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경희 작가는 결국 회사가 싫어서, 사표를 내고 <회사가 싫어서>를 펴냈다. 2번의 퇴사를 거치는 동안 부장님, 과장님, 사장님 몰래 차곡차곡 쌓아온 속앓이를 시원하게 풀어놓은 독립출판물이다. 작가는 고단했던 회사 생활에 대한 묘사와 그로부터 느낀 생각들을 거침없이 말한다. “학생 때는 빨리 취업해서 돈 버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 내 꿈은 퇴사가 되어버렸다”라고. 곧 책은 ‘회사’와 아니, ‘퇴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16년 제작한 독립출판물 <회사가 싫어서>는 이런 직장인들의 성원 덕에 2017년 초 출판사를 통해 단행본으로 다시 출간됐다.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회사를 싫어하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생각해보면, ‘웃프다’.

<회사가 싫어서> 중 ‘퇴근’. 그림 김혜령
<회사가 싫어서> 중 ‘출장 가는 길’. 그림 김혜령
<회사가 싫어서> 중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림 김혜령

맞다. <회사가 싫어서>는 ‘웃픈’ 책이다.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키던 회사 내 부조리한 단상들을 꼬집는 해학이 가득하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처세술 같은 것을 가르쳐주는 책들과는 다른 통쾌함을 던진다. 그렇다고 당장 퇴사를 감행하라 외치는 건 아니다. (물론, 퇴사를 고민하는 이에게 적잖은 용기를 심어줄 것이다.) 정작 회사를 그만둔 김경희 작가는 퇴사 후의 일상이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책 <찌질한 인간 김경희>를 써냈다. 고대하던 퇴사 후에 겪은 ‘찌질한’ 일상을 엮은 책이다. 이번에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공감과 ‘웃픈’ 위로를 건넨다.

<회사가 싫어서> 중 ‘똥’. 그림 김혜령

회사를 싫어한 김경희 작가가 결국 말하려는 것은 기꺼이 일을 즐기는 삶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는 흔쾌히 직원이라 불린다. 부천에 위치한 독립책방 겸 카페 ‘오키로미터’에서 ‘오직원’으로 일하며 항상 책과 함께 하는 덕분이다. 두 번째 책의 편집과 디자인을 맡은 오키로미터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세 번째 취직인 셈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밥벌이가 되면 고단한 법. 직장 생활 불변의 법칙을 몸소 깨달은 작가가 모를 리 없다. 그는 좋아하는 책으로도 구원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며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 이제 모두 사장님 몰래 유튜브를 키고 아래의 영상을 감상해보자.   

 

Kyunghee say,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라 물을 때면 “책 보면서요”라 대답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책을 본다. ‘이 사람 뭐지?’ 싶겠지만 진짜다. 그러니까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 그런 나에게 책은 구원이다. 하지만 책의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365일 세끼를 밥만 먹을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땐 어김없이 핸드폰에 있는 유튜브 앱을 실행한다. 책이 구원되지 못할 때, 나에게 구원이 되는 영상이 있다.

 

1. Pink ‘Just give me a reason’ 그래미시상식 공연 영상

Pink 'Just Give Me a Reason' 그래미 시상식 2014

“이유를 말해줘”라 말한다. 그것도 아랫배에 잔뜩 힘을 실은 목소리로 말이다. 우연히 듣게 된 이 한마디에 꽂혀 노래에 빠졌다. 가수 핑크(Pink)와 네이트 루스(Nate Ruess)가 함께 부른 이 노래는 이별 노래다. 하지만 나는 삶이 꼬이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찾아본다. 몇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따라부르기도 쉽다. 이따금 삶이 버거울 땐,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을 찾으며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다. 3번은 반복해서 보고, 4번째부터는 따라 부르면서 본다. 거짓말처럼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56회 그래미 시상식 버전을 보길 바란다. 이 곡이 바로 나오기 전 핑크는 ‘try’에 맞춰 아크로바틱 공연을 펼친다. 수많은 관객 위에서, 그러니까 공중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준다.)

 

2. Ed Sheeran ‘Thinking out loud’ 팬 서프라이즈 영상

영국의 한 소녀가 쇼핑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어느 순간 소녀가 부르는 노래의 가수가 나타난다. 에드 시런(Ed Sheeran)의 서프라이즈다. 좋아하는 곡을 만나면 그 가수의 모든 노래와 영상을 찾아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이다. 영국의 10대 소녀에게도, 소녀 감성을 가진 한국의 20대 여성에게도 기어코 마음이 닿게 한 노래. 에드 시런의 수많은 영상 중 이 서프라이즈 영상이 좋은 이유는 꽤 뭉클하기 때문이다. ‘Hoping that you'll understand’라 따라 부르며 이해를 바라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에게도 행운이 나타날 것 같다. 소녀에게 에드 시런이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3. James Blunt ‘You’re Beautiful’ MV

카메라를 응시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남자. 마치 나를 보며 노래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말한다. “넌 아름다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말이다. 급기야 바다에 뛰어든다. 묘한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영상인데 계속 아름답다고 말해주니 이보다 더 고마운 영상이 어디 있을까 싶다. ‘연애한 지가 얼마나 됐지?’ 기억을 더듬다 보면 괜스레 눈물 한 방울이 나올 것 같다. 이따금 처지는 피부와 생기 잃은 얼굴을 마주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는 이 영상을 본다.

 

4. 몽니 ‘소년이 어른이 되어’

퇴근길에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유튜브를 실행하다 우연히 본 영상. 몽니로 추정되는 남자가 노래를 시작한다. (알고 보니 몽니는 4명의 멤버가 있는 밴드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 사람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며 서글픈 추억과 미련한 모습을 버리고 싶다며 목에 핏줄을 내보이며 노래를 부른다. 눈물이 핑 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다가가고 있는 지금,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에 큰 감흥도, 걱정도 없다. 다만, 어른이 되어가는 데 느껴지는 버거움에 움츠러든다. 먼저 지금의 내 나이를 겪었을 이들이 들려주는 노래에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찡한 위로를 받는다.

 

작가 김경희는?

필명 ‘너구리’라 불리며 <회사가 싫어서>, <찌질한 인간 김경희>라는 책을 펴냈다. 부천에 있는 독립책방 겸 카페 ‘오키로미터(5km)’에서 일하며 대내외적으로 ‘오직원’이라 불린다. 커피를 내리고 책을 팔면서 3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배우 박정민과의 만남을 매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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