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음악을 듣는다. 새로 나온 레코드로. 2016년 한해 기억할 만한 재발매 음반 세 장을 꼽았다. 고루한 추억 대신 낯선 새로움을 발견하며.

Yasuaki Shimizu <Kakashi> 

‘일본 한정 발매’야말로 무의미한 말이 되었다. 일본에서만 발매하는 건 맞다. 다만 레코드가 일본에 있을 뿐, 전 세계에서 그 레코드를 쫓는다. YMO와 시티팝으로 붙은 불씨는 일본 전체의 전자음악과 뉴웨이브에 대한 관심으로 퍼졌고, 계속 파내도 끝이 없는 이 폐쇄적인(혹은 ‘로컬’ 중심인) 음악 신이 버블경제 시기에 거둔 놀라운 성취에 대한 레코드 애호가들의 갈망은 지난해 뉴욕의 레이블 ‘Palto Flats’가 Mariah의 <Utakata No Hibi>를 발매하며 절정에 달했다. <피치포크(pitch fork)> 는 이 재발매에 ‘Best New Reissue’ 딱지를 붙여줬고, <The Vinyl Factory>, <FACT>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가 이 음반을 ‘올해의 재발매’로 꼽았다. 그리고 올해 봄, 조금은 은밀하지만 더욱 수집욕을 자극하는 음반으로, Yasuaki Shimizu의 <Kakashi>가 일본 내 500장 한정으로 재발매 됐다. Yasuaki Shimizu는 Mariah의 핵심 멤버로 <Utakata No Hibi>에선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으며, 색소폰과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Mariah 다음을 원하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이곳으로 쏠릴 수밖에. 지난해의 ‘Mariah 대란’은 두 차례의 재판(리프레스)이 뒤따르며 잠잠해졌으나, 500장 이후의 <Kakashi>에 대한 얘기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Yasuaki Shimizu 'Kakashi'
Yasuaki Shimizu 'Suiren'

 

Manuel Göttsching <E2-E4>

발매는 1984년이지만, 정작 녹음은 1981년 겨울에 했다. 그것도 기타 즉흥 연주 연습용 트랙을 녹음하기 위해 잠시 들린 베를린의 스튜디오에서. 그래서 올해를 35주년으로 친다. 이것은 당연히 곡을 쓰고 연주한 Manuel Göttsching의 의도일 것이다. 음악이 세상에 알려진 때가 아닌, 탄생한 순간을 기념하는 일. 혹자는 그가 스튜디오에 머무른 몇 시간 사이에 테크노란 장르가 탄생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음반을 어떻게 구분해도 좋다. 프로그레시브 록, 크라우트 록, 앰비언트, 테크노 혹은 미니멀 하우스의 시작. 하지만 그것은 애호가들의 구분일 뿐, 정작 전자 기타로 낼 수 있는 소리의 극한을 실험해온 Manuel Göttsching은 그들이 음반을 손에 든 순간보다 자신이 기타를 손에 쥔 그 날을 좀 더 기억하고 싶은 듯하다. 공식과 비공식을 합쳐 20번이 넘는 재발매가 나왔지만, Manuel Göttsching의 레이블 ‘MR.ART’를 통한 LP 발매는 이번이 처음. 25주년과 30주년에는 CD만 출시됐을 뿐, 가장 최근의 공식 LP 재발매만 해도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독일판’으로 따지자면 1987년이 마지막. 애초에 창작자의 의도와 별개로 우연히 쓰이고 그렇게 읽히는 음반에 원작자가 깊이 관여해 그 우연이 벌어진 날을 의도적으로 기념한다는 역설에, 연도를 초월한 ‘오리지널’의 기쁨이 있다.

Manuel Göttsching <E2-E4> ‘Part 1 of 6’

 

V.O. <Mashisa> 

넬슨 만델라에 관한 소식 이래 서울이 남아공에 가장 가까웠던 건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었을 테고, 당시 부부젤라의 행렬이야말로 ‘소리’(혹은 악기)로서 남아공을 체험한 가장 직접적 경험이었을 터. 나이지리아와 가나를 위시한 북아프리카의 ‘아프로비트’라면 Fela Kuti와 Tony Allen, 더 나아가 Roy Ayers와 Talking Heads 같은 이름으로 꽤 친숙하지만, 웬만한 호기심이 아니고서야 그 관심이 남아공의 음악에까지 쉽게 닿진 않았다. 하지만 뭔가를 탐구하는 일은 물리적인 거리가 멀수록 더욱 흥미로운 법. 1980년대의 ‘버블검’(아주 쉽게 표현하면, 남아공식 일렉트로 팝), 1990년대 이후의 ‘콰이토’(Diplo가 “템포를 낮춘 개러지”라 표현한)는 더 이상 낯선 장르가 아니다. 그리고 정확히 1990년에 발매된 V.O.의 <Mashisa>는 버블검과 콰이토 사이 모호한 지점에 놓인 가교 같은 음반(이자 곡)이다. 팝과 댄스뮤직의 경계에 있다 말할 수도 있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Stephen Encinas, 잠비아 밴드 Witch의 음반 등 허를 찌르는 재발매로 이름을 널리 알린 캐나다의 레이블 ‘Invisible City Editions’는 열 번째 발매작으로 이 음반을 택했고(본래 음반에서 몇 곡을 발췌, EP 형태로 새롭게 디자인했다), 우리는 적도 너머 먼 곳까지 지도를 더욱 넓게 펼칠 수 있게 됐다.

V.O. 'Mashisa'(Dub Mix)
V.O. 'Malunde'

 

Writer

유지성은 [GQ Korea]의 피처 에디터로 일하며 매달 음악 관련 기사를 쓰고 음악가들을 인터뷰했다. 또한 Jesse You라는 이름의 디제이이기도 하다. 레코드를 사고 듣고 플레이하며, 클럽 피스틸에서 정기적으로 여는 ‘Playlists’를 비롯해 ‘Codex’, ‘Downtown’, ‘East Disko Wav’ 등의 파티/크루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Boiler Room Seoul’에 출연했으며 암스테르담의 ‘Red Light Radio’, 방콕의 ‘Studio Lam’에서 음악을 틀기도 했다. Four Tet의 팬이다.
Jesse You의 Mix 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