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특별한 음식이었다. 동네 어귀 작은 제과점에서 종이 상자에 든 버터크림 케이크를 구매하는 행동에는 설렘이 함께했다. 조각 케이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케이크의 크림이 오로지 설탕과 버터로만 한정되던 시절에도 둥근 케이크가 놓인 빵집 유리 쇼케이스에 코를 박고 구경하던 경험. 케이크는 이벤트와 특별함을 의미했고, 그것은 케이크의 외관과 분명 관련이 있었다. 설탕으로 만든 작은 요정들과 장미꽃, 통조림 체리 장식, 초콜릿으로 쓴 글자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크림. 달걀프라이에 김치 반찬으로 차린 매일의 식탁도 단번에 특별해지게 만드는 케이크의 마법은 축하와 사랑 같은 감정들을 더욱 고양했고 기념할 만한 날이 마땅히 빛나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케이크 점이 하나둘 생기는가 싶더니 아예 조각 케이크만을 판매하는 뷔페가 생길 정도로 붐이 일었다. 유학파 출신 파티시에들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이 곳곳에 생기고,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파티시에’라는 용어가 귀에 익을 즈음, 커다란 카페 체인들은 앞다투어 다양한 케이크 메뉴를 출시했다. 미식에 대한 사회적 열기가 뜨거워지자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 ‘라뒤레(Laduree)’ 같은 서양 고급 디저트 브랜드가 한국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그런 가격이 부담스러운 평범한 대다수 소비자는 여전히 쉼터이자 사랑방, 공부방인 카페를 찾는다. 대형 카페 체인에서는 익숙한 맛의 케이크를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소비자들은 창고형 매장에 직접 카트를 끌고 냉동식품 사이의 치즈케이크를 집어 든다. 한때 이대 앞과 강남에서 서양식 티룸처럼 화려하게 꾸민 카페들이 판매하던 케이크들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특별한 케이크를 찾아 손이 닿을 만한 곳을 샅샅이 탐험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케이크’가 필요할 때, 그러니까 양식의 마지막 코스인 디저트로서가 아니라 케이크로서의 케이크, 그 마법이 필요한 순간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파티시에 고세임(@saeim_ko)의 케이크는 색다른 비주얼로 고급 디저트와 저가 케이크 사이 어딘가에서 소비자들의 열광을 얻고 있다. 그가 일하는 도레도레(DORE DORE, @doredoreofficial)는 전국 29개 직영점에 디저트와 브런치 브랜드를 거느린 대규모 카페 체인으로, 2013년 출시한 무지개색의 ‘기분좋아 케이크’로 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고객들을 자극했다. ‘기분좋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좋아해’, ‘사랑해’, ‘고마워’ 같은 감정과 밀접한 언어들로 이름 지어진 케이크들은 그 형태 또한 감각적이다. 케이크라면 으레 떠올리는 파스텔, 브라운 톤의 색과 정형화된 형태를 벗어난 과감한 디자인의 케이크들은 젊은 고객들의 눈을 입보다 먼저 사로잡았다. 도레도레는 케이크라는 상품이 갖는 외관의 힘을 알고 이를 마케팅에 충분히 활용하는 브랜드다. 그래서 맛과 비주얼을 동시에 책임지는 파티시에의 역할을 보다 세분화하여, 케이크의 디자인 파트를 책임지는 크루를 따로 두는 듯하다. 고세임은 이 도레도레의 디자인 크루 소속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케이크들은 서양에서 유행해 화제가 된 케이크들, 그러니까 표면을 젤라틴으로 기포 없이 덮어 금속성의 광택으로 반짝이게 만들거나, 마치 기계로 찍어낸 듯한 크림 러플로 뒤덮인 모습들과는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그의 디자인은 보다 소박하고 역동적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유화의 붓질 흔적과 질감을 케이크로 옮긴 듯 크림을 마치 물감처럼 사용하고, 생선 캐릭터 형태의 케이크에는 자른 단면마저 생선의 모습을 띠도록 제작해 위트를 가미한다.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입체적인 케이크, 근대 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인상주의풍의 크림 꽃과 설탕 스프링클 사이에 섞인 만화 같은 눈동자들, 밤낮으로 변화하는 하늘의 미묘한 색을 심플하게 담은 케이크들까지 다양한 레퍼런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지만, 어디까지나 손수 만든 것 같은 모양새는 공산품의 정교한 형태를 지향하는 여타 케이크들 사이에서 돌출된다. 마치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매력은, 형태와 색을 전통적인 케이크 디자인에 한정하지 않고 사용하여 ‘수제’ 느낌을 강조한 덕분이다.

케이크 사진을 SNS 계정으로 공유한 소비자들만이 이런 매력에 이끌린 것은 아니다. 도레도레의 케이크는 각종 화보와 영상 촬영의 단골 소품이다. 아이유 뮤직비디오, 각종 패션지 화보와 소개 지면, 패션 브랜드 홍보영상과 파티에 등장한다. 고세임이라는 파티시에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가 업데이트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고객의 개인적 주문에 따라 만든 케이크, 새로운 업장에 전시해 도레도레의 얼굴을 책임지도록 만들어진 케이크들이 섞여 있다. 이들 케이크는 매장에서 볼 수 있기도 하고 보였다가 한정으로 곧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2016년 초에는 아마추어부터 프로페셔널 업체까지 참가하는 대규모 과자 박람회 [과자전]이 마련한 아티스트 토크에 고세임이 있었다. 그는 브랜드 작업과 개인 작업 사이마저 자유롭게 오가는 것처럼 보인다.

고세임의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은 그래서 더욱 즐겁다. 그가 드러내는 다양한 관심사와 취향을 담은 이미지들은 그가 만든 케이크들과 한 치의 어색함 없이 어우러져 그의 세계를 보여 준다. 자연히 감성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케이크라는 것보다 더 감성적일 수 있는 음식이 또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애초에 케이크가 있었고, 그것은 특별했다. 그 특별함이 때로 범상해질 때도 있고 범접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새로워지고 넓어지기도 한다. 아마 크럼블로 만든 모래와 새파란 크림 파도는 그 옛날의 설탕 장미보다 더 맛있을 것 같다. 어떤 좋은 날 선물한 이 케이크가 제 역할을 뿌듯이 하리라 상상하는 동안, 고세임은 케이크를 만든다. 특별하게.

 

고세임 인스타그램
도레도레 인스타그램

 

메인이미지 고세임 인스타그램 '오로라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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