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우여곡절 끝에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가 개막한다. 지난 2년간 부국제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해임, 예산 삭감 같은 많은 풍파를 겪어야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영화제 상영 중지를 요구한 정부와 부산시에 맞선 대가였다. 그간 부산시가 견지해온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무너지는 모습에 영화인들은 급기야 보이콧을 선언했고, 바로 올여름까지만 해도 부국제는 개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스물 한 번째 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던 힘은 무산만은 막아야 한다는 주최 측의 노력과 부산영화제를 사랑하는 수많은 영화인, 씨네필의 응원 덕이었다. 진통 끝에 새롭게 개정된 정관은 “초청작품 및 초청작가 선정에 관한 사항은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 중심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고유권한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영화제 바깥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한 압력이 가해질 경우를 방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100%의 승리는 아니라며 보이콧의 입장을 견지하는 영화인도 상당수 있지만, 어쨌든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다는 데에는 뜻이 모이고 있다.

여러가지 문제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부국제도 어김없이 영화인들의 ‘꿈의 축제’가 될 전망이다. 그 증거로 기록될 한국 영화 초청작 네 편을 소개한다.

 

1. <춘몽>

A Quiet Dreamㅣ2016ㅣ감독 장률ㅣ출연 한예리,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올해 부국제 개막작은 <춘몽>으로 선정되었다. 개막작으로 한국영화가 선정된 건 5년만. <경주>, <두만강> 등을 연출한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의 영화로, 배우 한예리와 세 명의 영화감독이 주연을 맡아 화제에 올랐다. 영화는 ‘고향주막’이란 작은 술집을 운영하며 한동네에 사는 세 남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예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물간 건달 ‘익준’ 역은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공장에서 쫓겨난 ‘정범’은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 집주인 아들 ‘종빈’은 <범죄와의 전성시대>의 윤종빈 감독이 맡아 진짜인 듯 꿈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춘몽> 예고편

 

2. <더 테이블>

The Tableㅣ2016ㅣ감독 김종관ㅣ출연 임수정,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영화제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전 세계 최초 상영’을 경험하는 짜릿함이다. 이번 부국제에서도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최악의 하루> 김종관 감독의 차기작인 <더 테이블>이다. 정은채, 정유미, 한예리, 임수정이란 네 명의 정상급 여배우들이 출연하여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은 영화.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되며, 온전히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 각 배우의 매력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영화다.

 

3. <꿈의 제인>

Janeㅣ2016ㅣ감독 조현훈ㅣ출연 이민지, 구교환, 이주영

한국 영화계의 신성을 미리 확인하고 싶다면, 한국 독립영화의 오늘을 소개하는 ‘비전’ 부문을 살펴보자. 이 중에서도 특히 독립영화 팬들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조현훈 감독의 <꿈의 제인>이 눈에 띈다. <응답하라 1988>의 ‘만옥’ 역을 맡았던 이민지가 가출 소녀로, 배우이자 감독인 구교환이 트랜스젠더 ‘제인’으로 분했다. 구교환은 단편 <연애다큐>,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에서 ‘힘을 뺀 유머’를 영민하게 구사하는 연출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연출과 출연을 동시에 맡은 <왜 독립영화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조현철 배우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뎀프시롤: 참회록>에서의 웃는지 우는지 알쏭달쏭한 독특한 희극 연기를 기억한다면, 이번 영화에서 보여줄 그의 활약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4. <나의 연기 워크샵>

Hyeon’s Quartetㅣ2016ㅣ감독 안선경ㅣ출연 김소희, 성호준

부국제가 발굴한 영화인들의 반가운 신작도 올해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 상을 받으며 평단의 극찬을 끌어낸 <파스카>의 안선경 감독 신작 <나의 연기 워크샵>이 대표적이다. <파스카>를 통해 세상이 정한 금기에 묵묵히 몸을 부딪쳐 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내면을 담아낸 안선경 감독은 이번엔 ‘연기’라는 영역을 탐구한다. <나의 연기 워크샵>은 배우 지망생들을 데리고 실제 연기 훈련을 시키며 만든 영화로,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연기의 세계를 흥미롭게 구현해 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의 연기 워크샵> 예고편

소개한 작품 외에도 배우 윤여정 주연,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 김기덕 감독의 <그물> 같은 최신 개봉작,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극장에서 빠르게 사라져 아쉬움을 남겼던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 같은 화제작 역시 영화제를 통해 상영된다. 예매 일정을 놓쳤다 해도 실망하긴 이르다. 영화제 현장에는 언제나 행운이 있기 마련이니, 부산으로 가는 티켓부터 무작정 예매한다 해도 후회는 없을 것이다.

2016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16.10.06 ~ 2016.10.15
장소 영화의전당, CGV센텀시티, 롯데시네마센텀시티, 메가박스해운대
홈페이지 www.bif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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