은 부업이 생기면 악기를 들고나와 용돈을 벌었다. 남부 프랑스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뉴올리언스의 장례식 브라스 밴드의 모습은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묘지로 향할 때는 슬픈 음악을,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올 때는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여 유족들이 슬픔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New Orleans의 장례식

뉴올리언스의 다양성은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 복장, 습관, 요리, 말투에도 해당해 마치 인종 전람회와도 같았다. 이런 다문화 환경에서 탄생한 독특한 음악 장르는, 1917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스토리빌이 폐쇄되면서 양상이 달라진다. 전업 뮤지션들은 북부의 뉴욕이나 시카고로 대거 이주했고, 그곳에서 비로소 ‘재즈’라는 이름이 생기며 상업적인 음악 장르로 본격 발전하기 시작한다.

남부에서 북부로 이주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밴드가 Joe King Oliver’s Creole Band다. 최초의 재즈 스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은 1922년 이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북부로 올라가 스타로 성장했다.

King Oliver's Creole Jazz Band 'Dipper Mouth Blues'(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