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도 달린 모든 주당은 숙취와 함께 눈을 뜨는 순간 스스로 질문한다. 왜 그렇게 많이 마셨을까? 잃어버린 건 없나? 실수한 건 없나? 이런 물음표를 떠올리고 있는 동안엔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예상 밖의 에피소드, 그러니까 ‘흑역사’를 만든 날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끊을 수 없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는 것이다. 맛있는 술과 안주. 가끔 이것보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없다고 여겨지기까지 하는 요소들. 살기 참 팍팍한 요즘 같은 때엔 더. 공인된 주당으로 알려진 홍상수 감독의 술자리를 살펴보자. 극장에서 나오는 우리를 근처 술집으로 잡아끄는 술과 안주, 쌓이는 술병만큼 더해가는 흑역사의 현장이 뒤엉켜 있다. “오늘부터 금주”에서 “오늘까지만 마시고 금주” 중간쯤에 있는 장면인 셈이다.

 

1. <하하하>

HaHaHaㅣ2009ㅣ감독 홍상수ㅣ출연 김상경, 유준상, 문소리, 윤여정

캐나다로 떠나기 전 엄마를 만나러 통영에 들른 ‘문경’(김상경). 통영을 배회하다, 관광 가이드를 하는 ‘성옥’(문소리)을 마음에 담곤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점심을 먹는 줄 알았더니 웬걸, 회에 소주다. 통유리창으로 한낮의 여름 해가 쏟아지는 횟집에서, 만취한 그들은 시를 낭독하고 키스를 한다. 극 중 문경의 어머니(윤여정)가 ‘통영에서 제일 잘하는 복국집’을 운영하니 해장 걱정은 없겠다만, 세상엔 숙취보다 곤란한 게 있다. 예컨대 술 마시다 엉겁결에 형성된 삼각관계 같은.

<하하하>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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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옥희의 영화>

Oki’s Movieㅣ2010ㅣ감독 홍상수ㅣ출연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옥희’(정유미)는 비밀스럽게 연애하고 있는 ‘송 교수’(문성근)와 아차산에 오른다. 아차산 휴게소에 들러 술을 마시는 둘. 송 교수는 옥희에게, 옥희를 사랑하는 ‘진구’(이선균)와 연락하지 말 것을 종용한다. 옥희 때문에 제자인 그를 “공정하게” 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이 대화를 할 때 옥희와 송 교수는 막걸리에 해물파전을 먹고 있다. 사실 옥희는 이전에 진구와도 똑같이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산을 오르는 마음은 각각 다를지라도 내려올 때면 하나같이 막걸리에 파전을 떠올리나 보다. 홍상수의 커플까지도 말이다.

영화 <옥희의 영화>(2010)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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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wonㅣ2012ㅣ감독 홍상수ㅣ출연 정은채, 이선균, 김의성, 김자옥

‘해원’(정은채)과 ‘성준’(이선균)은 대학 영화과 사제지간으로, 남들의 눈을 피해 몰래 사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그들의 연애. 하필 찾아간 고깃집에는 해원의 전 남친(안재홍)을 포함한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둘은 어쩔 수 없이 합석하게 된다. 닭볶음탕을 두고 소주를 마시던 그들은 곧 불콰하게 취해 버린다. 술김을 빌어 친구들은 해원에 대한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 알루미늄 물잔에 소주를 부어 계속 원샷하던 해원은 끝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고 만다. 성준은 해원을 따라나서지 않고 곤란한 표정만 짓는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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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선희>

Our Sunhiㅣ2013ㅣ감독 홍상수ㅣ출연 정유미, 이선균, 김상중, 정재영

“치킨엔 맥주”라고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하나같이 “치킨에 소주”를 외쳤다. <우리 선희>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치킨을 시킨다. 상황은 다음과 같다. 추천장을 받기 위해 학교를 찾은 ‘선희’(정유미). 학교 앞 치킨집에서 낮술을 하다가 전 애인 ‘문수’(이선균)를 만난다. 프라이드치킨을 안주로 글라스에 소주를 마시던 문수는 결국 취해서 선희에게 ‘질척대다’ 다시 한 번 거절당한다. 마음이 상한 채로 학교 선배인 ‘재학’(정재영)의 단골 술집을 찾는데, 문수의 타들어 가는 속은 아랑곳없이 술집 주인(예지원)은 치킨만 권한다. 심지어 자기 가게 메뉴도 아닌 이 치킨은, 단골인 재학의 말에 따르면 기름기도 적고 잘 튀겨졌다.

<우리 선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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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유의 언덕>

Hill Of Freedomㅣ2014ㅣ감독 홍상수ㅣ출연 카세 료, 문소리, 서영화, 김의성

와인이라고 방심했다가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모리’(카세 료)의 경우가 그렇다. 사랑하는 여자를 찾으러 북촌에 머무는 일본인 모리는 자꾸 와인 마실 일이 생긴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준 보답으로 저녁을 사겠다는 카페 주인 ‘영선’(문소리)과도,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조카 ‘상원’(김의성)이 데려간 작은 술집에서도 그는 와인을 마신다. 차분하고 자제력 있어 보이는 모리지만, 어쩐지 늘 취하고 만다. 영선과는 어영부영 연인 비슷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다른 자리에선 술집 주인인 미국인 남편의 행복(!)과 한국인 부인의 훌륭함(?)을 큰 소리로, 반복적으로 외쳐대며 조금 부끄러운 주정을 하고 만다. 다음날 뼈저리게 후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예의 바른 그가 아무렇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다.

<자유의 언덕>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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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Youself and Yoursㅣ2016ㅣ감독 홍상수ㅣ출연 이유영, 김주혁, 김의성

홍상수 감독이 연남동을 찾았다. 연락이 끊긴 여자친구를 찾아 심야 포차, 막걸릿집, 호프집을 전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연남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막걸리에 파전과 잔치국수 따위를 먹고, 실제인지 환상인지 모를, 아니 상관없는 장면에선 수박을 먹는다. 홍상수의 인물들이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로 술집을, 아니 극장을 달구는지 직접 확인해보자.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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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이미지=<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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