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Keith Jarrett, 1945~)은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 가스펠, 블루스, 포크 같은 다양한 장르를 조합한 크로스오버 피아노 연주자로서, 2003년 스웨덴 왕립음악원의 ‘폴라음악상’, 2004년 ‘덴마크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우리에게는 노르웨이의 색소폰 연주자 얀 가바렉(Jan Gabarek)과의 듀엣곡 ‘My Song’(1977)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Keith Jarrett Quartet 'My Song', Paris(1977)

그는 1970년대 들어와 즉흥 연주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였다. 특정 스탠다드 곡을 따라서 변주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를 한두 개 정해 최대한 길고 자유롭게 떠올린 악상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녹음은 1975년 쾰른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실황 앨범 <The Köln Concert>로, 약 350만 장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며 ‘죽기 전에 들어야 할 명반’으로 꼽힌다.

Keith Jarrett on doing the Koln concert

악보가 없는 즉흥연주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이상한 표정이나 몸짓을 보이는 재즈 연주자들은 많다. 그중 키스 자렛은 가장 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는 연주 중 종종 소리를 지르거나 가성으로 따라 부른다. 행동은 더 기괴하다. 몸을 배배 꼬거나 춤을 추거나 피아노 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아래 트리오 연주에서는 2분이 지나면서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기괴한 동작을 보여준다.

Keith Jarrett Trio 'On Green Dolphin Street'

묘하게도 키스 자렛은 클래식을 연주할 때는 몹시도 고요하게 앉아 연주한다고. 그의 기괴한 표정과 몸짓은 그룹 연주보다 솔로로 즉흥 연주할 때 더 심하다. 1984년 동경에서 앙코르를 요청받고 잠시 첫음절을 고민한 뒤 한바탕 신나는 즉흥연주를 들려준다.

<Keith Jarrett: Last Solo> 중 (Tokyo 1984)

그는 극히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관객의 카메라 플래시를 참지 못하고 바로 퇴장해 원성을 산 경우도 있고, 특정 피아노를 고집하여 관계자의 애를 먹이기도 한다. 관객의 기침 소리를 참지 못하고 일어나 전체 관객이 동시에 기침하도록 리드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너무 예민한 탓인지 한때 만성피로증후군 진단을 받아 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던 적도 있다.

키스 자렛 트리오(Keith Jarrett Trio). 왼쪽부터 키스 자렛, 잭 드조네트(Jack DeJohnette), 개리 피콕(Gary Peacock) Daniela Yohannes/Courtesy of the artist via ‘npr

그는 한 인터뷰에서 예의 그 몸짓에 관한 질문을 받고 “몸 안에 감춰진 음악 조각들이 있다면, 그걸 연주해야 하지 않을까요?(If you already have a piece of music ingrained in your body, why would you not play it?)”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피아노를 손으로만 치는 게 아니라 몸 전체로 쳐야 한다고 믿는 키스 자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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