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8일, 한국 최초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남긴 박남옥 감독이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지난 6월 1일 개최한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그를 기리기 위해 '박남옥 영화상'을 9년 만에 부활했다. 앞서 2008년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2001)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에게 한 차례 수여한 바 있다. 한국 여성 감독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그의 후배 임순례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박남옥 감독이 직접 기부한 상금으로 만든 상이었다. 뜻 깊은 상은 올해 <궁녀>(2007)를 연출한 김미정 감독에게 돌아갔다.

박남옥 감독.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1997년 제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은 바로 박남옥 감독의 첫 작품이자 유일한 작품으로 남은 <미망인>(1955)이었다. 일찌감치 존재 자채만으로도 주목받은 여성 감독의 작품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의미가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열렬한 영화 팬이었던 그는 일제강점기에 기자 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친구의 남편이었던 윤용규 감독의 소개로 조선영화사 촬영소에서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배웠다. 한국전쟁 때는 국방부 촬영부 소속으로 종군영화를 찍었고, 이때 극작가인 이보라와 만나 결혼했다. 이후 남편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 <미망인>을 만들었다. 돌도 안된 딸을 둘러업고, 제작진들에게 직접 밥을 해 먹이며, 저예산 장비인 16mm 흑백 필름으로 찍은 영화였다.

<미망인> 스틸컷

1955년, 한국 최초로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이 드디어 개봉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영화는 6・25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의 욕망과 좌절을 그리며 전후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됐던 전쟁미망인의 삶을 첨예하게 다뤘지만, 당시 관객들에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후 박남옥 감독은 1960년 창간한 영화잡지 <시네마 팬>의 편집장을 맡아 영화 일을 이어 나갔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영화계를 떠나게 되었다.

1960년 제7회 도쿄아시아영화제에서 배우 미후네 도시로가 박남옥 감독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모습

당시로써 절대 쉽지 않았던 주체적인 태도를 보여준 박남옥 감독의 삶과 작품은 지금 더욱 큰 감명을 준다. <미망인>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의 피폐해진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증명함과 동시에, 남성에게 쉽게 대상화되던 여성 주인공을 주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여성의 욕망과 갈등을 오롯이 여성의 시각으로 덤덤하게 묘사한 점은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다. 성별에 뒤지지 않는 박남옥 감독의 열정이 고스란히 필름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미망인>은 필름 일부가 훼손되어 결말 10분 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고, 끝내 결말도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고전 영화를 들춰 보아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1950년대를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은 여전히 ‘여성’을 향한 편협한 담론을 주고받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어떤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미망인> 전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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