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악녀’를 지향한다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 자고로 여자란 ‘선녀’보다는 ‘악녀’ 되기가 쉬운 법이니까. 여자로서 해야 하는 행동, 여자로서 해야 하는 말, 여자로서 입어야 하는 옷, 여자로서 가져야 하는 감정을 버리면 금방 악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악녀 1, 악녀 2 말고, 진짜 무시무시한 ‘악녀’가 되고자 하는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다면 이 여자들을 참고하자. 뭐, ‘롤모델’로 삼기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들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만이라도 마음껏 즐겨보자.
<악녀>
The Villainess ㅣ 2017 ㅣ 감독 정병길 ㅣ 출연 김옥빈, 신하균, 성준, 김서형
배우 김옥빈이 <악녀>로 돌아왔다. 한국영화에서 특히 드문 ‘여성 원톱 액션 영화’다. ‘악녀’는 칼을 들고 장총을 겨누며 유리 창문으로 거침없이 돌진한다. 초반 7~8분 동안 100여 명을 해치운다. 보고 싶지 않을 도리가 없다. 킬러로 길러진 악녀 ‘숙희’를 연기하기 위해 김옥빈은 장검, 단도, 권총, 기관총, 도끼 등 수많은 무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액션 신을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마지막에 “악녀가 너무 착하다”는 볼멘 리뷰가 들려오기도 하지만, 김옥빈의 엄청난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러닝타임 123분의 가치는 충분하다. 현재 절찬상영중.
<차이나타운>
Coinlocker Girl ㅣ 2014 ㅣ 감독 한준희 ㅣ 출연 김혜수, 김고은, 엄태구, 박보검
‘돈 받으러 오는 사람’이라면 보통 험악하고 덩치 큰 남자들이 클리셰다. <차이나타운>의 ‘일영’(김고은)은 그와는 정반대의 외양을 가졌지만, 일만은 어떤 남자보다 더 잘한다. 지하철 코인로커에 버려진 후 차이나타운을 주름잡는 조직의 보스 ‘엄마’(김혜수) 밑에서 자라난 그는 깡마른 몸과 새하얀 얼굴을 하고서 무자비하도록 잔인한 일들을 해치운다. 순수하고 해맑은 소년 ‘석현’(박보검)을 지키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은교>에서 치명적인 소녀로 데뷔한 배우 김고은은 ‘은교’는 까맣게 잊어버린 듯, ‘악녀 사채업자’를 악바리처럼 연기한다.
<나를 찾아줘>
Gone Girl ㅣ 2014 ㅣ 감독 데이빗 핀쳐 ㅣ 출연 로자먼드 파이크, 벤 애플렉, 닐 패트릭 헤이스
인기 어린이 동화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평생을 ‘순백의 소녀’로 살아온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는 바람피우는 남편과 자신을 둘러싼 삶이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그에게 남들처럼 부부 싸움을 하고 남들처럼 이혼하는 ‘평범한 일’은 계획에 없다. 영원을 약속한 남자를 마치 드라마처럼 ‘크게 엿 먹일’ 계획을 도모한 에이미. 제대로 성공한다. 갑자기 끼어든 스토커 때문에 원하던 100%를 다 갖지는 못했지만, 스토커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제거해버린다. ‘연약한 여자’가 어떤 식으로 액션을 선보이는지 궁금하다면, 꼭 에이미를 참조하도록.
<헤이트풀8>
The Hateful Eight ㅣ 2015 ㅣ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ㅣ 출연 사무엘 L. 잭슨, 커트 러셀, 제니퍼 제이슨 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만큼 ‘악녀’를 좋아하고 또 잘 만들어내는 감독이 또 있을까? <킬빌>(2003~)에서 노란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고 영화사상 가장 거대한 1인 학살극을 선보이는 우마 서먼,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 나치 친위대를 모아놓고 극장에 불을 질러버리는 멜라니 로랑도 잘 알려진 악녀지만, <헤이트풀8>에서 제니퍼 제이슨 리가 연기한 ‘죄수 데이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랄 1등급이다. 모두 한 가닥 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자인 죄수 데이지. 작은 체구에 별로 내세울 것도 없어 보이는데 내뱉는 말은 누구보다 거칠고 한 대 얻어맞는 것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일대를 좌지우지하는 도둑들의 우두머리로 오랏줄에 묶여 있어도 무서운 데이지. 타란티노의 공이기도 하지만, 제니퍼 제이슨 리의 명연기가 없었다면 그토록 무시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