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포스티노>, <네루다> 포스터

지난 해 봄이 시작할 무렵, 그리고 봄이 끝나는 지금 각각 찾아온 두 편의 영화가 있다. 작년 3월에 재개봉한 <일 포스티노>(1994)와 5월에 개봉한 <네루다>(2016)다. 두 편 모두 칠레의 대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를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그의 일생을 지루하게 열거하는 전기 영화는 아니다. 차라리 네루다에게 헌사하는 일종의 ‘시’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멋진 두 편의 영화에는 우리가 몰랐던 진짜 네루다의 삶과 시가 함께 녹아 있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에세르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Ricardo Eliécer Neftalí Reyes Basoalto)라는 긴 이름인데,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필명을 사용하던 그는 추후에 실명을 아예 네루다로 바꿨다. 1920년대 학창시절부터 문학적인 재능을 펼친 네루다는 1950년 국제스탈린평화상,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됐다. 그런 네루다의 시가 얼마나 훌륭하고, 얼마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일일이 나열하기엔 너무 방대해서 지루할 수도 있다. 대신 네루다의 시가, 혹은 시 자체였던 네루다의 삶이 ‘영화’에 얼마나 훌륭하게 녹아 들었는지 살펴보자.

 

<일 포스티노>

소설이 된 시인, 영화가 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자, ‘시인 네루다’로 대표되는 영화 <일 포스티노>(1994)는 사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1985, 원제는 <불 타는 인내>)를 원작으로 한다. 즉, 영화는 실제 네루다의 삶 보다는 소설 속 이야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만든 것이다. 오히려 소설이 실제 네루다의 삶을 더욱 가까이 공유하는데, 특히 네루다가 겪은 칠레의 정치적 상황을 아우른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책 표지(<El Cartero de Neruda: Ardiente Paciencia>(Spanish Edition), 1995)

실제로 네루다는 칠레 역사상 중요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문학계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1935년 마드리드 주재 영사를 지냈고 이후 외교관으로서 여러 나라를 오갔다. 1945년에는 칠레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공산당에 입당하며 정치적 태도를 굳혔다. 그러한 정치인 네루다의 삶은 시인 네루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네루다는 정치 연설에 참여했고, 역사의식을 담은 시를 지어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후 그는 여러 번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1952년에는 이탈리아 카프리 섬으로 갔다. 

바로 그곳이 영화 <일 포스티노>의 배경지다. 다만 영화는 네루다가 카프리 섬에 갔던 정치적 상황보다는, 네루다가 머물렀던 아름다운 공간을 빌려 시적인 표현을 빛내는 데 주력한다. 섬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는 청년 ‘마리오’(마시모 트로이시)와 시인 ‘네루다’(필립 느와레)가 서로 시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우정을 쌓고, 시로부터 얻은 원동력으로 삶을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특히 대사 하나하나에 재치 있는 메타포(은유)가 넘치는데, 마치 꼭 네루다가 지은 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엔딩 크레딧에 네루다의 <시>가 삽입되기도 했다. 시와 네루다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일 포스티노>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네루다 시선> 중 시(Poesia) 일부, 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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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영화로운 시인, 도망자로 돌아오다

카프리 섬에서 연애시의 대가, 네루다를 만났다면, 이번엔 칠레의 유명한 정치인, 네루다를 만날 차례다. 영화 <네루다>의 시간적 배경은 <일 포스티노>에 앞서는 시기로, 네루다가 카프리 섬으로 망명하기 전의 상황을 모티프로 한다. 1946년, 칠레에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이 취임한 후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공산주의자이자 칠레 국회 상원의원이었던 네루다는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했다. 이에 정부는 네루다를 해임하고, 국가원수 모독죄로 체포영장을 발급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칠레의 많은 공산당원들이 이러한 탄압에 몸을 숨겨야 했고, 네루다의 망명 생활도 이때 시작되었다.

<네루다> 스틸컷

영화 <네루다>는 여기에 독특한 상상력을 더했다. 정부의 구속을 피해 은둔생활을 하게 된 ‘네루다’(루이스 그네코)의 이야기가 그를 추적하게 된 비밀경찰 ‘오스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의 긴장감 넘치는 영화로 재탄생했다. 특히 영화는 도망자가 된 네루다를 쫓는 오스카마저 그의 매력에 빠지고 마는 인물로 표현해내어 아이러니한 극적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재클린 케네디의 전기를 색다른 시각으로 조망한 영화 <재키>(2016)를 선보였고, 네루다와 같은 칠레 출신인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연출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작품. 노벨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시인이자 숱하게 망명길에 오르며 도망자가 된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를 영화로 만나는 일 역시 기대할 만하다.

영화 <네루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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