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역에서 한강변으로 향하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상수동 길에 밝은 햇빛이 들기 시작하면 하얀 벽에 검정 칠판이 붙어 있는 작은 가게가 문을 연다. 곧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마실 것이 담긴 작은 유리병을 들고 나온다. 해가 저물면 음식 냄새가 먹음직스럽게 새어 나오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밤새 수다를 나눈다. 다음 날이 되면 음식 냄새도, 사람들도 달라진다. ‘프로젝트하다(Project HADA)’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곳은 낮과 밤, 요일별로 저마다 다른 간판이 걸린다. ‘프로젝트하다’는 작업실이자 식당이고, 또 다른 가게로 얼마든지 변신할 수 있는 공유공간이다. ‘프로젝트하다’ 운영자이자 디자인 스튜디오 ‘이베카’ 디자이너인 정다운 씨는 평일 오전이면 ‘보틀 카페’의 주인장이 된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정다운 씨만큼 여러가지 얼굴을 가진 ‘프로젝트하다’의 진짜 정체가 궁금해 물었다.

‘프로젝트하다’라는 공간을 만든 계기가 궁금해요.

원래는 디자인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마침 같이 작업실을 쓰는 언니(조항아 씨)가 세계 여행하면서 배워온 현지 음식들을 요리하고, 그에 관한 책을 낼 계획이 있었어요. 그래서 디자인과 요리 작업을 위한 책상과 부엌이 나란히 놓이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공유공간을 염두에 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갔죠.

 

두 명의 작업실 공유가 다른 이들을 위한 ‘프로젝트하다’ 공간으로 확장된 셈이네요.

제가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이베카(ibeka)’와는 별개로, ‘프로젝트하다’라는 이름으로 둘이 같이 디자인 공동작업을 하려고 했어요. 공간을 작업실로만 쓰면 늦은 저녁이나 주말에는 공간이 비게 되는데,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도 공간을 쓸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 거죠. 평소 술집들이 낮에는 그냥 닫혀 있는 공간으로 있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거든요.

 

입점한 가게들은 어떻게 모은 건가요?

처음엔 지인들 모집으로 시작했어요. 직업은 아티스트인데 요리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있었어요. ‘나도 내 가게를 한 번 해보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친구들이요. 저는 보통 그런 친구들에게 “하고 싶으면 해봐”라고 말하는 편인데, 막상 가게를 차리기에는 들어가는 돈도 많고 위험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그래서 이 공간을 가게로 공유하기 시작했죠. 차차 가게를 알고 찾아온 손님들도, 이베카에 디자인을 문의하러 오신 분들도 ‘프로젝트하다’에 많은 관심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자발적으로 들어온 가게들도 많아졌는데, 그만큼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의미겠죠.

‘프로젝트하다’에 누구나 가게를 열 수 있나요? 어떤 기준이 있는지 궁금해요.

일단 뭘 하고 싶은지 들어보고 저희 공간과 어울리는지 생각해요. 예를 들어 너무 비싼 음식을 판매하는 것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하다’ 가게의 주인들은 수익만 추구하기보다 자기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시도하는 분들이거든요. 저도 그런 분들을 보면 공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요. 요즘 같은 경우는 스케줄이 기준인 것 같아요. 스케줄이 꽉 차서 못하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정말 하고 싶어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신 분도 있고요.

 

얼마 전 TV 프로그램 [사람과 사람들]에 소개되는 등 공간이 많이 알려지고 있어요. 주변 관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단순히 ‘공유공간’이라고 하면 청년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힘든 모습을 떠올리시더라고요.(웃음) ‘프로젝트하다’는 힘든 모습보다는 새로운 시도와 재미를 찾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이곳에 가게를 꾸린 사람들은 생계형 장사가 목적이 아니에요. 단기간 운영하는 가게들이 큰 수익을 얻기는 사실 어렵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부담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곳, 또는 다른 일을 하면서 주말이나 남는 시간에 새로운 일을 시도할 기회가 있는 곳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 KBS1 [사람과 사람들] ‘그 동네 구멍가게에는 다섯 사장님이 있다’ [바로가기]

 

굳이 수익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프로젝트하다’가 많이 알려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 아닐까요.

손님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공간의 취지를 알고 꾸준히 찾는 단골 손님이 늘었어요. 화려하지 않은 작은 가게를 사람들이 알고 좋아해주고, 나아가 이곳을 중심으로 소통이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인 것 같아요.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이런 소소한 기쁨을 즐기는 것 같아요. 가게들이 앞으로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재 ‘프로젝트하다’의 웹사이트를 만들고 있어요. 페이스북에만 나와있는 정보는 보기 힘들다는 손님들이 계셔서요.

 

여러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건 정말 좋은 취지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공유할 때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불편한 점도 있어요.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에 문제가 하나만 생겨도 혼자 사용할 때와는 달리 여러 명이 불편을 겪으니까요. 그래도 함께 신경 써서 사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에요. 오히려 생각치 못했던 전제적인 운영관리 부분이 어려웠어요. 제가 공간을 맡다 보니까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고 관리해야 하더라고요.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겪어보지 못한 운영관리를 병행해야 했기에 힘들었죠. 그래도 정말 보람을 느끼며 하고 있어요. 특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재미를 느끼는 분들을 볼 때 뿌듯하고 좋아요.

프로젝트 하다의 스케줄을 보면 알차게 꾸려져 있는데, 앞으로 새로 들어올 가게들도 기대되요. 혹시 새로 들어올 가게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당장 새로운 가게를 받을 순 없을 것 같아요. 현재 월요일 저녁 부분은 일부러 비워 놨어요. 그냥 하루 정도는 공간을 비워 놓겠다고 생각했고, 실은 제가 그 시간에 무언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거든요. 시간이 더 생기면 앞으로 지역 기반의 친환경 워크샵을 하고 싶어요. 일명 ‘녹색 반상회’ 같은! 예전엔 토요일 오전마다 ‘자연염색 워크샵’이라는 것도 몇 번 했어요. 소소하게 동네 사람들과 친환경을 주제로 얘기하고 싶어요.

 

‘프로젝트하다’의 방향성과 목표가치가 분명해 보여요.

작은 공간이라도 그것이 사람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가게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권리금이나 인테리어 같은 현실적인 문턱이 너무 높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프로젝트하다’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있잖아요. 시도조차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스스로도 시도하고 싶은 것이 굉장히 많고, 앞으로도 계속 시도해 나갈 거예요.

 

‘프로젝트하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니, 그 안을 채운 가게들이 더욱 궁금하다. 공간을 더욱 빛낸 의미 있는 가게이자, 저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용감한 가게다. ‘프로젝트하다’ 속 가게들을 다음 편에서 소개한다. 다양한 가게들로 채워진 일주일을 미리 확인하고 나면, 기다려지는 요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프로젝트하다(Project HADA)

주소 서울시 마포구 상수동 343-4

 

프로젝트하다 페이스북
프로젝트하다 인스타그램

 

메인이미지 출처- '프로젝트하다' 페이스북
본문이미지- ⓒ인디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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