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대단한 사람이다. 직업인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다섯 번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대배우이자, 클로드 샤브롤 감독와 홍상수 감독, 미아 한센 러브 감독 등 시대와 국적이 제각각인 시네아스트들과 함께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를 풍미한 얼굴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이자벨 위페르는 대단한 배우다. 앞서 서술한 문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의 근작들을 살펴보자. 언제나 그랬듯, 여전히 새로운 영화적 조류에 올라 있다.

 

<엘르>

Elle ㅣ 2016 ㅣ 감독 폴 버호벤 ㅣ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랑 라피트, 앤 콘시니

<토탈 리콜>, <쇼걸>, <원초적 본능>의 폴 버호벤 감독이 80세의 나이에 내놓은 신작 <엘르>가 가장 처음 겪은 난항은 아마도 캐스팅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물망에 오른 배우는 니콜 키드먼. 그러나 캐스팅은 불발되었고, 마리옹 꼬띠아르, 샤를리즈 테론, 줄리안 무어, 제니퍼 제이슨 리,  샤론 스톤 등 용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우들이 줄줄이 배역을 고사했다. 할리우드를 벗어나 처음 만난 배우가 바로 이자벨 위페르.

<엘르>는 게임회사 대표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자신의 집에서 강간을 당한 후 홀로 범인을 찾아내 복수를 감행하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자벨 위페르는 피해 생존자이자 사적 복수를 감행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행하고 마는 복잡한 내면의 주인공을 맡아 극찬을 끌어냈다. 2016 칸영화제 최고 화제작이었으며,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외국어영화상 2관왕을 차지한 영화.

영화 <엘르>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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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것들>

Things to come ㅣ 2016 ㅣ 감독 미아 한센-러브 ㅣ 출연 이자벨 위페르, 에디뜨 스꼽

이자벨 위페르 ‘생애 최고 연기’란 극찬을 받으며 화제에 오른 <다가오는 것들>은 1981년생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연출작으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50대 여성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에게 어느 날 남편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고백을 한다. 철학 교사이자 아내, 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오며 늘 품위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나탈리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변화의 순간, 그리고 그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잔잔하면서도 강인한 순간을 포착해낸 수작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예고편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 ㅣ 2015 ㅣ 감독 요아킴 트리에 ㅣ 출연 이자벨 위페르, 제시 아이젠버그

노르웨이 출신의 신예 감독 요아킴 트리에는 이자벨 위페르에게 ‘뉴욕에 거주하는 유명 프랑스인 종군사진작가’라는 역을 선사했다. 동명의 캐릭터 ‘이자벨’은 영화 속에서 이미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지만, 여전히 남은 남편과 두 아들에게 생생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는 지적이고, 침착하며, 아들들을 깊이 사랑하고,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중년 여성이다. 성공한 종군사진작가로서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전쟁터 한복판으로 떠나는 이기적이고 위험에 중독된 듯한 면모, 언뜻 바깥으로 드러내 버리는 허무한 시선은 모두가 그를 사랑하게도, 모두가 그로 인해 상처받게도 만든다. 그런 그를 잃은 주변 사람들의 슬픔이 폭탄보다 더 크게 울릴 거란 건 자명한 사실.

영화 <라우더 댄 밤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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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에서>

In another country ㅣ 2011 ㅣ 감독 홍상수 ㅣ 출연 이자벨 위페르, 유준상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다는 소식은 국내 영화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만, 정작 영화 속 이자벨 위페르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어찌나 담담한지, 평범하게 보일 정도였다. 그의 배우로서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건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다. 이자벨 위페르는 ‘평범한 홍상수 영화 속 캐릭터’를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소화해냈다. 그는 한국 영화판에 잠깐 다니러 온 스타 같지도, 오리엔탈리즘을 동경하며 눈을 반짝이는 관광객 같지도 않다. <다른나라에서>의 이자벨 위페르는 여느 홍상수의 주인공처럼 영화감독이었다가, 불륜 상대를 만나러 바닷가를 찾은 유부녀였다가, 바람난 남편의 탓으로 상처받은 이혼녀가 되었다. ‘거리 두기’라는 그의 연기 철학이 어떤 식으로 인물을 배경과 어우러지게끔 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다른 나라에서>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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