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가 앓았던 문제들을 인식했기 때문일까. 올해 공식 포스터 속 홀로 곧게 선 소나무의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깊이 뿌리내려 어떤 혹독함에도 흔들림 없는 한 그루 소나무처럼 강인해지리라는 의지가 읽힌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아우르며 영화계에서 개성 있는 비주얼을 만들어온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는 올해 부국제의 상황과 각오를 탁월하게 담아냈다.

다사다난한 시간을 소나무처럼 견딘 제21회 부국제는 여느 때처럼 호화로운 게스트를 자랑하며 호기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올해는 특히 일본 게스트들의 면면이 굉장하다. 영화 <너의 이름은>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에 초청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배우들이 참석하며, <은판 위의 여인>을 발표한 공포 스릴러물의 대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방문한다. 국내외에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허우 샤오시엔, 이창동 감독과 함께 관객들과 특별 대담을 갖는다. 배우 게스트들도 주목하자. <위플래쉬>에서 열연한 배우 마일스 텔러가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 <블리드 포 디스>로, 늘 부국제를 방문해 국내에서도 친숙한 일본 국민배우 오다기리 죠가 이번에도 역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초청작 <오버 더 펜스>로 부산을 방문한다.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전경

다채로운 작품들로 출렁이는 영화의 바다, 부국제에서 예매해야 할 영화를 꼽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쟁쟁한 국내 초청작만큼이나 매력적인 해외 초청작의 목록은 가히 망망대해다. 그중 전작의 명성과 함께 부산에 초청된 세계적인 감독들의 작품은 단연 부산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중요한 명목이다.

 

‘짐 자무쉬’라는 하나의 장르
<패터슨> 

BIFF 월드시네마 부문ㅣPatersonㅣ2016ㅣ감독 짐 자무쉬ㅣ출연 아담 드라이버, 카라 헤이워드, 스털링 제린스

<데드맨>(1995)으로 부국제를 찾았던 세계적인 독립영화 감독 짐 자무쉬가 최신작 <패터슨>으로 다시 부산에 왔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그랬던 것처럼, 짐 자무쉬는 일상 속 소재로 유머와 아이러니를 아우르는 블랙 코미디 방식을 표현하는 것에 탁월하고, <패터슨>에서도 그렇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버스 운전사이자 아마추어 시인이다. 패터슨이 틈틈이 쓰는 시가 평범한 일상 속에 던지는 의미처럼, 영화는 일상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을 인생의 시적 요소를 관찰한다. 짐 자무쉬 특유의 스타일을 떠올려볼 때, 패터슨의 시는 과연 어떤 유머와 은유를 던질지 더욱 궁금해진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의 호평, 배우 아담 드라이버의 인기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짐 자무쉬 스타일을 동경하는 이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이다.

<패터슨> 예고편

 

<위플래시>에서 느꼈던 전율보다 더욱
<라라랜드>

BIFF 월드시네마 부문ㅣLa La Land, 2016ㅣ감독 다미엔 차젤레ㅣ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J.K. 시몬스

<위플래쉬>(2014) 속 열정적인 드럼 연주의 전율을 잊지 않았다면, <라라랜드>를 기대작 1순위로 꼽아도 좋다. 전작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 데미언 차젤 감독이 이번에는 몽환적이고 따듯한 분위기의 노래로 가득 채운 뮤지컬 영화로 돌아왔다. <라라랜드>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진작부터 많은 기대와 호평을 받았다. 앞서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에서 커플로 호흡을 맞춘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의 재회, <위플래쉬>에서 지독한 교수 ‘플렛처’를 연기한 J.K.시몬스의 합류 또한 화제. 그러나 캐스팅과 호평보다 더 화려한 건 단연 영상미와 음악이다. LA를 배경으로 배우지망생 ‘미아’(엠마스톤)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뮤지컬은 아름다운 장면과 황홀한 노래로 가득하다. <라라랜드>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포스터와 예고편은 상영 전부터 관객들을 사로잡는 중이다.

<라라랜드> 예고편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웃음과 감동
<토니 에드만>

BIFF 월드시네마 부문ㅣToni Erdmannㅣ2016ㅣ감독 마렌 아데ㅣ출연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산드라 휠러

2009년 <에브리원 엘스>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독일의 신예 감독 마렌 아데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토니 에드만>으로 비평가들에게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토니 에드만>이 기록한 것은 높은 평점뿐 아니라 바로 관객들의 웃음 데시벨이다.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이 대다수인 칸국제영화제에서 살아남은(?) ‘극강의 코미디 드라마’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사랑받을 것 같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전력질주하기 바쁜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딸의 웃음을 되찾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다. 가발과 틀니를 착용하고 '토니'로 변신한 빈프리트는 딸이 가는 곳마다 출몰해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결국 이네스는 물론 관객들도 웃지 않고는 못 배길 그 황당함은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렇다고 웃음만 주고 끝날 리 없다. 유쾌함 속에 묻어나는 감동은 극중 이네스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인들을 향한 묵직한 메시지도 빠트리지 않는다.

<토니 에드만> 예고편

 

마치 현실 같이 생생한 판타지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ㅣyour nameㅣ2016ㅣ감독 신카이 마코토ㅣ카미키 류노스케(타키), 카미시라이시 모네(미츠하)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포스트 호소다 마모루로 주목받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다. <별의 목소리>(2002)에서부터 <언어의 정원>(2013)에 이르기까지, 매번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표현으로 재패니메이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감독은 <너의 이름을>에 더욱 공을 들였다. 신세대 애니메이터 다나카 마사요시의 캐릭터 디자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디렉터로 활동해온 작화감독 안도 마사시의 합류, 일본 최고의 인기 록밴드 래드윔프스의 음악이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 없는 명작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도쿄와 산골 마을에 사는 청소년 타키와 미츠하의 몸이 서로 뒤바뀌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산골 마을에 떨어진 혜성으로 인해 시공간이 뒤바뀌는 거대한 판타지로 확장된다. 지난 8월 26일 일본에서 먼저 흥행 돌풍을 일으킨 <너의 이름은>은 곧 부산에서도 환상적인 매력을 펼칠 예정이다.

<너의 이름은> 예고편

 

2016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16.10.06 ~ 2016.10.15
장소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센텀시티, 메가박스해운대
홈페이지 www.bif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