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가수들의 조력자로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기획사가 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언더그라운드 음반 기획사 ‘동아기획’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곳을 거쳐간 뮤지션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신촌블루스, 김현철, 장필순, 이소라, 푸른하늘, 한동준, 박학기, 김장훈, 유영석, 코나. 이들은 발라드, 포크, 블루스를 망라하고 오늘날 한국 가요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남았다. 동아기획은 오늘날 연예 기획사와 달리,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창구이자 아지트였고, 덕분에 오늘날에도 수없이 회자되는 보물 같은 음반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음악, 세월이 흐르며 그 가치를 더욱 발하는 음악. 동아기획의 명반 가운데 몇 개를 간추려봤다.

 

1. 시인과 촌장

시인과 촌장은 1981년 데뷔한 포크 듀오다. 주축 멤버인 싱어송라이터 하덕규는 동창생 오종수와 함께 1집 앨범 <시인과 촌장>을 발표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오종수가 탈퇴하고,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영입하여 5년 만에 발표한 2집 앨범 <푸른 돛>은 그간 공들인 시간과 노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옥같은 노래들로 가득하다. 첫 번째 트랙 '푸른 돛'을 시작으로 독특하고 우울한 매력을 발산하는 '고양이', 그리고 시인과 촌장만의 포크 감성이 가득 묻어난 '사랑일기'까지. 그중에서도 하덕규의 여린 보컬과 함춘호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잘 어우러진 ‘풍경'은 아이 같이 순수하고 따뜻한 감성을 전한다.

 

2. 김현식

김현식 '비처럼 음악처럼'

김현식은 서른셋에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지금까지도 음악사에 다시 없을 그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김현식은 3집 앨범을 제작할 무렵, 김종진(기타), 장기호(베이스), 유재하(키보드), 전태관(드럼) 같은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모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리고 단순한 연주를 넘어 이들을 앨범 제작과 참여에 깊이 관여하도록 했다. 덕분에 3집 <김현식 Ⅲ>은 30만 장 이상의 이례적인 판매 기록을 세웠고, 언더그라운드를 넘어 대중에게 그 이름을 널리 전한 명반이 되었다. 타이틀곡 ‘비처럼 음악처럼’은 세련된 재즈 선율에 김현식 본래의 로맨틱하고 고운 음색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3. 한영애

한영애 '누구 없소'

한영애와 비슷한 가수가 누가 있을까, 떠올리면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과 목소리는 한국 가요계에서 단연 강렬하고 독보적인 색깔을 띤다. 2집 <바라본다>는 록/블루스 성향의 곡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중에서도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윤명운이 만든 ‘누구없소’는 한영애의 카리스마 있는 보컬에 잘 어울리는 곡. 구슬픈 듯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4.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11개의 수록곡 중 3곡이 퓨전 재즈의 성향이 짙은 연주곡에, 게다가 국내 가수 중 최초로 연주곡인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을 타이틀로 내세운 앨범.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은 전에 없던 이례적이고 특별한 앨범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들의 과감한 시도 아래에는 음악적 완성도에 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을 테다. 그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는 세련된 악기 구성과 개성 있는 보컬 사운드로 이들이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서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5.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한국에서 퓨전 재즈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빛과 소금. 2집 수록곡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는 이들의 아름다운 서정성을 담은 노래다. 맑은 피아노 선율을 기반으로 후렴구에만 간간이 삽입한 드럼, 일렉기타 사운드는 현재 발라드곡과 비교해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짜임새를 자랑한다.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멤버 한경훈이 불렀으며, 편안한 중저음의 보컬에 간절함이 담긴 이별 가사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이후 이소라가 리메이크하여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1993)에 실으면서 또다른 명곡으로 재탄생했다.

(메인 이미지 = 빛과 소금 2집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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