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의 노랫말과 창법에서는 ‘말’이 들린다. 노래하지만 이야기하고, 노랫말로 들려주지만 무언가 읽힌다. 한 권의 책 같은 음악으로 음악적 즐거움 이상의 어떤 것들을 선물해 온 김창완이 글로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1. <이제야 보이네> | 황소자리 | 2005.07.23

기본적으로 음악가의 산문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이 사람이 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하는 궁금함에서 시작한다. 문학적 탁월함을 기대하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지만, 애초에 산문집이 줄 수 있는 기쁨이 무엇이겠나. 이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고, 그 노래는 어쩌다 만들었고,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삶의 궤적들이 한 인간의 예술활동을 완성했나 하는 것들을 알아가는 것 아니겠나.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과 그 속에 배어있는 의식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산문을 읽는 즐거움이다. 그 인간이 ‘김창완’이라면 더더욱. 부록 CD에는 김창완의 노래 ‘이제야 보이네’와 함께 책 내용을 직접 낭독한 목소리가 들어있다.

'이제야 보이네' Live

 

2. <집에 가는 길> | 푸른행복 | 1995.07.15

저자가 40대 초반에 써 내려간 책은 <이제야 보이네>(2005)보다 조금 더 밀도 높은 글들로 차 있다. 삶을 좀 더 예민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결혼생활,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 음악인의 상념 같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데 특히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꽤 상세하고 현실적으로 실려있다. 마치 김창완이 책의 형식을 빌려 누군가에게 전하는 긴 주례사 같기도 하다. 동명의 곡이 수록된 김창완 2집 앨범 전체가 책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니 통째로 틀어 놓고 읽어도 좋겠다.

'집에 가는 길'(1995)

 

3.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 야정문화사 | 1990.12.01

김창완이 CBS 라디오 ‘꿈과 음악 사이에’ 디제이를 하던 시절, 그에게 날마다 편지를 보낸 ‘민초희’라는 소녀가 있었다. 골수암을 앓는 열일곱 소녀가 자신의 투병기를 조곤조곤 써 내려간 편지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느끼는 삶에 대한 간절함과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환자 가족의 사연은 청취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모두 열띤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소녀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열한 살부터 투병 생활을 해 온 소녀의 소원은 스무 살까지만 사는 것. 하지만 소녀는 열여덟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는 민초희의 편지들과 디제이 김창완의 이야기, 후에 동명의 영화를 제작한 이장수 PD(산울림 노래 ‘꼬마야’의 작사가이기도 하다)의 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이다. 누군가의 사연을 소개하고 사연을 보낸 이에게 수많은 사람의 위로와 응원이 도착하는 곳. 그 시절 라디오는 그런 역할을 했다.

김창완 '꼬마야' Live

 

4. <사일런트 머신, 길자> | 마음산책 | 2009.09.10

‘환상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집. 김창완 식 발상에 대한 재확인이자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고, “팩스 잘 받았습니다”라고 외치는, 그의 음악 세계에서 보아왔던 기분 좋은 황당함을 만날 수 있다. 서글픔 속에 숨겨놓은 익살, 비현실 속에 진하게 보이는 현실이 단편 소설 여섯 편에 배어있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음악가가 내놓은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 향기로운 풋내가 난다. 생각해 보면 그의 초기 음악도 그랬다.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패기와 한 30년 해 온 것 같은 노련함이 요상하게 섞여 있었다. 살아온 세월을 잘 씹어 삼켜 차곡차곡 묵혀두면서도 시대적 감각은 끊임없이 새롭게 받아들이는 사람. 낡음 없이 늙는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산울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Live (MBC Top Music 1997)

 

5. [안녕, 나의 모든 하루] | 박하 | 2016.07.25

가장 최근에 나온 김창완 수필집이다. 전작들이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치중했다면, 신작에서는 개인적인 일상의 순간 속 깨달음을 통해 공통의 정서를 건드리며 일정 형태의 '위로'를 주고자 했다는 느낌이 든다. ‘위로'라는 단어를 들으면 내가 위로해줄 혹은 해줘야 할 주위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감히 권하자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자신의 하루하루를 우선 위로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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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오래된 정경들이 넘치는 동네에서 작은 음악 서점인 ‘초원서점’을 운영한다. 방송작가, 스크립터, 콘텐츠 기획 등을 거쳐 공연 카페에 오래 머물렀다. 올해 5월 연 초원서점에서 음악과 닿아 있는 서적들을 판매하며 책, 음악과 관련한 행사들을 기획, 진행한다. 가사가 아름다운 한국 음악들을 특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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