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제인> 스틸컷

영화 <꿈의 제인>은 가출 청소년 ‘소현’과 트랜스젠더 여인 ‘제인’을 통해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의 외로움을 보여주고, 그들이 꿈꾸는 희망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사랑받지 못해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제인의 태도는 곧 이야기의 메시지다. 예상과 달리 제인은 영화 내내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제인의 존재감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묘한 긴장감을 불어 넣으며 커진다. 끝내 제인의 등장을 고대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외로운 ‘소현’을 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마침내 다시 나타난 제인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인사를 남긴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그렇게 영화 속 제인이 삶을 향한 희망을 건네고 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기대가 떠오른다. 배우 구교환을 향한 기대다.

그에 대한 기대가 섭식 장애를 앓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보여주기 위해 체중을 감량하고, 진한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배우의 모습이든 그것을 만드는 감독의 모습이든,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를 선보인 덕이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제인, 구교환을 직접 만나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매번 고민한 후 말을 꺼내는 그의 태도는 자못 진지하면서도 명랑했다.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온 <꿈의 제인>이 드디어 정식으로 개봉했는데 소감이 어때요? 영화제 때와는 기분이 다를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만드는 과정 내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순간을 기대했는데요. 지금도 계속 그런 마음이에요. 어떻게 영화를 봐주실 지 여전히 기대되고 궁금해요.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바램은 있지만, 꼭 ‘대박’을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영화를 찍는 순간부터 지금 이렇게 인터뷰하는 순간 자체가 전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꿈의 제인>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느꼈던 ‘제인’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제인이 삶을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아요. 누군가를 쉽게 위로하려고 하지 않고, 쉽게 연민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요. 그런 제인의 태도 자체가 좋았어요. 역할에 다가갈 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인데요. 영화 속 제인의 모든 모습들은 궁금증을 넘어서는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제인을 표현할 때 의도적으로 레퍼런스를 떠올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럼 스스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배우로서 시나리오 안에 있는 제인을 바깥으로 완벽히 옮기는 것에 충실하는 거예요. 한 인물에 다가갈 때 기준을 두기 보다는 제가 시나리오를 보고 생각한 것에 집중해요. 제가 생각하는 제인의 모습을 제 몸으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인은 특히 어려운 캐릭터였을 것 같아요.

제인을 특별히 어렵다고 규정짓지는 않았어요. 쉬웠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실 모든 역할이 저에겐 다 어려웠고, 숙제 같았어요. 이건 모든 배우들이 겪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개봉한 <우리 손자 베스트>의 캐릭터 ‘교환’도 그렇고, <꿈의 제인>의 ‘제인’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캐릭터인데요. 그 캐릭터들의 특징이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꿈의 제인>을 먼저 찍고 두세 달 후에 <우리 손자 베스트>를 찍었는데요. 사실 두 영화의 배역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이 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에요. 인물을 표현할 때 항상 제 안에서 출발하려고 노력해요. 캐릭터가 저와 닮은 게 아니라, 제가 캐릭터와 닮은 부분을 찾아가는 거죠. 그래서 제인 뿐만 아니라 제가 연기한 모든 인물들은 저와 닮은 부분이 많이 있어요.

 

극중 소현과 제인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했어요. 반면에 의도한 것과 다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제인과 소현이 정호를 찾아 나서면서 함께 바닷가에 가는 장면이 있어요. 둘이서 소풍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실제 촬영 현장 분위기도 그랬고요. 촬영 끝나고 나서 스태프분들과 바지락칼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천 바닷가였는데, 바지락칼국수가 참 맛있었어요.(웃음) 그때 소현 역을 맡은 민지 씨와 마주 앉아서 먹었죠. 그 장면이나 그 장면을 찍고 난 후나 되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특히 체중감량 하느라 힘들었겠어요.

건강하게 조절한 덕분에 사실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조금 쑥스러워요. 원래 먹는 거는 좋아해요. 사소한 맛들을 좋아해요. 영화에서 “시시한 행복”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사소한 맛들을 거대하게 즐기는 걸 좋아해요.(웃음)

 

예를 들면요?

불닭볶음면이랑 짜파게티 섞어서 같이 먹는 것? 국물 떡볶이도 좋아하고요. 여러 가지를 합쳐서 먹는 걸 되게 좋아해요.

영화 속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촬영 분위기가 어땠을 지 쉽게 짐작이 안가요.

