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팩>

The Wolfpack│2015│감독 크리스탈 모셀│90분│다큐멘터리│개봉 2016년 9월 22일

2010년 1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는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고, 때론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는 등 평범하지 않은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시민의 제보로 경찰이 출동했고 곧 정체가 밝혀졌다. 이름은 '무쿤다 앙굴로', 나이는 열다섯, 순진한 눈망울을 가진 그가 털어놓은 말은 놀라웠다. 자신을 포함한 일곱 남매가 집 밖을 나와본 적도, 다른 사람과 말을 해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뉴욕 한복판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다

맨해튼의 어느 아파트에 독특한 생활을 꾸려가는 가족이 있다. 부모님과 여섯 형제, 그리고 유일한 여자 형제인 막내까지 총 9명의 식구다. 이들은 왜 집 밖을 나오지 않았던 걸까? 아버지 '오스카 앙굴로'는 한 때 세계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페루에서 아내 ‘수잔’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 평범하기 그지없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터를 잡고, 자본주의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점차 ‘일을 하면 안 된다’, ‘아이들을 바깥에 있는 암흑의 소굴로 내보내면 안 된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된다. 어머니 수잔 역시 '아이들을 학교의 잘못된 교육 방식으로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홈 티칭을 하며 자식을 길러왔다. 두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고립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영화는 곧 살아야 할 이유

‘태어나서 한 번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섯 형제를 미치지 않도록(?) 키워준 건 다름아닌 ‘영화’였다. 이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라자냐를 먹으며 온종일 영화를 봤다. 영화는 아버지 오스카가 허락한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모히칸족의 최후>(1936)를 통해 야생을, <대부>(1972)를 통해 시실리 거리를, <좋은 친구들>(1990)을 통해 뉴욕의 암흑가를 경험했고, 이렇게 약 5,000편의 영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 교제하는 법, 의견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이들은 영화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좋아하는 영화의 대사를 전부 손으로 옮겨 적고, 타자기로 다시 옮겨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1994)을 비롯해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같은 영화는 훌륭한 교과서가 되었다. 이들은 배우들의 동작과 표현을 외운 뒤 배역을 나누고 이를 재연하며 놀았다. 특히, 넷째 무쿤다 앙굴로는 소품을 전문으로 담당하여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의상과 도구를 제작했다. 가령 배트맨 의상은 시리얼 상자와 요가 매트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등장하는 산소탱크는 깡통과 건포도 포장지로 제작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칼과 총구는 언뜻 보면 진짜라고 믿을 정도였다. 어느 날은 경찰이 소리소문없이 들이닥쳐 집에 있는 총구를 확인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영화는 이들과 세상을 이어주는 문이 됐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닌, 삶을 향한 구원이었던 것이다.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 마침내 제 의지로 날아가는 것이 세상의 순리이듯, 어느덧 여섯 형제도 늠름하게 자라 바깥으로 나가기를 자연스럽게 욕망한다. 그리고 형제들은 늘 술에 취해 있는, 소통할 줄 모르는 아버지와 대립한다. 그의 독재가 잘못된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가장 호기심이 많았던 ‘무쿤다 앙굴로’는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벗어나 집을 탈출하기에 이른다. 나머지 형제들도 조금씩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딘다. 아이들은 제 손으로 긴 머리를 자르고, 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들며,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마치 3D 화면처럼 신기하게 여긴다. 강과 숲이 어우러진 도시를 누비는 형제들은 '영화'보다 뛰어노는 걸 더 좋아하는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서로를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행복하다.

<더 울프팩>은 단지 여섯 형제의 일상을 담아낸 것뿐만 아니라, 이들의 어릴 적 모습과 그동안 자신들이 찍어온 영화 장면들이 함께 담겨있어 더욱 특별하다. 다큐멘터리의 엔딩 역시 손수 제작한 세트장과 소품, 의상, 분장에 연기까지 오롯이 그들의 몫으로 만들어낸 유쾌한 영화로 장식한다.

세상을 향한 첫발, 그리고 낯선 사람과의 첫 대화. 우리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땐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이었을까? 남들과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았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세상과 인사를 나눈 아이들. 이들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을 잘 간직하길,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삶을 누리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길 바라는 건 에디터만이 아닐 것이다.

<더 울프팩>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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