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영국 배우 로저 무어(Roger Moore, 1927~2017) 경이 스위스에서 암으로 투병하던 중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TV 시리즈 <세인트(The Saint)>의 주인공 사이먼 템플라(Simon Templar) 역을 맡으면서 일약 주연급 배우로 떠올랐다. 1973년에는 션 코너리(Sean Connery)를 대신하여 <007 죽느냐 사느냐>부터 1985년 <007 뷰 투 어 킬>까지 일곱 편의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아, 가장 많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배우 중 하나로 남았다. <007 옥터퍼시>(1983) 때는 촬영지인 인도의 빈곤 상황에 충격을 받아 자선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1991년부터 유니세프 홍보 대사(UNICEF Goodwill Ambassador) 활동을 시작하여 두 번의 대영제국 훈장과 작위를 받았다.

<007 죽느냐 사느냐>(1973)의 유명한 오프닝 신

초대 제임스 본드 션 코너리(Sean Connery, 1930~)는 20여년 간 6편의 007 영화에 출연하며, 근육질의 미남 섹스 심볼로 최고의 인기남이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데 대한 우려와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떠난 션 코너리의 빈 자리는 곧 TV 시리즈 <세인트>에서 영국 스파이 역을 하던 로저 무어가 꿰차게 된다. 그가 맡은 제임스 본드는 남성적인 액션보다는, 첨단기술의 무기로 한 방을 날리고 점잖은 영국신사인 척하는 바람둥이인 데다 가끔 교활하거나 코믹한 면모를 보이는 캐릭터가 되었다. 이는 1970년대 변화된 트렌드를 반영한 제작사의 의도된 계산이었고, 로저 무어의 이미지와도 딱 맞는 선택이었다.

007 시리즈 속 로저 무어 명장면 열전

그는 가장 나이 많은 제임스 본드 배우였다. 1973년 <007 죽느냐 사느냐> 출연을 결정했을 때 이미 45세의 중년이었고, 마지막 <007 뷰 투 어 킬>(1985)을 찍을 때는 환갑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제임스 본드 역에서 벗어난 후 5년간은 모든 출연을 사양할 정도로 본드 역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후 절친이었던 오드리 헵번의 권유로 1991년부터 유니세프 홍보대사와 푸아그라(식용) 반대 같은 동물 권익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며, 남은 생을 공익 활동에 활발히 헌신하였다.

영상으로 보는 로저 무어의 삶과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