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이다. 2010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플립>은 그래서 2017년 국내 개봉했다. 온전히 작품 자체의 힘으로 입소문을 타고 건너왔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은 대성공이다. 천만 관객을 운운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 틈새에서 조용하게 3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건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믿고 보는 <플립>의 매력이 무엇인지 안 궁금할 수가 없다.

 

시간을 거스른 ‘강제 개봉’

시작은 2010년이 아닌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는 미국의 작가 웬들린 밴 드라닌의 소설 <플립>(2001)을 원작으로 했다. 우연히 아들에게 이 책을 건네받은 롭 라이너 감독은 풋풋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매료되어 곧장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 <플립>은 2010년 북미 개봉 당시 현지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편, 원작 소설은 일찌감치 국내에 소개되었다.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2006, 황매)라는 제목으로 최초 번역됐고, 북미에서 <플립>으로 영화화된 후에는 <두근두근 첫사랑>(2012, 보물창고)이라는 책으로 다시 발간됐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에서 다운로드되기 시작했다. 이후 책으로든 영화로든 은근한 영향력을 퍼트려온 <플립>은 국내 정식 개봉에 이르렀다. 최근 관객들의 요청에 힘입어 개봉하여 일명 ‘강제 개봉작’으로 불린 <겟 아웃>(2017), <지랄발광 17세>(2016)와 같은 경우다. <플립>의 경우에는 무려 7년 만의 ‘지각 개봉’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플립’의 의미

도대체 <플립>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먼저 원작 소설의 줄거리는 이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The first time she saw him, she flipped.” 과연 영화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영화 제목인 ‘Flipped’는 ‘홱 뒤집히다’라는 뜻이다. 어느 날 7살 소녀 ‘줄리’(매들린 캐롤)의 건넛집에 소년 ‘브라이스’(캘런 맥오리피)가 이사를 온다. 소년에게 첫눈에 반한 줄리는 그야말로 눈이 홱 뒤집힌다. 당찬 성격의 줄리는 13살 중학생이 될 때까지 ‘첫사랑’으로 점 찍은 브라이스를 졸졸 따라다닌다. 반면,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의 행동이 부담스러워 피해 다니기 바쁘다. 결국 줄리의 관심과 애정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그에 화가 난 줄리는 오히려 브라이스를 피해 다니기 시작한다.

그런데, 두 주인공의 상황이 홱 뒤집힌다. 이제 잠잠해진 줄리를 흘끔거리며 신경 쓰는 건 브라이스의 몫이다. 영화는 서로 마음이 엇갈리는 줄리와 브라이스의 관점을 교차해 보여준다. 그러는 사이 소녀와 소년은 점차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십 대들은 성장한다. 그들의 사랑과 성장은 보는 이의 관점을 홱 뒤집으며 더 넓은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준다.

 

소녀와 소년

<플립>의 묘미는 단연 귀여운 두 아이, 줄리와 브라이스의 호흡이다. 사랑스러운 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배우들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마련. 대표작 <스윙 보트>(2008)에서 케빈 코스트너와 인상적인 앙상블을 보여준 바 있는 매들린 캐롤은 3살 때 모델로 데뷔, 배우로서 부지런히 경력을 쌓고 있는 배우다. <플립> 캐스팅 당시 ‘줄리’ 역에 가장 먼저 참가했다고.

소녀가 홀딱 반할 만큼 잘생긴 외모의 브라이스, 배우 캘런 맥오리피다. <플립>으로 정식 데뷔한캘런 맥오리피는 이후 마이클 베이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아이 엠 넘버 포>(2011)에서 샘 역으로, 이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2013)에서 개츠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앳된 모습으로 국내 관객에게 모습을 비친 두 배우는 찬찬히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이제는 어엿한 20대 배우가 됐다.

 

우리들의 인생 멘토, 롭 라이너 감독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2007) 촬영 스틸컷. 롭 라이너 감독

<플립>을 믿고 보게 된 데에는 결국 롭 라이너 감독의 공이 컸다. 1960년대 미국 코미디영화계의 대부로 불린 칼 라이너의 아들로도 잘 알려진 그는 자연스레 코미디 대본을 쓰며 연기와 연출을 시작했다. 이후 감독에게 가장 큰 사랑을 가져다준 작품이라면, 십 대 소년의 우정을 그린 <스탠 바이 미>(1986), 친구와 연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재치 있게 풀어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일 것이다. 두 영화는 특유의 유머,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소위 ‘인생 영화’로 꼽힌다. <플립>은 앞의 두 작품이 지닌 매력을 한층 신선하게 녹여냈다고 해도 좋다. 그런 점에서 <플립>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오랫동안 자신만의 장르를 갈고 닦은 롭 라이너 감독의 실력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롭 라이너 감독의 영화를 인생 영화로 삼은 이들에게는 더없이 믿음직한 영화 <플립>을 뿌듯하게 지켜볼 일이다.

<플립>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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