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켄 카가미(加賀美健)와 히마(HIMAA, 平山昌尚)는 비슷한 점이 이모저모 있다. 켄 카가미는 스누피나 심슨 같은 캐릭터를 자신의 방식대로 비틀어 검정 선으로만 완성한다. 히마는 마치 아이가 대충 그린 듯 멋대로 엇나간 검정 선들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린다. 스위스의 진(ZINE) 커뮤니티 니브스(Nieves)를 통해 꾸준히 진을 제작하고, 셔츠나 스티커처럼 손쉽게 대중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굿즈를 만들기도 한다.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을 펼쳐나가는 두 작가는 몇 가지 공통점 위에서 뚜렷하게 개성적인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다. 그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여.

 

ZINE

스위스에 거점을 둔 니브스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와 손잡고 24페이지짜리 가벼운 진을 제작하는 출판사다.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작가나 밴드 소닉유스의 멤버였던 킴 고든의 작품집, 영화감독 마이크 밀스나 스파이크 존즈의 작품집처럼 작가로 익숙한 인물은 아니지만, 아티스트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이들의 번외편 같은 작품집을 만든다. 켄 카가미나 히마 역시 그렇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즉흥적인 아이디어와 독창성을 지닌 드로잉을 24페이지(때때로 페이지가 줄거나 늘기도 한다) 면면에 선명하게 담는다.

히마의 진 <1177>

니브스와 먼저 일한 건 히마다. 2007년 스위스 바젤을 둘러 보러 갔을 때 니브스의 책임자인 벤자민 소머할더와 만났고, 2008년 <1177>이라는 첫 진을 발표했다. 도무지 의미를 유추할 수 없는 제목(이어지는 작품의 제목도 대부분 네 자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특별한 의미를 밝힌 적은 없다)의 진은 거울에 비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여전히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다음 장에는 가위와 슬라이드 글라스가 덩그러니 나오고 다음 장에는 표지의 남자가 현미경을 들여다본다. 다음 장에는 세포로 보이는 무수한 동그라미가 나온다. 끝까지 다 봐도 특별한 서사는 없다. 다만 확대된 실험 도구 그림의 간결함, 마구잡이 같은 선이 일정하게 끌어내는 균형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히마의 진 <Find Me>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마사나오 히라야마라는 본명으로 여러 권의 진을 발표했다. <Find Me>(2015)는 표지에 단순한 형태의 사람 그림이 새겨져 있다. 속지에는 엇비슷한 그림이 다양한 양상으로 늘어서 있다. <월리를 찾아라>처럼 숨은 그림을 찾으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제목이나 구성은 이전보다 확실하지만,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는 점이 흥미를 유발한다.

켄 카다미의 진 <Untitled>
켄 카가미의 진 <Bartworks>

켄 카가미는 기존의 캐릭터를 빌려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형을 가한다. 니브스에서 발표한 첫 진 <Untitled>(2011)은 스누피가 주인공이다. 귀를 줄이거나 늘이고 스누피의 외형에 찰리 브라운의 얼굴을 겹친다. <Bartworks>(2015)에서는 주인공이 <심슨>의 바트로 바뀐다. 진의 배경색만 심슨의 주요 색인 노란색일 뿐, 뾰족한 머리를 브로콜리처럼 부풀리거나 미로 같은 선 안에 바트를 가두는 그의 장난스러운 법칙은 유효하다. <Hair>(2016)와 <Boobs>(2016)는 줄리엣 루이스, 위노나 라이더 같은 유명인의 가슴과 은밀한 부위를 제멋대로 상상한 그림을 담았다. 왜 유명 캐릭터와 유명인이냐는 질문에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리기 쉬우니까.”

 

INSTALLATION & GOODS

머릿속이 아이디어로 가득 차 구현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켄 카가미는 SNS에 글을 올리듯 재빠르게 설치 작품을 발표한다. 전시장 한구석을 가짜 개와 용변 패드, 개껌으로 채우거나 플라스틱이나 봉제 인형을 앞서 언급한 캐릭터 그림처럼 분해해서 다시 조립하거나 익숙한 식료품을 부패한 듯한 모양새로 바꿔놓기도 한다. 역겹고 괴상하게 보여 마땅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바꿔놓는 것이 그의 주특기이나 기형적인 새로움을 바랄 뿐 보는 이를 기분 나쁘게 만들려는 악의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발언에 의하면 그 역시 기분 나쁜 형상은 싫어한다고. 그는 얼마 전 스위스 전시장에 발자국이 난 어마어마한 크기의 귀여운 똥을 만들었다.

켄 카가미의 설치 작업
히마의 설치작업 '3681'

히마는 자신이 그리는 그림처럼 소박하고 간결한 설치 작업을 한다. ‘3681’(2011)은 전시 공간에 놓인 물감과 나무판, 종이컵 따위가 단순한 조작을 거쳐 그림 그리는 기계가 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폭발에 의해 물감과 종잇조각이 사방으로 퍼지며 색의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관람객과 유령(?)이 기억게임을 하는 퍼포먼스 ‘Memory Master’(2011)는 귀여워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통해 어설프게 분장한 유령처럼 보이는 메모리 마스터가 관람객에게 참패를 당하는 모습이 남아있다.

'3681'(2011)
‘Memory Master’(2011)

두 사람은 안 사고는 못 배길 것처럼 귀여운 아이템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전시차 대만에 간 히마가 자신의 ‘5182’ 종이 지갑의 적절한 사용 예를 트위터에 올렸다. 네 가지 색의 저렴한 종이 지갑은 스티커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 표면을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

본명으로 니브스에서 발표했던 <4999> 카드 게임.
히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얼굴 모양의 스티커(6400)와 가방(5185)

히마의 굿즈는 도쿄에 있는 소규모 셀렉트 서점 유트레흐트를 중심으로 각종 북페어나 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켄 카가미는 자신의 숍 스트레인지 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스태프가 켄 카가미 혼자뿐이라 정기 휴일도 없고 여는 날도 일정하지 않은 말처럼 이상한 가게에는 스누피와 바트가 그려진 셔츠나 모자를 비롯해 그가 직접 고른 이상한 물건을 판매한다. ‘본가로 돌아가라’고 쓰인 토트백은 추석을 맞아 하나쯤 갖고 싶은 탐나는 물건이다.

 

이미지 출처- 작가의 홈페이지와 트위터, 블로그
(가방 이미지 출처- darklabelstoretokyo)

 

켄 카가미 홈페이지
히마 홈페이지

 

Writer

매거진 <DAZED & CONFUSED>, <NYLON> 피처 에디터를 거쳐 에어서울 항공 기내지 <YOUR SEOUL>을 만들고 있다. 이상한 만화, 영화, 음악을 좋아하고 가끔 사진을 찍는다. 윗옷을 벗은 여성들을 찍은 음반 겸 사진집 <75A>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박의령 인스타그램