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르텟> 스틸컷. 이미지 출처- <콰르텟> TBS 홈페이지

여자 둘, 남자 둘. 네 명의 남녀가 만나 같이 살게 됩니다. 이후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요? 사랑 이야기일 거라 짐작하기 쉬울 겁니다. 너무나 뻔하게, 호감을 느꼈다가 얽히고설키는 그런 이야기요. 여기 조금도 뻔하지 않은 네 남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얽히고설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어딘가 좀 다릅니다.

<콰르텟(カルテット)> 예고편 및 스토리

우연히 마주친 네 명의 남녀. 우연히 그들은 모두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었고, 또 우연히 현악 사중주를 구성할 수 있는 악기의 조합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마키 마키’(마츠 다카코)와 ‘벳푸 츠카사’(마츠다 류헤이), 비올라를 연주하는 ‘이에모리 유타카’(타카하시 잇세이), 첼로 연주자 ‘세부키 스즈메’(미츠시마 히카리). 네 명은 의기투합해서 ‘도너츠 홀’이라는 콰르텟을 만들고 가루이자와에서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이 네 사람의 우연 아래에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꿈의 열외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네 명 모두 꿈은 가졌으나 바라던 곳에 닿을 수는 없었던 정도의 재능을 지녔고, 그럼에도 그 꿈을 버리지는 못한 사람들입니다. 미련을 가지고 있으니 현실과 부딪힐 거고, 부딪힌 현실은 당연히 아플 겁니다. 그럴 때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 바로 서로의 존재입니다. 우연이 만들어낸 인연치곤 참 믿음직스럽죠.

<콰르텟> 스틸컷. 이미지 출처- <콰르텟> TBS 홈페이지

그런데 그들의 우연은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순도 100%의 우연이라는 것은 이젠 영화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고대유물’이 되어버렸는걸요. 그렇다면 이런 우연이 어떻게, 어째서 만들어졌을까. 그 이유가 바로 <콰르텟(カルテット)>(TBS, 2017)의 스토리 라인입니다. 이야기가 하나둘 진행될수록 우연을 만들어냈던 네 명의 과거가 조금씩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친구나 동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완결되었다고 생각했던 시점에서 다시 시작되거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하죠. 어떤 날은 서스펜스 장르였다가 또 어떤 날은 로맨틱 코미디가 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드라마에 다 담길 수가 있나 싶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과연 밀도 있게 다루어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요. 대하 드라마도 아닌 10부작 드라마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콰르텟>은 밀도있게, 모든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 나갑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있습니다.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일본 드라마를 즐겨보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데뷔해 쉰 살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히트작을 내고 있는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라는 이름을요. 1990년대 일본 트렌디 드라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러브 스토리>부터 최근의 <마더>, <최고의 이혼>, <문제 있는 레스토랑>,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까지.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그들이 뱉는 대사는 리드미컬 합니다.

<콰르텟> 스틸컷. 이미지 출처- <콰르텟> TBS 홈페이지

<콰르텟>에서도 그 개성은 여전합니다. 네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를 듣고 있으면 실력이 팽팽한 선수들이 펼치는 즐거운 경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다음은 닭튀김에 레몬을 뿌리는 것에 대한 토론(우리나라로 치면 탕수육 부먹/찍먹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을 하는 장면의 대사입니다.

이와모리:
닭튀김에 레몬즙을 뿌리는 문화에는 말이야, 두 가지 유파가 있어.
두 사람도 뿌리기 전에 물어보지? 뭐라고 물어봐?
 
벳푸:
레몬 뿌릴까요?
 
이와모리:
...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잖아?
뿌리는 게 당연한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전혀 그럴 맘 없다고 해도 ‘아, 네…’라고 대답하게 되잖아?
이건 협박이란 말입니다. 일방적인 거라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올바른 레몬 뿌리기 문화’에 대한 강좌. 드라마 중간중간 이들의 대화는 웃음과 감동, 깨달음 사이를 오가게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네 사람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인물은 이에모리입니다. 독특하면서도 집념이 강한 이에모리를 결코 밉지 않은 인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은 배우 타카하시 잇세이의 몫이고요.

 

배우, 타카하시 잇세이

타카하시 잇세이. 이미지 출처- <콰르텟> TBS 홈페이지

네, 두말 잔말할 것 없이 제가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그리고 <콰르텟>을 보고 나면 여러분도 좋아하게 될 배우죠. 타카하시 잇세이는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뒤 연극과 드라마를 통해 꾸준한 연기 활동을 해왔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얻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드라마 <민왕>에서 칼 같은 성격의 비서 카이바라 역을 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죠. 드라마가 끝난 뒤 방송된 스페셜 편에서는 아예 주연 자리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줄줄이 주연을 맡으며 ‘개성이 없는 개성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콰르텟>의 나머지 세 주연. 왼쪽부터 마츠 다카코, 미츠시마 히카리, 마츠다 류헤이. 이미지 출처- <콰르텟> TBS 홈페이지

나머지 세 명의 배우들이 인지도나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 객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거기에 걸맞게 안정적이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요. 마츠 다카코는 가장 무난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지만 누구보다 많은 비밀을 지니고 있는 마키를, <4월 이야기>의 얼굴을 하고 그 아래에 <고백>을 감춘 연기로 표현합니다. 마츠다 류헤이는 백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존재감으로, 콰르텟의 중심이 되는 벳푸를 연기하고요. 느긋한 마이페이스로 보이지만 그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스즈메 역에는 미츠시마 히카리 만큼 적격인 배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분명한 건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한 각본의 맛을 잘 살렸다는 거죠. 뛰어난 각본가와 뛰어난 배우의 협업은 잘 만들어진 음악을 균형 잡힌 연주로 듣는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 <콰르텟>이 보여주는 건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모든 이미지 출처- <콰르텟> TBS 홈페이지

 

Writer

심리학을 공부했으나 사람 마음 모르고,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제작보다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전공과 취미가 뒤섞여 특기가 된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영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