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남수림 <관을 걸어나오며> 커버, (중앙)슬릭 <COLOSSUS> 커버, (우)최삼 <Suicide> 커버

국내 유일 여자 래퍼 서바이벌이라는 모토를 내건 <언프리티 랩스타>는 요란하게 여성 래퍼들을 끌어 모아 언더그라운드 여성 래퍼에 관한 대중의 관심을 부추겼다. 그러나 세 번째 시즌까지 치룬 지금, 그들의 음원 성적은 전 시즌에 비해 부진하다. ‘언프리티’를 내세우지만 사실 실력과는 별개로 ‘프리티’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가뜩이나 빈약한 한국 힙합신을 플랫폼 삼아 그려낸 것은 <언프리티 랩스타>의 한계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언더그라운드 여성 래퍼들은 그 활동 반경을 넓히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티’나 ‘언프리티’를 굳이 언급하지도 않고, ‘여성’이기 때문에 얻어지는 편견 혹은 특혜도 모른 척 ‘실력’이란 날을 가는 숨은 래퍼들도 있다. 이들에게 있어 예쁜지 안 예쁜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남수림(Rimi)

스윙스, 산이(San E), 버벌진트, 비솝, 조현아 같은 실력 있는 프로듀서, 래퍼, 보컬리스트, 싱어송라이터들이 2007년 결성한 힙합 크루 '오버클래스(OVERCLASS)'의 화려한 리스트 사이에 '리미(Rimi)'라는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버클래스 2집에 수록된 리미의 'i'm hot'은 그를 몰랐던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데뷔곡이자, 그를 아는 이들에겐 추억을 자극하는 명곡이다. ‘리미와감자’라는 듀오로도 꽤 많은 곡과 인기를 다분히 쌓아온 리미는 2010년 정규 1집 <Rap Messiah>로 여성 래퍼를 향한 선입견을 깰 파워와 독특한 플로우를 보여주며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의 실력파 래퍼로 자리매김했다.

남수림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Feat. 조현아 Of 어반자카파)

리미는 2012년 자신의 본명인 남수림으로 음반 <Drive Me to the Moon>을 발표했다. 본인이 전곡을 작사, 작곡한 앨범은 기존의 리미보다 사뭇 부드러운 ‘남수림의 랩’을 들려주지만, 독특한 자기만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대표곡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는 오버클래스로 같이 활동한 어반자카파 조현아의 피처링과 남수림의 독특한 랩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이후 남수림으로 드문드문 앨범을 내며 리미 시절 팬들의 아쉬움을 살 무렵, 2016년 싱글 앨범 <관을 걸어나오며>를 다시 ‘리미’란 이름으로 발표하며 격한 환영을 받았다. 각기 다른 개성의 리미와 남수림을 오가는 그의 이중생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만, 두 인물 모두 독보적인 래퍼임은 분명하다.

'관을 걸어나오며'

 

슬릭(SLEEQ)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여성 래퍼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라는 말 반대편에 슬릭이 있다. 2011년 언더그라운드 크루 ‘위메익 히스토리(We Make History Records)’로 활동하며 두 개의 믹스테잎을 발표하고, 2013년 싱글앨범 <Lightless>을 통해 정식으로 실력을 선보였다. 이후 제리케이가 이끄는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 뮤직(daze alive music)’에 합류, 싱글앨범 <Rap Tight>을 발매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여성 래퍼들 사이의 디스전을 비꼬는 가사가 돋보이는 'Rap Tight'의 타이트한 랩은 역시 슬릭의 무기가 MIC임을 확인케 한다.

슬릭 'Rap Tight'

최근 발매한 정규앨범 <COLOSSUS>에서는 그간 쌓아온 내공을 쏟아냈다. 특히 글램 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나잠수, 테오를 비롯한 여러 프로듀서들이 만든 다양한 분위기의 비트 위에서도 슬릭이라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낮은 음성으로 비트에 꼭 어울리게 내뱉는 슬릭의 랩은 ‘Liquor’에서 더욱 스타일리시하다.

슬릭 'Liquor'

 

최삼(Choi Sam)

믹스테잎으로 다양한 랩을 선보여온 최삼은 2014년 첫 싱글앨범 <답>을 통해 이전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에선 본 적 없는 특유의 목소리를 정식으로 공개했다. 여자 목소리인지 의심할 만큼 무겁게 깔리는 최삼의 저음은 남녀불문하고 진정 독보적이다. 그의 음악적 색깔은 꾸준히 들려준 믹스테잎에 남아있는 노력의 흔적과 함께 더욱 짙어졌다. 현재까지 7개의 믹스테잎, 5개의 디지털 싱글, 한 개의 디지털 EP앨범을 발매한 가운데, 올해 7월에 발매한 첫 EP앨범 <Suicide>의 타이틀곡 'Professional'에서 최삼의 매력적인 보컬과 랩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최삼 'Professional'

최근에 ‘단편선과 선원들’과 함께 작업한 ‘날(Hasta)’에서도 최삼의 목소리는 여전히 귀에 박힌다. 칼날의 날을 뜻하는 ‘날’은 ‘해리빅버튼’의 이성수와 ‘가리온’의 MC 메타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락과 힙합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인 '스노우볼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곡이다. ‘스노우볼 프로젝트’는 작은 눈덩이가 구르고 굴러 거대한 스노우볼이 된다는 의미처럼, 다양한 예술의 콜라보 작업을 통한 새로운 변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이다. ‘날’은 실험적인 록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이 곡을 쓰고, 그로부터 인상을 받은 최삼이 가사로 옮기고, 그 가사에 대한 감정을 다시 연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단편선과 선원들 X 최삼 '날(Hasta)' (스노우볼 프로젝트 Vol. 2)

(메인이미지 출처- 최삼 <Suicide>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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