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마이클 패스벤더의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 같다. 장르나 역할에 상관없이 폭넓게 영화계를 누벼온 그를 분명 한 번쯤은 마주했을 테니 말이다. 근래에 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났다면 십중팔구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신작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였을 터. 그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잇는 전작 <프로메테우스>(2012)의 데이빗 역과 새로운 캐릭터 월터 역으로 1인 2역을 소화하며 잊지 못할 존재감을 남겼다. 그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2016년 다시 스크린을 찾은 <송 투 송>의 유명 작곡가도,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도 모두 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이다.

 

강렬한 가족애를 품은 아버지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Trespass Against Usㅣ2016ㅣ감독 아담 스미스ㅣ출연 마이클 패스벤더, 브렌단 글리슨

전작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 보여주었던 차가운 로봇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적인 얼굴. 지금 소개할 마이클 패스벤더는 뜨거운 부성애를 품은 아버지다. 영화는 도시 외곽에서 자유롭고 거친 삶을 살아가는 무리의 리더 ‘채드’(마이클 패스벤더)가 아들 ‘타이슨’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과정을 그린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영화”라 밝힌 그는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무법자 집단 특유의 독특한 억양과 방언을 익히기 위해 녹음테이프로 연습하는 등 영화를 찍기 전 혹독한 훈련을 했다고. 범죄와 가족애라는 소재를 독특하게 결합한 이번 작품에서 마이클 패스벤더가 빚어내는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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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사랑에 미친 프로듀서

<송 투 송>

Song to Songㅣ2017ㅣ감독 테렌스 맬릭ㅣ출연 라이언 고슬링, 루니 마라, 마이클 패스벤더, 나탈리 포트만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에 바로 이어서 국내 개봉한 <송 투 송>은 사랑으로 얽힌 네 남녀의 이야기를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풀어낸 작품이다. 특히 초호화 캐스팅으로 제작 과정부터 폭발적인 이목을 끈 작품인 만큼, 단연 마이클 패스벤더의 등장도 눈에 띈다. 그는 유명 음반 프로듀서 ‘쿡’으로 등장해 사랑에 미친 나쁜 남자의 면모를 드러내며, 인물들의 감정을 휘젓는 역할을 맡았다. 사랑의 본질과 양면성을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미로 풀어낸 <송 투 송>에서는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분위기를 넘나드는 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보자. 아들을 바라보며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지던 그가 사랑에 관한 표정은 과연 어떻게 다를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는 요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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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얼굴들

2017년도에만 총 여섯 편의 개봉작으로 극장가를 누빈 마이클 패스벤더를 다작 배우라 불러도 좋지만, 그렇다고 그가 반드시 양으로만 승부 보는 것은 아니다. 작품마다 주연을 꿰차는 그는 극의 역할을 넘어 하나의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헝거> 스틸컷

마이클 패스벤더는 2001년 미국 TV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조연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300>(2006)을 계기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그는 곧 스티브 맥퀸 감독과 만나 첫 번째 인생 영화로 길이 남을 <헝거>(2008)에 출연했다. 영국으로부터의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운 인물 ‘보비 샌즈’의 옥중 단식 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 <헝거>에서 주인공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비롯해 생생한 연기를 몸소 보여주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피쉬 탱크> 스틸컷

남다른 연기력을 인정받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곧이어 든든한 자양분이 될 작품들을 만난다. 세계적인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로 잘 알려진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초기작 <피쉬 탱크>(2009)에서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센츄리온> 스틸컷

하나의 이미지로 굳히길 거부하는 배우라지만, 그는 다소 독특한(?) 캐릭터를 남기기도 했다. 2010년에 연이어 출연한 전쟁 액션 영화 <센츄리온>(2010), 판타지 서부 영화 <조나 헥스>(2010)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유독 호평을 얻지 못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데인저러스 메소드> 스틸컷

이후 작정한 듯 다양한 영화에 출연한 마이클 패스벤더는 결과적으로 눈부신 성과를 얻는다. 2011년 참여한 여섯 편의 영화 중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데인저러스 메소드>(2011)로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셰임>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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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영화 <셰임>(2011)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더욱 각별한 작품이다. 스티브 맥퀸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으로, 그는 섹스 중독자 '브랜든' 역을 맡아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열연한 끝에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누구나 인정하는 명배우 반열에 올랐다. 이후 스티브 맥퀸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예 12년>(2013)에 연이어 출연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제인 에어>, <프로메테우스>, <스티브 잡스>, <슬로우 웨스트> 스틸컷

로맨스 영화 <제인 에어>(2011)로는 단연 여성 팬들의 애정을 얻었다. 이후로도 그는 온갖 장르와 인물을 오갔다.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을 연기한 <프로메테우스>(2012), 유쾌한 인디밴드 이야기를 담은 <프랭크>(2014), 동화의 정서를 띤 서부극 <슬로우 웨스트>(2015),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훌륭하게 재해석한 <맥베스>(2015),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섬세하게 들여다본 <스티브 잡스>(2015)까지. 겹치는 색깔이 없는 다양한 영화를 정말 쉴 틈 없이 찍었다.

<어쌔신 크리드>, <파도가 지나간 자리> 스틸컷
<에이리언: 커버넌트> 스틸컷

2017년 한 해에만 <어쌔신 크리드>(2016), <파도가 지나간 자리>(2016),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2016), <송 투 송>(2017) 그리고 마지막으로 범죄 소설가 요 네스뵈의 추리소설 <스노우맨>을 각색한 동명의 범죄 스릴러 영화까지 모두 여섯 편으로 찾아온 마이클 패스벤더는 만 가지 얼굴을 지닌 배우라 할 만하다.

<더 스노우맨>(2017) 1차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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