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보라색, 연두색, 노란색, 빨간색 옷을 입은 네 존재가 커다란 엉덩이를 흔들며 파란 동산 위를 뛰고 구르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말투도 어눌한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생산성이 없는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며 아무 걱정 없는 모습으로 동산에서 뛰어 논다.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봤던 프로그램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캐릭터나, 주변 환경에 대한 설정이 ‘께름칙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영국 BBC가 철저하게 영, 유아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한 유아프로그램인 <텔레토비(Teletubbies)>(1997~2001)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텔레토비 마약’, ‘텔레토비 괴담’ 같은 ‘동심 파괴적’인 연관검색어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사탄 음모설이니, 사회소수자 상징설이니, 유독 다른 유아용 만화나 교육 프로그램에 비해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유는 뭘까. 공중에 떠도는 무성한 루머들 가운데, 신빙성 있는 몇몇 음모론과 그 진위여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1. 제작진 마약 복용설

텔레토비를 연기한 배우들의 모습. BBC는 배우들의 안전 문제를 고려해 최대 10분 동안만 복장 안에 머무르도록 규정했다. Via The Sun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의 텔레토비 ‘탈’ 속에 숨겨진 성인 배우들은 길이 300센치, 무게 13킬로를 넘는 거대한 의상을 입고 뒤뚱뒤뚱 춤을 추며 “빠빠, 맘마” 같은 유아적 언어들을 반복한다. 텔레토비가 사는 돔하우스의 수도꼭지를 틀면 걸쭉한 핑크색 반죽이 흘러나오고 동산 위에는 아기 얼굴이 박힌 태양이 이글거린다. 네 명의 아이들은 초식도, 육식도 하지도 않으며, 괴상한 기계들이 뱉어내는 ‘스마일 과자’만 먹을 뿐이다. “약 빨고 만든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올 만 하다. 그런데 BBC 유아 프로그램 프로듀서였던 사라 그라함(Sarah Graham)이 2009년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텔레토비 제작에 참여할 당시 나를 포함해 제작진 일부가 마약을 복용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의 기괴한 상상력과 배우들이 연기한 엉뚱한 행동들은 과연 "창의적 사고가 아닌 그저 마약에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발휘된 것일까.

 

2. 사회소수자 상징설

텔레토비 공식 테마송 <Teletubbies Say "Eh-oh!"> MV

텔레토비의 네 캐릭터가 성 소수자, 장애인 같은 사회소수자를 상징한다는 루머다. 빨간색 핸드백을 메고 발레 치마를 즐겨 입는 ‘보라돌이’는 동성애자, 다른 캐릭터에 비해 얼굴색이 짙고 마술사 모자를 쓰고 다니는 ‘뚜비’는 흑인, 광대, 안짱다리로 걷는 ‘나나’는 매춘부, 엉뚱한 행동을 유독 많이 하는 ‘뽀’는 자폐아라는 설이 돌았다. 텔레토비 테마송 뮤직비디오를 보다시피 보라돌이는 머리에 발레 치마를 두르고 춤을 추며, 뚜비는 마술사 모자를 쓰고 있다. 이 소문에 대해 <텔레토비> 제작진은 딱히 사회적 소수를 겨냥해 설정한 캐릭터들은 아니며, 애초에 그 정도로 디테일하고 심오한 내용은 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확실히 뚜비는 흑인으로, 뽀는 중국 광둥성 출신으로 캐릭터를 설정한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3. 텔레토비 외계인설

<Feeding My Baby Sister>(1998)

기억 속 가물가물하게 남아있는 <텔레토비>를 다시 꺼내 보자. 매회 그렇듯,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라는 가사와 ‘세뇌적’인 멜로디의 주제곡으로 에피소드가 시작되면, 네 명의 아이들이 동산 위에 모여든다. 머리에 달고 있는 안테나에 불이 들어오면 각자 뒷짐을 지고 텔레비전이 달린 배를 쑥 내민다. 텔레토비들은 옹기종기 모여 화면 속 어린이들의 일상생활을 지켜보며 그들과 간접적으로 소통한다. 이 같은 설정을 두고 텔레토비의 주거지는 일반적인 가정집이 아닌 잔디로 포장된 우주선 안이며, 그들 또한 미지에서 온 외계생명체라는 설이 떠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텔레토비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무도 없는 동산 위에 모여 살며, 샤워기 모양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정체 모를 음성에 ‘복종’하고 움직인다. 잔디 위의 바람개비가 신비한 빛을 뿜으면 텔레토비의 머리 위 안테나에 불이 켜지며 그들이 벌인 난장판의 흔적은 인공지능 청소기 푸푸가 쫓아다니며 알아서 처리해주는 식이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시스템 설정 덕분에 텔레토비는 사실 외계 정치인 집단이며, 지구 정복을 목적으로 모니터 속 지구인들과 교신한다는 것이다. 물론 <텔레토비> 팬들의 애정 어린 관심으로 탄생한 루머들이며, 제작진이 거듭 밝힌 바에 의하면, 애초에 그 정도로 심오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텔레토비> 흑백 버전

괴담이건, 음모론이건 일단 제쳐 두고 항간에는 텔레토비의 얼굴 자체가 무섭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비비드한 컬러의 원색 망토에 백설기 같은 흰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모양새 자체가 공포스럽다는 얘기다. ‘극단적’일 정도로 땡그란 눈알과 느릿한 걸음걸이, 말투도 한몫한다. 유튜브에 떠도는 흑백 버전의 <텔레토비> 중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의 ‘Come To Daddy’를 입힌 영상을 보자. 가뜩이나 스산하고 무서운 영상에 기괴한 음악까지 더하니 당장에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다. 밤에는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텔레토비> 공식 유튜브
<텔레토비> 공식 홈페이지
<텔레토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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