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춥다. 봄부터 미리 사놓은 겨울에 듣기 좋은 세 장의 레코드를 들을 때다. 2016년 발매 음반 중 고른 음악이다.

Various, <Valgusesse>

에스토니아는 추울까 더울까. 러시아 서쪽 발트 해 연안의 나라인 한편 흔히 북유럽이라 칭하는 노르딕 국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보다는 남쪽에 있다. 구소련 연방 소속이었으며 수도 탈린이 힙스터들의 여행지로 깨나 주목받는다는 것 정도 말고는 크게 아는 바가 없다. 에스토니아의 ‘Frotee’는 자국을 비롯한 동구권의 숨겨진 음반을 발굴하는 레이블이다. 요트 록, AOR, 재즈 퓨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대개 ‘느슨한 그루브’가 담긴 음악을 선별한다. 보통은 더운 나라에서(혹은 그런 곳에서 제작한 경우) 각광받는 장르지만, 어쩐지 Frotee의 발매작들은 비슷한 인상이라도 해변에 늘어져 누워있기보다 난로 앞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듣는 게 더 적절한 듯한 한기가 배어 있어 새롭다. <Valgusesse>는 에스토니아 공영 라디오 방송의 아카이브에서 고른 여덟 곡을 실은 음반이다. 물론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다. 어느 때보다 라디오를 켜기 좋은 계절, Frotee의 슬로건인 “당신은 존재하는지 몰랐을 레코드”라는 말이 더욱 적절하게 들린다. ‘Valgusesse’는 에스토니아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Salamander ‘Kui Mu Kõrval Käid’
Tornaado ‘Seitse’

 

 

Various, <Midnite Spares>

지난해부터 부쩍 호주, 구체적으로 멜버른이 궁금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Harvey Sutherland’와 ‘Voyage Recordings’의 약진, 라디오 방송국 ‘Noise In My Head’의 레이블 화, Mall Grab의 혜성 같은 데뷔, ‘Superconscious Records’의 종횡무진 활약, 믹스 채널 ‘Sanpo Disco’의 등장…. <FACT>가 ‘알아둬야 할 10개의 호주 레이블’과 ‘지켜볼 만한 15명의 전자음악 아티스트’란 기사를 전격적으로 낸 것이 작년 초이니, 그동안 멜버른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그 ‘15명의 아티스트’ 중 첫 번째로 호명된 Andras는 이런 ‘오스트레일리언 인베이전’의 기수라 할 만하다. <Midnite Spares>는 바로 그 Andras와 그의 동료 Instant Peterson(디제이이자, Wilson Tanner의 <69> 음반 커버를 그리기도 한)가 추린 호주의 1980~90년대 일렉트로닉, 아방가르드 팝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자신의 도시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지금, 대표주자로서 거기에 ‘로컬’의 바람을 더욱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펑크 시대의 실험이 한창이던 때인 만큼 수록곡에는 D.I.Y.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드러나며, 실제 카세트테이프로만 제작하거나 편집 음반에 수록하는 데 그친 생경한 곡들도 포함되어 있다. 뉴 웨이브와 콜드 웨이브가 지하실과 차고의 서늘한 기운을 머금었을 때 나오는 소리들. 멜버른은 호주 내에서도 변덕스러운 날씨로 악명이 높다.

Whadya Want? ‘Open Spaces’
Foot and Mouth ‘I Want My Mummy’

 

Angelo Badalamenti, <Twin Peaks>

<Twin Peaks>는 1990년에서 91년까지 방영한 데이빗 린치의 미스터리물 TV 시리즈다. 그런데 각 회를 시작하는 약 2분 30초가량의 오프닝 타이틀에는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온다. 나무에 앉은 새, 연기를 뿜는 공장 굴뚝, 산과 길, 느리게 재생해 천천히 부서지는 폭포, 강물 같은 도시의 정경을 뿌옇게 보여줄 뿐. 즉, 분위기는 가늠할 수 있으나 내용에 대한 힌트는 없다. 사운드트랙 또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부러 위협하거나 듣기에 성가신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안심하라고 권유하는 듯 평온하지만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수상한 관현악 오케스트라의 기운. 사운드트랙을 맡은 Angelo Badalamenti는 데이빗 린치의 전작 <블루 벨벳>(1986)으로 이미 연을 맺은 터, 그 만남은 이후 2000년대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까지 이어진다.(그는 데이빗 린치와의 관계를 “내 최고의 두 번째 결혼”이라 표현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뉴스는 <Twin Peaks>의 세 번째 시즌이 25년 만에 돌아왔다는 소식. 데이빗 린치와 Angelo Badalamenti를 비롯한 당시 팀 대부분이 고스란히 뭉친다. 설산 같은 커버의, 이 시기적절한 재발매 음반을 들으며 기다리면 좋겠다.

<Twin Peaks> 오프닝 타이틀 'Twin Peaks Theme'
Angelo Badalamenti ‘Audrey's Dance’

 

Writer

유지성은 [GQ Korea]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매달 음악 관련 기사를 쓰고 음악가들을 인터뷰했다. 또한 Jesse You라는 이름의 디제이이기도 하다. 레코드를 사고 듣고 플레이하며, 클럽 피스틸에서 정기적으로 여는 ‘Playlists’를 비롯해 ‘Codex’, ‘Downtown’, ‘East Disko Wav’ 등의 파티/크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Boiler Room Seoul’에 출연했으며 암스테르담의 ‘Red Light Radio’, 방콕의 ‘Studio Lam’에서 음악을 틀기도 했다. Four Tet의 팬이다.
Jesse You의 Mix 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