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에게, 특히 아역 배우 출신으로 ‘귀염둥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여배우에게 ‘성장과 나이 듦’이란 두려워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엘르 패닝은 <아이 엠 샘>(2001)에서 전 세계를 사랑에 빠지게 하며 스타가 된 다코타 패닝의 ‘더 어린 시절을 맡은 친동생’으로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때 보여주었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때문에 그의 성장은 그 자체로 평가 대상이 됐다. 누구는 역변이라고, 누구는 예뻐졌다고 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세상 그 어떤 파파라치보다 그의 성장을 흥미로워하는 건 엘르 패닝 자신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의 행보를 보자. 엘르 패닝이 자기 성장의 결과, 그러니까 겅중한 다리, 선하고 총명한 눈빛, 고집스러운 입매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어린 데이지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ㅣ 2008ㅣ감독 데이빗 핀처ㅣ출연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벤자민 버튼의 기구한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다. 엘르 패닝은 80대 노인의 외형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의 일생의 사랑인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의 아역으로 등장한다. 벤자민 버튼과 데이지는 각각 12살, 6살 때 처음 만난다. 물론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은 아니다. 데이지를 잊지 못한 벤자민이 계속 곁을 맴돌았기에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고작 12살 때 마주친 첫사랑을 어떻게 잊을 수 없느냐 묻는 이들에게, 엘르 패닝의 존재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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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슈퍼 에이트>의 앨리스

Super 8ㅣ2011ㅣ감독 J.J. 에이브럼스ㅣ출연 조엘 코트니, 카일 챈들러, 엘르 패닝

‘조’(조엘 코트니)의 어머니가 죽었다. ‘앨리스’의 아버지를 대신해 공장에서 잔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어른들의 사정이 이렇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조가 8mm 카메라 ‘슈퍼 에이트’로 앨리스가 주인공인 좀비 영화를 찍기로 한 것. 그런데 이들의 영화 촬영은 뜻하지 않게 외계인의 출현을 담고, 마을과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엘르 패닝은 순탄치 않은 부모 밑에서 웃자란 여자애 앨리스를 맡았다. 집단의 유일한 여자아이지만, 흔히 재현되는 소녀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또래 남자애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와 차분한 눈빛으로 조용하면서도 강인하게 무리의 중심을 잡는다.

<슈퍼 에이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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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저 앤 로사>의 진저

Ginger & Rosaㅣ2014ㅣ감독 샐리 포터ㅣ출연 엘르 패닝, 앨리스 잉글러트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런던에서 두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빨간 머리의 ‘진저’는 시인이 되고 싶고, 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실천으로 자신의 인생 또한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커다란 눈망울의 유순한 ‘로사’(앨리스 잉글러트)는 진정한 사랑만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다른 성향을 지닌 두 단짝의 우정은 젊고 지적이며 자유분방한 진저의 아빠 ‘롤랜드’(알렉산드로 니볼라)와 성숙한 남자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는 로사 사이의 이상한 기류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엘르 패닝은 핵무기 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시를 쓰고, 친구의 방황을 지켜보는 진저 역을 맡아, 격렬하게 흔들리는 사춘기 소녀의 세계를 차갑고도 뜨겁게 표현해낸다.

<진저 앤 로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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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바웃 레이>의 레이

About Rayㅣ2016ㅣ감독 게비 델랄ㅣ출연 엘르 패닝, 나오미 왓츠, 수잔 서랜든

‘레이’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으로 정의하고 성전환 수술을 결심한 FTM(female-to-male) 트렌스젠더 소년이다. 뉴욕에서 싱글맘, 레즈비언 할머니와 사는 그는 호르몬 요법을 앞두고 묵혀 두었던 가족의 고민과 갈등을 대면하게 된다. 엘르 패닝은 ‘소년’이 되기 위해 과도한 ‘외모적 변신’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저 근육을 키우고, 겨드랑이털을 깎지 않았을 뿐이다. 여배우가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는 사소한 사실조차 뉴스가 되는 세상에서 성전환을 앞둔 소년에게 닥친 몸과 마음의 변화를 표현해낸 엘르 패닝의 안정된 연기는 그가 캐릭터와 언제든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임을 증명해낸다. 그의 성장이 반갑고, 나이 듦이 기대되는 이유다.

<어바웃 레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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