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컴포저이며 환경 운동가, 가끔 배우로도 활약한 다양한 얼굴을 가진 류이치 사카모토. 인텔리전트한 외모로 건반을 다루는 그의 가장 익숙한 모습 이외에 인상적인 세 장면을 골랐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 'Rain' 연주 모습 

 

Hidden face 1. Yellow Magic Orchestra(YMO)

류이치 사카모토는 솔로 아티스트 이전에 Yellow Magic Ochestra(이하 YMO)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리더인 호소노 하루오미가 음반 <Haraiso>를 만들면서 유키히로 타카하시와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손을 뻗쳤다. 유키히로 타카하시는 <Saravah!>, 류이치 사카모토는 <Thousand Knife>라는 첫 음반을 발표한 직후였다. 그러니까, 1978년 솔로와 밴드로 동시에 데뷔했다. YMO는 데뷔하자마자 ‘동양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일본에서는 새로운 장을 만든 선구자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들의 매력은 인민복을 맞춰 입고 악기에 파묻혀 무표정으로 전자 음악을 송출하다가도 가끔씩 어설픈 연기를 하며 장난꾸러기처럼 노래할 때 더욱 드러났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YMO 안에서 너무 잘하는 음악가임과 동시에 잘생긴 얼굴로 약간 덜떨어진 행동을 하는 백치미 담당이었다.

YMO의 ‘君に、胸キュン。(Kimi ni Munekyun)’.유키히로 타카하시가 ‘교수’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로 진지했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얼마나 어설프게 여자와 키스하는지, 파도의 라인 댄스를 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영상
YMO의 ‘音楽(ONGAKU)’. 류이치 사카모토가 딸 사카모토 미우를 위해 만든 곡이다. ‘나는 지도를 펼쳐 음악을, 너는 피아노에 올라타 음악을, 기다려 함께 노래할 때를’이라며 사랑스럽게 노래한다 

 

Hidden face 2. 이마와노 키요시로&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는 지금까지 노이즈 아티스트 알바 노토(Alva Noto), 싱어송라이터 오누키 타에코 같은 많은 음악가와 듀엣을 하거나 음반을 발표했지만, 이마와노 키요시로와의 듀엣이 가장 큰 화제와 문제로 남아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10대 때 알씨 석세션(RC Succession)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알씨 석세션의 보컬이자 리더인 이마와노 키요시로는 1980년대에 이미 록의 제왕으로 불렸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무작정 이마와노 키요시로에게 데모 테이프를 보내 가사를 요청했다. 내친김에 함께 노래도 부른 곡이 ‘い・け・な・いルージュマジック(IKENAI ROUGE MAGIC)’. 영화음악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 작은 일탈로 YMO를 통해 단련한 신스팝의 촉각을 모조리 쏟아부은 듯하며, 이마와노 키요시로의 태생적 관능과 불손함이 얹어져 독특한 세계로 완성된 곡이다. 1982년 시세이도의 캠페인 송으로 쓰이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영화 <팔묘촌> 코스튬에 진한 화장을 하고 현찰을 뿌리고 마지막에는 서로 키스하는 뮤직비디오는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동료이자 우상인 이마와노 키요시로가 하는 행동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비주얼 록 코스프레의 류이치 사카모토 모습이 백미다.

 ‘い・け・な・いルージュマジック(IKENAI ROUGE MAGIC) Live 영상. 뮤직비디오에서 뿌리는 현찰은 실제 만 엔권이며, 철저하게 관리해 촬영했지만 결국 수만 엔을 잃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Hidden face 3. <Zero Landmine>

2015년 여름, 백발이 성성한 류이치 사카모토가 아베 신조 정부의 ‘안보법안’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목소리를 냈다. 암 치료를 마치고 선 모습이 반가웠으며, 영향력을 지닌 음악가가 사회 문제에 참여해 발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불필요한 교칙에 대항하여 수업을 거부해 교칙 철폐를 이뤄낸 일화가 알려져 있으며, 환경 보호와 탈원전 문제 등에 끊임없이 참여해 왔다. <Zero Landmine>은 사회 참여적 성향과 작곡가의 면모를 접점으로 빚어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일본 방송 TBS 50주년 ‘지뢰 ZERO 캠페인’의 캠페인 송으로 음반 판매 수익금은 모두 지뢰 폐기를 위해 쓰였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뜻에 동참한 아티스트는 오누키 타에코, CHARA, UA, GLAY, 사노 모토하루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음악가를 비롯해 김덕수, 신디 로퍼, 제3세계 음악가와 퍼포머까지 수십 명에 달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웅장하지만 서늘한 악곡 아래 아티스트 저마다의 호소가 담긴 ‘Zero Landmine’은 오리콘 차트 1위를 하며 많은 사람에게 지뢰의 위험성을 상기시켰으며, 대중적인 성공도 동시에 이뤘다.

'Zero landmine' 에디팅 버전
'Zero Landmine' 19분이 넘는 풀버전 라이브

 

Writer

매거진 <DAZED & CONFUSED>, <NYLON> 피처 에디터를 거쳐 에어서울 항공 기내지 <YOUR SEOUL>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만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은 여성들을 찍은 음반 겸 사진집 <75A>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박의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