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음악 애호가 마이클은 오래전 재즈 기타의 거장 조 패스(Joe Pass, 1929~1994)와 당뇨병 환자의 처지와 새로 나온 기타에 대한 호기심을 나누면서 친해졌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장의 자조 섞인 한탄에 “당신의 음악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해줘도 거장은 웃기만 했다. 마이클은 거장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친구의 비디오카메라를 빌려 스튜디오에서 녹음 중이던 그를 맨해튼 42번가의 알렉스 악기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상표도 떼지 않은 신제품 기타로 주위 사람들을 위해 즉석 연주를 하는 거장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마이클은 이때를 1980년대 후반이었다고 기억하며, 1994년 생을 마감한 조 패스에 대한 추억을 나누기 위해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 인상의 조 패스는 20세기 최고의 재즈 기타 명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뉴욕> 매거진은 “그는 누군가의 삼촌 같은 인상이지만, 무서운 속도로 기타를 친다. 그의 연주 실력은 세계 최고이며 종종 파가니니(Paganini, 19세기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와 비교된다. 그의 사운드에는 다른 수준급 재즈 기타 연주자들과 쉽게 차별화되는 고결함이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젊은 시절 15년간의 연주 공백에다 1970년대 이후에는 콤보 대신 솔로 연주에 집중한 탓에 조 패스는 상업성이나 대중성과는 크게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기타리스트로는 최고의 즉흥 연주자(Improviser)였으며, 스스로 “컬러 톤(Color Tone)”이라 부른 현란한 주법으로 마치 두세 명이 기타를 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듣는다.

독특한 몸짓으로 블루스 솔로를 연주하는 조 패스

아홉 살에 처음으로 기타를 손에 쥔 그는 단 5년 만에 직업적인 연주에 나선다. 하지만 뉴욕의 클럽에서 연주하면서 마약에 빠져 감옥과 병원에서 15년을 허비한다. 그러다 시나논 교화원에서 2년 반 만에 마약을 완전히 떨쳐내고, 1962년 <Sounds of Synanon>을 내면서 재즈신에 복귀한다. 친근하고 온순한 그의 성품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의아해하며, 그의 아버지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아이의 음악 재능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그의 아버지는 강하게 아이를 밀어붙였다. 악보가 아니라 귀로 곡조를 찾을 것, 음계와 음계 사이에 공간을 남겨두지 말 것을 주문하며 끊임없이 연습을 강요한 것이다. 아버지의 강압적 교육 방식은 그의 완벽한 연주 실력의 기반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심각한 스트레스로 다가와 마약에 빠져드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1964년 발표한 <For Django>의 타이틀 송

재즈계에 복귀 후 그는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쉴 새 없이 연주에 나섰다. 재즈 콤보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방송사의 악단으로, 뛰어난 실력의 기타리스트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섰다. 하지만 재즈신 안에서는 기타라는 악기의 한계가 있었고,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즈음 그는 명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Norman Granz)를 만난다. 그의 재즈 레이블 파블로(Pablo)에 소속되면서, 노먼은 그에게 전례가 없던 재즈 솔로 기타를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콤보에서 연주하면서 다른 연주자와 보조를 맞추느라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선보일 수 없었던 그는, <Virtuoso> 1~4집을 순차적으로 내면서 마침내 앨범 제목대로 재즈기타의 명인 반열에 오른다.

<Virtuoso>(1973)는 재즈 솔로 기타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이후 4집까지 출반된다

그는 어릴 때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찰리 크리스챤(Charlie Christian) 같은 기타리스트보다는, 색소폰 주자인 찰리 파커의 음반에 몰두했다고 회고한다. 빠른 코드 체인지, 워킹 베이스라인(Walking Base Line, 엄지손가락으로 저음을 동시에 울리는 주법)을 주요 특징으로, 독자적인 스타일의 즉흥 연주를 하였다. 솔로 연주임에도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스윙감을 선사했고, 쉴 새 없이 코드를 바꿔가며 촘촘히 음계를 구성했다. 그는 기타 피크를 입으로 두 동강 내 작은 반쪽을 사용하는 오랜 습관이 있었으나, 더욱 정교하게 연주하기 위해 갈수록 손가락 주법을 선호하게 된다. 그의 독창적인 연주 기교가 담긴 레슨 서적 <Joe Pass Guitar Style>은 재즈 기타 입문자를 위한 바이블이 되었다.

조 패스의 기타 레슨 영상
<Joe Pass Guitar Style> 책 표지

마이클은 그에 대한 영상을 하나 더 올렸다. 조 패스를 집으로 초대하여 기타 신시사이저(Guitar Synthesizer)를 선보이는 영상이다. 거장은 생전 처음 접한 악기를 신기해하며 구경한다. 소리를 들어보고는 “I like the sound!”라며 감탄하더니, 오르간 소리로 바꿔 재즈 스탠더드 ‘Stella by Starlight’을 연주한다. 마이클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였다.

“그때가 1985년이었는데, 신시사이저가 막 도입되던 시기였다. 거장은 재즈 파이오니아답게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고 얼마나 겸손하고 인간적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그의 친구가 되었다는 건 영광이었다.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기타 신시사이저(GR700)를 처음 연주하면서 즐거워하는 조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