제인은 대부분 제인팸이랑 함께 있거나, 뉴월드 클럽 장면에서 등장하는데요. 몇몇 장면 빼고는 꼭 외롭거나 우울하지만은 않거든요. 특히 제인이 뉴월드에서 노래할 때는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어요. 딱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같이 연기한 배우들도 인상 깊은데, 특히 이민지 배우와는 단편영화 <뎀프시롤: 참회록>(2014)에서 먼저 만나기도 했죠.

민지 씨 필모그래피를 달달 외울 정도로 팬인데요. 같이 마주하는 장면도 많았고, 심지어 포스터에서도 둘이 서로 포개 안고 있죠. 물론 모든 동료 배우들도 그랬지만, 민지 씨는 저한테 굉장히 힘이 됐어요. 민지 씨는 참 유연한 사람이에요. 촬영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도 담당하고 있고요. 현장을 진짜 같이 만들어주는 분이에요. 혹시 <드래곤볼> 보셨나요? 원기옥 같은 사람이에요.(웃음) 좋은 에너지를 많이 주시는 분이죠.

 

앞서 조현훈 감독님은 제인을 두고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진 인물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제인이 아닌 ‘구교환’이라면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해야 합니다. 영화 속 제인이 전하는 것과 똑같은 말이죠. 저도 결국 제인의 말에 공감하고, 그 메시지를 옮긴 것이기 때문에 제인의 대사를 빌어서 얘기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아요. “우리 내년에 웃는 얼굴로 또 만나요. 여기 뉴월드에서”. 뉴월드라는 것이 특정 공간을 명칭하기도 하지만, 말그대로 ‘신세계’잖아요. 그것이 공간이든 누군가와의 관계든 어떤 형태로든,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모두에게 각자의 뉴월드, 각자의 제인이 문득문득 찾아오길 바라요.

영화를 찍는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배우의 역할에 영향을 미친 점이 있나요?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꼭 감독이나 배우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연출 경험이 배우의 역할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연기와 연출 중 더 욕심나는 역할이 있나요?

둘 다 좋아하는데, 둘 다 썩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요.(웃음) 사실 저는 영화 편집하는 것을 좋아해요. 툴(Tool) 다루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뭐가 더 좋다고 고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영화 작업할 때마다 필요로 하는 역할에 충실히 하는 거죠. 연기하기 위해서 연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 연출작에 꼭 제가 연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최근 연출한 서울환경영화제 트레일러 <걸스 온 탑>도 잘 봤어요. <꿈의 제인>과 <우리 손자 베스트>를 찍고 난 후에는 다시 연출을 맡았죠. 이런 ‘찍고, 찍히는’ 과정이 꽤 바빴을 것 같아요.

물리적인 스케줄을 따지기엔 사실 그렇게 바쁜 사람이 아니라서요. 마음만 바빴던 것 같아요. 최대한 그때 작업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배우로서 촬영 일정이 있으면 그것에 충실하고요. 시나리오 작업은 언제 무엇을 해야겠다고 거창하게 정해 놓고 하는 게 아니라서 바빴다고 하기엔 조금 쑥스럽네요. 

영화든 음악이든 가장 최근에 영감 받은 작품이 있나요?

우효의 신곡 ‘민들레’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아티스트인 우효의 신곡이 얼마 전에 나왔더라고요. 저 또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입장으로서, 저에게 큰 영감을 준 음악이라 말하고 싶어요. 이 한 곡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응축했는지에 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영화는 J.J. 에이브럼스의 <슈퍼 에이트>(2011)를 추천합니다. 정말 재밌거든요. 같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에요. 어드벤처물을 좋아해요.

 

영화 외에는 주로 무얼 하나요?

사실 영화 외에 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은데요. 너무 많아서 바로 얘기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 중에 하나를 꼽자면… 플레이스테이션4!

 

최근의 관심사는 뭐예요?

여행? 아니, 잠시만요. 이건 정확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관심사가 얇고 넓어서요. 아, 볼링이요. 볼링 점수는 너무 들쑥날쑥해요. 어떨 때는 110점이 나오기도 하고요. 요즘 볼링 실력의 꾸준함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혹시 영화 말고 새로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영화나 먼저 잘 찍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지금 영화를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이 도전에 성공하고 싶어요. 그게 또 도전인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행복하고 싶은 거요. 영화는 무수히 많은 관심사 중 하나인데요. 당장의 계획이나 목표에 영화 스케줄이 있기 보다는 항상 삶의 행복을 먼저 두려고요.  

 

<꿈의 제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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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미래
사진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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