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한국인에게 이제 여행은 사치보다 생활에 가까운 일일지 모르겠다. 제주도에 가는 것보다 저렴한 비행기삯으로 일본에 갈 수 있다. 서울의 반값인 방콕의 호텔들은 그 몇 배로 고급스러운 경험을 제공한다.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진 비용이 반갑더라도 역시 한 번에 목돈이 드는 것이 여행이라 만만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더 이상 비용이 여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여행을 과거처럼 거창한 의미로 바라보거나 소비하지 않는다. 뜻밖에 한국에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떠나는 연령대는 30대로, 공항을 떠나는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30대라고 한다. 보다 경제력이 있는 중, 노년층보다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층이 여행을 더 많이 떠난다는 것이다. 삼성카드가 지난 3년 동안 고객들의 결재 내역 24억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2017. 5. 22. SBS 보도), 20대와 30대는 소득이 늘지 않아도 해외여행에 들이는 지출은 꾸준히 늘려왔다. 당장 나 자신과 주변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들여다보자. 힘들어도 간다. 주말 동안 간다. ‘밤도깨비’로 떠난다. 일하다 지치면, 공돈이 생기면 나간다. 수많은 젊음이 이런저런 이유로 비행기에 오른다. 고단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기,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해보고 또 직접 경험해 보기. 수많은 의미가 여행에 담길 수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단 한 번의 여행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리라는 거창한 기대는 거기에 없다. 때때로 여행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은 이제 은퇴 후의 미래 설계도, 어려서부터의 꿈도 아니다. 당장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불안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현재의 삶을 중시한다는 의미의 줄임말 ‘YOLO(You Only Live Once)’도 꽤 자주 보인다. 한 손에 ‘론리플래닛’을 들고 배낭을 메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트렁크를 끄는 젊은 여행객들이 주말의 기대를 품고 저가항공편에 탑승한다.

긴 비행시간과 비용이 드는 유럽, 미주에 비해 짧은 시간과 저렴한 비용이 드는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국내의 수많은 여행지도 ‘맛집’과 지자체가 마련, 홍보하는 볼거리 중심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국내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펜션과 민박들은 점차 더 고급화되고 세련되어지는 젊은이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하고, 온라인에는 여행담이 넘쳐난다. 여행을 떠난다는 자체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지금,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납득시킬 만한 여행의 스타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남들과 다른 여행, 더 멋진 여행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커져만 간다. 어떤 사람들은 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누군가는 보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여행을 원한다. 히피처럼 차려입고 갠지스 강가에서 다 같이 자아를 찾던 2000년대 초반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겨우 10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훨씬 다채로워진 선택지가 놀랍기만 하다. 그중 무엇을 고를 것인가. 어떤 여행을 떠날 것인가.

혼란스러운 예비 여행자들도, 베테랑 여행자들도 감탄하는 여행 매거진과 무크지를 소개한다. 개별적인 정보들의 단순한 조합보다, 잡지가 지향하는 감성적 흐름과 주제 속에서 일관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책들이다. 책의 감각적인 디자인과 사진, 우리가 여행지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소개하는 본연의 임무는 물론, 그 자체로도 한 권의 책으로서 훌륭한 완성도를 지니고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지금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이 원하는 여행은 어떤 모습일까.

 

<AROUND>: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2012년 8월, 제1호를 펴낸 매거진 <어라운드>는 특별한 기획을 선보였다. 등산, 낚시, 캠핑처럼 중년 남성 중심이거나 혹은 소수 마니아만이 장비 활용을 중심으로 즐기던 아웃도어 문화를,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데다, 결정적으로 젊은 캠핑 스타일로 다룬 것이다. 특히 <어라운드>는 매거진의 이름으로 캠핑을 직접 개최, 9명의 캠퍼와 스텝들이 하룻밤의 캠핑을 직접 즐기고 기록함으로써 매거진의 아이덴티티를 단단하게 선보였다. 거창한 장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소소한 도구들과 팁, 간단한 레시피를, 국외의 캠핑 문화를 소개하며 잠시 숲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 여기에 외국에서 발견한 작고 독특한 장소들, 사람들을 만난 기사들이 어우러진 창간호는 <어라운드>가 추구하는 자연주의적이고 소박한 풍경과 삶, 여행에 대한 상과 앞으로의 행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금 <어라운드>의 주제는 점차 여러 가지로 확장되어 창간 당시와 비교하면 변화가 생겼지만, 텍스트로 복잡한 대부분의 잡지와 차별화되는 단순한 사진 중심의 표지, 잡지 속을 채운 감성적인 일러스트와 사진들, 개인들의 소박한 에세이나 삶의 풍경 등은 여전히 각호의 기획과 어긋남 없이 부드럽게 책 속을 흐른다. ‘어우러짐’, ‘느림’처럼 <어라운드>가 권하는 편안한 가치들 속에 머무는 동안은 꼭 여행을 가거나 일상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리프레시되는 느낌을 얻게 되기도. 그것이 힘겨운 잡지 시장에서 5년을 버텨온 <어라운드>의 색깔이자 저력이다.

