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Her의 멤버, 빅터 솔프(Victor Solf)와 시몬 카펜티에(Simon Carpentier) © Axel Morin

프랑스 일렉트로닉 록 듀오 ‘Her’는 2016년 데뷔앨범 <Her Tape #1>를 발표하며 리스너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데뷔 첫해 영국 <NYLON>, 영국 대중음악 주간지 <NME>, <GIGWISE> 같은 해외 음악 매체가 앞다투어 이들에게 ‘라이징 밴드’라는 수식을 붙인 기사를 쏟아냈으며, 유럽, 영국, 미국 등 세계적인 공연에 초청받아 자신들의 우아하고 관능적인 음악을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모두 데뷔 1년도 채 안 돼 벌어진 일이었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정교한 멜로디 라인, 꿈결같이 부드러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선사하는 밴드 Her의 음악을 천천히 느껴보자.

이미지- Her 페이스북

멤버인 빅터 솔프(Victor Solf)와 시몬 카펜티에(Simon Carpentier)는 일찍이 고등학생 때 만나 ‘The Poppoppos’라는 밴드에서 연주 호흡을 맞췄다. 2007년부터 꾸준히 밴드 활동을 이어오다 2013년 돌연 해체를 겪고 만든 팀이 오늘날의 2인 밴드 Her다. 수십 개의 자작곡을 만들고 녹음했으며, 팀의 이름을 결정하는 것부터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할 첫 번째 음원을 고르는 일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2015년, ‘Quite Like’를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공개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누군가는 불쑥 예고도 없이 등장한 신인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밴드 준비에 만전을 기한 결과물이었다.

Her 'Quite Like' Deezer Session

Her의 이름으로 처음 공개한 트랙으로, 밴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멤버 본인들도 그런 이유에서 이 곡을 가장 첫 번째로 선택했다고 했을 만큼, 센슈얼한 무드 자체보다 여성의 가장 본질적이고도 초연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Her 'Five Minutes' MV

<Her Tape #1>를 발표하기 전, 두 번째로 공개한 트랙이다. '아이폰으로 찍다(Shot on iPhone)' 캠페인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곡으로, 촘촘한 리듬과 극적이고 빈틈없는 전개로 듣는 내내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Her ‘Her’ MV

Her의 음악에서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를 꼽으라면 단연 극적인 멜로디 구성이다. 매번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뚫고 나오는 다양한 악기의 현란한 앙상블은 휘몰아치고 빠지는 부분을 정확히 가름하며 곡의 ‘킬링 파트’를 집요하게 구현해낸다. <Her Tape #1>의 다섯 번째 트랙 ‘He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1분 2초경 보컬이 쓱 빠지고 청량하고 경쾌한 드럼 사운드가 귀신같이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다. “여성을 위해 노래하는” 밴드답게, 여자주인공의 신비롭고 유려한 움직임을 거친 색점 효과가 살아있는 화면 안에 부드럽게 녹여냈다.

이미지- Her 페이스북

일렉트로니카든, 드림팝이든, 알엔비든 이들의 음악 장르를 하나로 규정할 순 없지만, 부드럽고 매끈한 질감의 사운드 너머로 터질 듯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느낌만은 확실하다. 이를테면 Her가 평소 즐겨 듣는 본 이베어(Bon Iver)의 여유롭고 느긋한 알엔비나, 에프케이에이 트위그스(FKA Twigs)의 아방가르드한 음악 세계,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적절히 섞어 버무린 느낌이랄까. Her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은 그들의 편식 없는 음악 취향을 반영하는 일환이기도 하다.

Her 'Queens'(ft. ZéFire)

평소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오래된 팬임을 밝혀온 이들은 지난해 말, 힙합 알엔비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싱글 <Queens>를 발표했다.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 위에 느긋한 힙합 그루브를 물 타듯 부드럽게 띄운 곡으로, 몬트리올 출신의 래퍼 ZéFire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Her의 두 보컬이 들려주는 풍부한 소울의 R&B 창법과 ZéFire의 펑키하고 리드미컬한 랩핑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곡이다.

© Axel Morin

2017년 4월, Her는 마침내 두 번째 앨범 <Her Tape #2>을 발표했다. 호소력 짙은 허스키 보이스가 돋보이는 ‘Jeanie J’나 ‘Blosson Roses’ 같은 트랙에서 보다시피, 일렉 기타나 신시사이저를 통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덜어내는 대신, 보컬에 힘을 실었다. “여성을 위해 노래하는” 밴드 철학은 변함없지만, 음악적 메시지에 변화를 두었다. 데뷔 앨범에서 아름다운 ‘그녀’에 대한 환상과 흠모를 노래했다면, 이번 앨범은 현대 여성의 강인한 면모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 그중 불합리한 사회 현실에 맞서 싸우는 강인한 여성상을 그려낸 타이틀곡 ‘Swim'을 들어보자.

Her ‘Swim'(ft. Zefire) MV 

여태껏 그대는 돈과 자신감을 위해 죽어라 일했지만
오, 그건 한낱 소용없는 일이었네

조류에 맞서 헤엄치자
흐름에 맞서 걸어가자

뮤직비디오는 갑옷을 입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에 맞서 집요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흑백 필름 안에 무겁게 담았다. “조류에 맞서 헤엄치자”는 반복적이고 애달픈 노랫말은 경제적 독립과 온전한 자아의 평형을 이루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현대판 잔 다르크’를 위한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Her는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를 오가며 활발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빈틈없이 채워진 투어 스케줄은 티켓구매 링크와 함께 Her의 페이스북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Her 페이스북
Her 공식 유튜브

 

(메인이미지- © Axel Morin 출처- Her 페이스북)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