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 온라인 영화 사이트 <Taste of Cinema>에서 발표한 21세기 최고의 영화감독 25인 리스트에서 22위로 이름을 올린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 1965~) 감독은 지금까지 단 3편의 장편영화 만을 제작했다. 대학에서 무대연출을 전공한 후 줄곧 광고 영상과 뮤직비디오 제작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으나, 10년 만에 선보인 세 번째 장편영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 2014)이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영화계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냈다. 스칼렛 요한슨을 톱으로 내세웠지만 상업적으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국내에서는 개봉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희미하게 사라졌다. 영화는 지루하고 난해했지만, 독창적인 연출력과 표현 방식, 그리고 에일리언의 눈으로 인간을 본다는 독특한 설정은 평단에서 화제를 모았다.

<언더 더 스킨>의 예고편. 스칼렛 요한슨이 외계인으로 출연했다

그가 20여년 간 이름을 날린 광고 영상이나 뮤직비디오 역시 화제를 뿌린다. 공연 디자인을 전공한 비주얼 전문가답게, 독창적인 소재나 비유가 가득 찬 연출로 짧은 시간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발하고 기괴한 초현실주의 장면으로 유명한 그의 뮤직비디오 다섯 편을 골라보았다.

 

매시브 어택의 ‘Karmacoma’(1995)

트립합 그룹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두 번째 앨범 <Protection>에 수록된 곡으로, 프런트맨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와 래퍼 트릭키(Tricky)가 공동으로 보컬을 맡았다. 글레이저 감독의 뮤직비디오 데뷔작으로, 스탠리 큐브릭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서 영향을 받은 비유적 묘사와 기괴한 영상들로 가득 차 있다. 유명 음악 평론 사이트 <올뮤직(All Music)>은 “숨을 쉴 수 없는(breathless), 폐쇄공포증을 일으키는(claustrophobic)” 이라는 두 단어로 호평했다.

 

자미로콰이의 ‘Virtual Insanity’(1996)

정상의 애시드 그룹 자미로콰이(Jamiroquay)의 세 번째 앨범 <Travelling Without Moving>에 수록한 최대 히트곡으로, 뮤직비디오 또한 글레이저 감독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움직이는 바닥’ 컨셉과 미래 지향적인 시각 효과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고, 1997년 MTV Music Award에서 4관왕을 차지하였다. “움직이는 바닥” 컨셉은 자미로콰이의 공연장에도 활용되어 화제를 모았다.

 

라디오헤드의 ‘Karma Police’(1997)

얼터너티브 록 그룹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세 번째 앨범 <OK Computer>에 수록한 히트곡으로, 미국 싱글 차트 14위까지 올랐다. 글레이저 감독이 라디오헤드와 손잡은 두 번째 뮤직비디오로 보컬 톰 요크(Thom Yorke)와 헝가리 배우 Lajos Kovacs가 출연하였다. 글레이저 감독은 ‘Virtual Insanity’와 ‘Karma Police’ 뮤직비디오로 MTV의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웅클의 ‘Rabbit in Your Headlights’(1998)

영국의 일렉트로닉 듀오 웅클(U.N.K.L.E.)의 데뷔앨범 <Psyence Fiction>의 첫 번째 트랙이며, 라디오헤드의 리드보컬 톰 요크가 작곡과 보컬을 맡았다. 뮤직비디오는 발표되자마자 언론의 주목을 끌면서 이듬해 MVPA의 최우수 비디오상을 수상하였다.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Denis Lavant)이 터널에서 차에 계속 치이면서 걸어가는 설정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묘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데드 웨더의 ‘Treat Me Like Your Mother’(2009)

얼터너티브 록 밴드 데드 웨더(The Dead Weather)의 데뷔앨범 <Horehound>의 수록곡으로, 영국에서 40위권에 올랐으나 미국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글레이저의 뮤직비디오는 영국 대중음악 주간지 <NME>의 2009년 Top 50 리스트에 1위로 선정되었다. 밴드의 여성 보컬리스트와 남성 드러머가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마주 걸어오면서 총질을 해대는 설정으로, 돌아서서 석양으로 걸어가는 남성이 패배했다는 결말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