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재수는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그리고 ‘재수의 연습장’이라는 SNS에 꾸준히 올린다. 주로 연필로 그린 무채색의 드로잉에 기발한 장치를 더하고, 재치 넘치는 제목 한 마디를 덧붙인다. 예컨대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다음, 등에(정확히 말하면 등을 그린 종이 위에) 물 한 방울을 떨구고 나서 “30분 경과”라고 제목을 짓는 식이다. 재수의 드로잉 대부분에는 이런 유머가 담겨 있고,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느덧 수십만이 넘었다. 누구나 느껴보고 경험한 적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는 그의 드로잉은 감탄 어린 공감을 얻는다. ‘재수의 연습장’에 자주 등장하는 아내나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 직접 창조한 ‘다람이’ 캐릭터 등이 사랑받는 건 캐릭터의 서사가 곧 독자의 서사가 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그림을 생산하는 ‘재수의 연습장’을 보다 보면 혹여 창작의 원천이 마르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든다. 하지만 그가 아래의 음악을 골라 보내주었을 때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한때 새벽의 감성을 원천으로 창작열을 달구던 그에게는 언제든 다시 새벽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Jessoo says,
“밤을 통해 서서히 새벽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체력이 다하도록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쓰거나 그렸다. 새벽은 고독과 감성이 증폭되는 시간이었고 20대의 창작과 몰입 대부분이 주로 새벽 시간을 거쳐 이루어졌다. 새벽을 중심으로 하루가 움직였다. 30대에 접어들며 여러 가지 이유로 아침형 인간이 된 지 4년 정도가 지났다. 새벽의 창작을 아침으로 옮겨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해낸 것 같다. 하지만 종종 새벽의 그 먹먹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못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찾아 들으며 충만감을 느끼는 곡들을 소개한다.”
1. Apollo18 ‘Warm’
적막함 속의 작은 선율이 서서히 거대한 크기로 상승한다. 어느새 경이로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단 세 명의 사운드로 잠시 거대한 우주가 생긴 것 같다. 멤버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 퍼포먼스에도 눈을 뗄 수 없다.
2. Boards of Canada ‘Dayvan Cowboy’
다큐멘터리를 편집해 지구 밖(?)에서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영상을 뮤직비디오로 만든 것 같다. 예전에는 심벌즈 소리가 파도처럼 마구 몰아치는 후반부를 듣기 위해서 전반부의 지루함을 참았었는데, 지금은 앞부분의 우주적인 감성을 더 좋아하게 됐다.
3. Rainbow99 ‘Dream pop’
홍대 앞 어느 만화방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는데 보고 있던 만화책을 내려놓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곡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꿈속에 잠긴 채 꿈의 바깥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4. 비둘기우유 ‘Goodnight shining’
다소 귀를 힘들게 하는 노이즈가 섞였다 풀렸다 하는데 그 혼란까지 끌어안고 몽환으로 질주하다가 곳곳에서 날개를 펼친다. 들을수록 멋진 혼란이다.
만화가 재수는?
첫 장편만화 <모베러 블루스>와 단편만화 <금붕어의 자살>로 상을 받았다. 웹툰 <파이프 시티>를 포함하여 여러 작업을 해오다, 2014년 1월에 개설한 ‘재수의 연습장’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SNS를 통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 2016년 4월에는 SNS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드로잉을 엮어 책으로 발간했다. 그가 만든 다람쥐 캐릭터 ‘똘망똘망 다람이’는 배지, 에코백, 핸드폰 케이스 같은 굿즈와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도 제작됐다. 꾸준히 SNS를 통해 그림으로 소통하는 그는 현재 차기작과 또다른 이모티콘을 작업 중이다.
프로필
2009 <모베러블루스> SICAF 대상
2011 <금붕어의 자살> 대한민국창작만화공모전 단편 최우수상
2012 <파이프시티> 연재
2013 '창작집단8' 첫번째 단편집 <여행> 참여
2014 페이스북 페이지 '재수의 연습장' 개설
2014 <감정코치 K> 1, 2권 출간 (그림)
2015 <천적> 1, 2, 3권 연재 및 출간 (그림)
2016 [재수의 연습장, 그림이 힘이 되는 순간] 출간
'재수의 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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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재수의 연습장’ 페이스북, ⓒ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