 

기내지 <YOUR SEOUL>: 지극히 사적인 여행

<유어 서울>은 2016년 금호 아시아나 사에서 런칭, 취항을 시작한 항공사 에어서울(AIR SEOUL)의 기내지다. 에어서울은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취항지도 아시아의 10여 곳으로 적은 편이지만, 그만큼 저가로 독특한 여행지를 경험할 수 있는 항공사. 2017년 1월 창간한 <유어 서울>은 이제 5개 호를 펴냈지만, 창간호부터 그 독특한 색깔이 두드러졌다. 도쿄,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일본의 지방 도시들의 여정을 구체적으로 다룬 기사, 세 명의 서울 사람이 서울의 숨겨진, 혹은 사적인 장소들을 소개하는 특집 인터뷰가 실렸고, 서울의 기념품으로는 모나미 볼펜이 소개되었다. 여행자가 들고 다니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가볍고 작은 판형으로 제작된 <유어 서울> 속에는 지금 서울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젊은이들이 만든 사진, 음악(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디제이들의 믹스셋을 들을 수 있다), 소설을 실었다. 창간호 표지는 젊은 사진작가 표기식이 맡았다. 표지 사진을 촬영한 작가들은 매 호에서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서울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유어 서울>은 다양한 사람들 각자가 서울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흥미로운 방식에 관한 매거진이다. 그리고 여전히 기내지다.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고도 <유어 서울>을 보려면 에어서울 홈페이지에 가면 된다.

 

<TRIPFUL> 시리즈: 처음 가는 여행

도서출판 피그마리온(PYGMALION)의 이지앤북스(EASY&BOOKS)는 여행책 전문 브랜드다. 2001년 펴내기 시작한 <이지> 시리즈는 여타 여행 가이드북처럼 현지 정보로 빼곡한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형식을 갖췄지만, 수많은 여행책 속에서 깔끔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디자인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쿠바의 여행정보를 담은 <이지쿠바>(김현각 저, 2016)가 출간과 함께 큰 관심을 받았고, 새로운 이지 시리즈들이 여행책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등 그만의 입지를 개척했다. 그런 이지앤북스의 두 번째 시리즈는 <트립풀>이다. <트립풀>은 세계 곳곳의 대도시와 유럽의 방대한 정보를 다루는 <이지> 시리즈와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가까운 지역들의 작은 도시들을 다루는 여행 무크지. <트립풀>의 첫 시리즈로 일본 도시 후쿠오카 편을, 두 번째로는 태국 도시 치앙마이 편을 출간했다. 표지에서 볼 수 있듯 각 도시의 매력이 드러나는 감성적인 사진과, 이지앤북스의 강점을 살린 실용적 여행 정보를 결합하여 특히 장기체류자들만큼 여유로운 여행을 경험하고 싶은 초보 여행자들에게 유용하다. ‘트립풀’은 여행(Trip)과 ‘~이 가득한(Full of, ~ful)’이란 단어를 붙여 만든 합성어라고.

 

<URBAN LIVE> 시리즈: 조용히, 깊게 녹아 드는 여행

2016년부터 어반북스가 두 권째 펴낸 <어반 리브> 시리즈는 ‘로컬 비지니스 앤 트래블 매거진(Local Business and travel magazine)’을 표방한다.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상점들을 소개한다는 것은 여행 가이드의 공통된 주요 목적이지만, <어반 리브>는 그에 더해 그 상점을 만들어가는 오너들의 면면을 보여줌으로써 그 지역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 첫 번째 책은 <어반 리브 교토&오사카>(2016.09), 두 번째 책은 <어반 리브 방콕>(2017.01)으로, 젊은 오너들의 지역에 기반한 다양한 삶을 소개했다. <어반 리브 방콕> 편에서 소개된 한국인 김주영 씨처럼 이주의 꿈을 꾸거나, 현지인들처럼 조용하고 깊게 그 지역에 녹아 들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여기에 참여한 사진가들은 표기식, 정유진. 각각 1, 2호를 담당하여 사람들과 상점, 사물들의 인상을 담아냈다. <유어 서울> 창간호에 함께 했던 표기식의 교토, 오사카와 ‘melting frame’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정유진의 방콕을 책 전체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지에서 얻은 풍부한 영감을 일상으로 불어 넣는다는 컨셉으로, 여행 직전에만 들추고 말기에는 아까운 무크지다.

 

<어라운드> 홈페이지
<유어 서울> 인스타그램
<유어 서울> 미디어 룸
피그마리온 이지앤북스 인스타그램
<어반 리브>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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