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마지막이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 그것은 느닷없이 다가오는 법입니다. 어떻게 해야 조금 덜 슬플 수 있을지, 조금 더 현명하게 안녕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공들여 생각해보아도 우린 언제나 적절한 대처를 제때, 하지 못합니다. 특히 그 이별이 상대방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이라면, 즉 죽음으로 인한 일방적인 상실이라면 더욱 그렇죠.

상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끝내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저 슬픔에 묻혀버리지 않기를, 그 힘든 시간을 버틸 힘과 애도의 이야기들을 책과 영화에서 찾아봤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 2014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2008년, 문학 에이전트로 영국 문학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30여 년을 함께 했던 아내 팻 캐바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는 아내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아내와 사별한 지 5년 만에, 그가 아내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떤 아픔은 구체적으로 호명되며 치유되기도 하지만, 어떤 고통은 에둘러 표현되고 서서히, 아주 오래 지속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줄리언 반스의 슬픔은 일생 그에게 남으리라는 생각이 들죠. 그것이 그에게 있어 끝나지 않는 사랑의 다른 모습일 거라는 짐작과 함께요.

 

<아주 긴 변명>(2016)

永い言い訳, The Long Excuse | 2016 | 감독 니시카와 미와 | 출연 모토키 마사히로, 후카츠 에리, 쿠로키 하루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처럼 아내를 잃었지만, 영화 <아주 긴 변명> 속 사치오는 그저 덤덤합니다. 그 역시 유명한 소설가이고, 지금의 그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라는 존재 덕분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소원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애도에 이르는 길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습니다.

아내 나츠코는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고, 사치오는 그 친구의 가족들을 만나며 지난 시간을 새롭게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내의 마지막 말, 아내의 빈자리 등 모든 것들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죠. 그에게 있어 사랑은 애도와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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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 이순 | 2012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 슬픔은 타인이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물리적, 정신적인 모든 것을 포함해서요- 존재인 부모의 죽음은 그들의 부재만이 아닌, 한 세계가 끝나는 느낌일 겁니다. 롤랑 바르트는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쓴 2년 동안의 기록이 바로 <애도 일기>입니다.

애도라는 것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본인 외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주변의 배려가 나에게는 무책임한 발언이 되기도 하고,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의 행복도 나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곤 하니까요. 그러니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위로가 되진 않아요. <애도 일기>는 그런 애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상실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음이 아플까봐>

올리버 제퍼스 | 아름다운사람들 | 2010

<애도 일기>처럼 세상 전부이던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림책 작가이지만 독자의 나이에 경계를 두지 않고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올리버 제퍼스는 슬픔을 이기는 방법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슬프지 않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닫아두던 소녀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장한 뒤,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시 돌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계기는 ‘또 다른 소중한 존재’라는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진부할 정도로 언급된다는 것은 그만큼 애도와 위로에 있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겠죠.

 

<스틸 라이프>

Still Life | 2013 | 감독 우베르토 파졸리니 | 출연 에디 마산, 조앤 프로갯, 카렌 드루어리

구청 직원 존 메이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애도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입니다. 그들의 유품을 정리하며 유족을 찾고, 추도문을 쓰고, 장례식 준비를 하며 그들의 마지막을 지킵니다. 어느 날 그는 급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같은 날 바로 맞은편 집에 살던 빌리의 부고를 듣게 되죠. 그리고 마지막이 될 빌리의 장례식을 ‘진심’을 다해 준비합니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이 될 어떤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향한 ‘애도’는 존에게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삶’을 가져다줍니다.

<스틸 라이프>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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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최윤필 | 마음산책 | 2016

그리고 이 책 또한 저자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추도문입니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가치들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회를 향해 싸워왔던 서른다섯 명의 부고를 모아 만든 책 <가만한 당신>은 우리 인생에 가만히 자리 잡았던 이들을 제대로 기억하고자 쓰였습니다. 인권, 차별, 불합리에 대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바쳤던 이들의 부고. <스틸 라이프>의 존이 그러했듯, 그들을 애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다른 삶을 가져다주리라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살아남은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할 수 있으니까요.

 

상실의 슬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순진하고 순박한 그 말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각자에게 최고의 애도가 자리했으면 합니다. 마음껏 슬퍼하고 충분히 기억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겁니다. 먼저 떠난 이들을 기리는 모든 책과 음악, 영화 그 외의 모든 것들의 힘을 빌려서요.

 

Writer

심리학을 공부했으나 사람 마음 모르고,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제작보다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전공과 취미가 뒤섞여 특기가 된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영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