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츠 나바로(Fats Navarro, 1923~1950),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1930~1956)에 이어, 젊고 촉망받는 또 한 사람의 트럼펫 연주자가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60년대 하드밥 재즈의 정상에 우뚝 선 리 모건(Lee Morgan, 1938~1972)은 불과 34세의 나이에 2년간 동거하던 12살 연상 연인의 총격에 사망하여 충격을 주었다. 유명 밴드의 사이드맨에서 자신의 밴드 리더로 나서면서 1964년에 발표한 <The Sidewinder>는 재즈, 팝, R&B 차트에 모두 오르며, 블루노트 레이블의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았다. 동명의 타이틀 곡은 수많은 영화, TV, 광고에 삽입되었으며 마술 공연 같은 이벤트 음악으로 자주 쓰여 누구에게나 친근한 멜로디이다.

앨범 <The Sidewinder>는 초판으로 4천 장을 찍었으나 불과 3일 만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였다

모건은 18세에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데뷔 앨범을 낼 정도로 어린 나이부터 이미 스타였다. 디지 길레스피, 존 콜트레인, 아트 블레키의 거물급 밴드에서 연주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한순간 마약에 깊이 빠져 아트 블레키의 밴드에서 쫓겨나면서 무일푼의 곤궁한 처지로 추락한다. 마약을 사기 위해 악기와 코트까지 전당포에 맡긴 그는, 어느 추운 겨울밤 얇은 재킷만을 걸친 채 재즈 뮤지션들이 사적으로 자주 찾던 살롱을 찾았다. 아파트를 개조한 살롱의 주인은 헬렌 무어(Helen Moore)라는 12년 연상의 과부. 두 사람은 곧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였고, 헬렌은 맨 먼저 전당포에 맡긴 그의 악기와 코트를 찾아주었다. 헬렌은 자신의 성을 모건으로 부르기 시작하였고, 둘은 실질적인 부부 관계로 동거에 들어간다.

영화 <I Called Him Morgan> 포스터에 나온 리 모건과 헬렌 무어

헬렌은 철부지 같던 모건의 일상을 통제하며 그가 마약을 극복하고 재즈신에 복귀할 수 있게 돕는다. 모건이 클럽에서 연주할 때는 언제나 선글라스를 낀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지켜봤다. 모건은 안정된 생활로 돌아와 톱스타의 명성을 되찾지만, 모건이 다른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악화된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치닫는다. 헬렌은 한 차례 자살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후 언제부터인가 핸드백에 총기를 휴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트 블레키 밴드에 속했던 리 모건의 트럼펫 솔로 'Moanin''

두 사람이 만난 지 5년째 되던 1972년 2월 19일 맨하탄에는 폭설이 내렸다. 헬렌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 중이던 모건을 찾아와 심한 언쟁을 벌이다가 클럽 밖 눈밭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다시 들어와 핸드백에 있던 총을 꺼내 그를 향해 발사했다. 다행히 심장은 비껴갔으나 폭설 때문에 앰뷸런스가 늦게 도착해, 병원에 도착하기 전 모건은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헬렌은 순순히 체포되어 기나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고, <The Lady Who Shot Lee Morgan(리 모건을 총으로 쏜 여자)>라는 책이 출간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헬렌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많다. 마약 중개상이라는 얘기도 있고, 밀수를 하던 전 남편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아 부유하다는 설도 있다.

클리포드 브라운에 대한 헌정곡 'I Remember Clifford'를 연주하는 리 모건. 그는 어린 시절 클리포드 브라운으로부터 레슨을 받은 적도 있었다.

모건의 짧은 일생에는 미디어의 관심을 끌 만한 극적인 요소들이 있다. 젊은 재즈 스타가 마약으로 폐인이 되어 길거리를 헤매다가 어머니 같은 연인을 만나 재기에 성공하게 되나 끝내 치정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는 얘기는, 한편의 로맨틱 스릴러 같다. 덴마크 감독 카스퍼 콜린(Kasper Collin)의 다큐멘터리 영화 <I Called Him Morgan>(2016)은, 헬렌이 1996년 사망하기 한달 전 병상에서 인터뷰한 녹음 내용을 중심으로 모건의 행적을 좇는다. 당시 헬렌을 인터뷰한 사람과의 대화로 첫 장면을 시작하여, 눈보라 치는 맨해튼이 마지막 장면으로 보이는 영화는 로튼 토마토에서 95%의 높은 평점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I Called Him Morgan> 예고편.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리 모건의 불같은 성격과 재즈에 대한 열정을 말해주는 일화가 하나 전해진다. 그에게 트럼펫을 배우던 학생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연주법을 설명하던 중, 답답한 나머지 트럼펫을 꺼내 좁은 실내에서 포인트 레슨을 한 것이다. 시끄러운 악기 소리에 옆 테이블의 손님이 소리쳤다. “네가 마일스 데이비스라도 되는 줄 알아?(Who you think you are, Miles Davis?)” 모건은 돌아보며 되받아쳤다. “No, motherxxxxxx, I am Lee Mor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