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1952~)가 2014년 후두암 선고를 받은 후 대중에게서 사라졌다가, 지난 해 신작 스튜디오 앨범 <async>로 돌아왔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키보디스트, 영화음악가로 40여 년간 쉴 새 없이 음악 활동을 계속해 온 그인 만큼 16번째 솔로 앨범 <async>는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영화 <레버넌트>(2016)의 배경음악에서 선보였던 환경음악(Ambient Music)의 연장선에 있는 16곡이 담겼다. 힘든 방사선 치료를 극복하면서 더욱 원숙해진 그의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다.

Ryuichi Sakamoto <async> album preview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을 벗어나 전 세계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전 세계의 음악인과 교류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 왔다. 일본 오키나와 민속 음악, 드뷔시(Debussy)로 대표되는 클래식 음악, 유럽의 테크노 음악, 아시아 권역의 음악에 두루 관심을 두며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어왔고, 명감독의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 왔다. 음악은 원을 따라서 돌고 돈다는 평소 그의 지론에 따라 독특한 음악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녔으며, 음악의 자유로운 유통을 주장하며 저작권법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음악인이기도 하다. 1970년대 중반 순수미술과 음악을 전공하고 음악 세계에 뛰어든 그가, 40여 년 간 어떤 음악을 했는지 대표곡들을 중심으로 따라가 보자.

 

YMO 시절의 일렉트로닉/테크노 음악

세션 활동을 접고 1978년 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여 일렉트로닉/테크노 음악을 선보였다. 당시 첫 솔로 앨범과 YMO 앨범에 다른 버전으로 수록한 ‘Thousand Knives’로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YMO 'Thousand Knives' Live (1979)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음악과 연기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1983)에 일본군 장교로 출연하여 뉴질랜드 오지에서 한 달간 촬영하면서 함께 출연한 데이비드 보위와 깊은 친분을 쌓았다. 이 영화의 음악으로 류이치는 영국 아카데미(BAFTA) 영화음악상을 수상한다.

영화의 대표곡 ‘Forbidden Colors’는 그룹 Japan의 데이비드 실비앙(David Sylvian)이 보컬을 맡았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안겨준 영화 <마지막 황제>

1987년 아카데미에서 9개 부문을 수상한 베르나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세계적인 영화음악 감독으로 부상한 그는, 유명 영화감독들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게 된다.

<마지막 황제>에 수록된 ‘Rain’은 바이올린 연주가 인상적인 그의 대표곡이다

 

다양한 뮤지션과의 교류를 통한 일렉트로닉/애시드 음악

1990년대에는 다양한 나라의 보컬리스트나 뮤지션들을 초빙하여 매력적인 일렉트로닉/팝과 애시드 재즈 음악을 발표하였다. <Heartbeat>(1991), <Sweet Revenge>(1994)는 당시의 대표 음반으로, 대부분 영어 가사로 된 멋진 곡들이 가득하다.

다양한 나라의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한 ‘Triste’는 <Heartbeat>에 수록된 곡이다

 

브라질 첼리스트 모렐렌바움과 함께 한 보사노바 음악

2000년대 들어서는 보사노바 음악에 빠졌다. 브라질의 첼리스트 자크 모렐렌바움(Jaques Morelenbaum, 1954~)과 그의 부인인 보컬리스트 폴라(Paula)와 함께 한 앨범 <Casa>(2001)의 넘버는 대부분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오리지널이다.

<Casa>는 리오의 조빔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정도로 깊은 애착을 보였다

 

영화 <레버넌트>의 음악으로 귀결된 환경음악

2000년대 중반이 지나 원숙한 나이가 되면서 그는 비주얼 아트, 환경음악, 그리고 반핵/반전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다. 2015년 영화 <레버넌트>의 음악을 맡으면서 황량하고 적막한 자연을 묘사한 배경음악으로 호평을 받았다.

음악에 대한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졌으나, 여러 사람의 작곡을 조합하였다는 이유로 아카데미는 후보작으로의 선정을 거부하였다

한국의 팬들, 친한 뮤지션들이 그의 한자 이름을 우리 말로 따 “용일이형”이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하는 그는, 한국을 좋아하는 친한 뮤지션이다. 수년 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일본 문화가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은 그렇지 못했다. 그건 사람들이 한국으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사람들이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둔다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최근에는 태국에 관심이 크다. 내 생각엔 한국 문화와 음악은 힘이 넘친다. 한국 영화는 특히 놀랍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세계적 비디오 작가 백남준과도 각별한 친분을 쌓아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