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손자를 찾아 마피아의 도시에 뛰어든 할머니, 말을 잃은 청년, 어린 소녀에게 진짜 마법을 선사하고픈 늙은 마술사… 실뱅 쇼메 작품 속 인물들은 대체로 외롭고 쓸쓸하다. 애니메이션 작화의 색감 역시 선명하거나 화사하다고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영화에서 마주할 어둠들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한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말하자면 소박한 방에 켜둔 촛불, 그 주위의 따스한 어둠에 가깝다. 실뱅 쇼메의 애니메이션이 오래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이 어둠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한낮의 눈부심보다 해 질 녘의 어스름이 더 위로가 된다는 걸 경험하게 되니까.

 

1.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Attila Marcelㅣ2013ㅣ감독 실뱅 쇼메ㅣ출연 귀욤 고익스, 앤 르니, 베르나데트 라퐁

영화는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귀로 시작한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부모를 여의고 스스로 말문을 닫아버린 청년 ‘폴’이 어딘지 괴짜 같은 마담 프루스트와의 대화를 통해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동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실뱅 쇼메 감독의 첫 장편 실사 영화로, 진정제일지 독약일지 알 수 없는 기억에 용기 있게 다가서는 폴과 든든한 조력자 ‘마담 프루스트’의 여정은 ‘실사’라는 형식이 무색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국내 개봉 당시 50개 미만의 소규모 개봉관에도 불구, 14만 관객이라는 이례적인 흥행 기록을 세웠다.

 

2.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ㅣ2010ㅣ감독 실뱅 쇼메ㅣ출연 장-클로드 돈다, 에일리 란킨, 던컨 맥닐

더는 찾아주는 이 없어 무대가 있는 곳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여행하는 늙은 마술사가 있다. 그는 자신을 동경하여 무작정 미행해온 어린 소녀 ‘앨리스’를 돌보게 되면서 그녀에게 ‘진짜 마법’을 선물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일루셔니스트>는 <나의 아저씨>, <윌로 씨의 휴일>의 자끄 타티 감독이 쓴 마지막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뱅 쇼메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주인공 마술사의 이름인 ‘타티셰프’를 자끄 타티의 본명에서 따왔을 정도로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라 불리는 자끄 타티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하다. 화려한 무대와 어두운 분장실을 오가야 하는 희극인의 숙명을 보는 듯, 삶의 환희와 일상의 고단함을 함께 담고 있는 영화.

 

3. <벨빌의 세 쌍둥이>

Les Triplettes De Bellevilleㅣ2003ㅣ감독 실뱅 쇼메ㅣ출연 미쉘 코크투, 장-클로드 돈다, 미쉘 로빈

실뱅 쇼메 감독을 ‘2D 애니메이션계의 살아있는 거장’으로 만들어준 작품. ‘수자’ 할머니는 바깥세상에 관심이 없는 고독한 소년 ‘챔피온’과 단둘이 시골 외딴집에 살고 있다. 세월이 지나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 출전한 챔피온이 마피아에게 납치를 당하고, 수자는 손자를 찾아 왕년의 슈퍼스타지만 지금은 80대 노인이 된 세 명의 여가수 ‘벨빌의 세 쌍둥이’와 마피아의 근거지인 대도시 ‘벨빌’을 모험하게 된다. 복고풍의 그림체, 과장된 캐릭터, 납치와 마피아, 사이클 경기인 ‘투르 드 프랑스’라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마구 뒤섞여 기괴하고도 사랑스러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ㅣ영화보기ㅣN스토어유튜브Indieplug
<벨빌의 세 쌍둥이> 오프닝 영상 ‘Belleville Rendez-vous’

 

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